12살의 골키퍼…“골육종 따윈 이겨낼 수 있어”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 있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병원 옆길로 약 100m가량을 올라가다 보면 ‘한 사랑의 집’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지원하는 이곳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소도시에서 올라온 소아암 환자와 가족들이 머무르며 통원치료를 받는 곳이다.

남해에서 올라온 신수항(남해초 6년) 군도 벌써 5개월째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 수항이는 골육종이라는 희귀 암을 앓고 있다. 뼈에 암이 생기는 골육종은 13~15세, 특히 뼈 성장 기간이 긴 남자아이에게 많이 생기는 희귀병이다.

수항이의 유일한 버팀목인 어머니 김경희 씨도 생업을 제쳐놓고 병원과 시설을 오가며 수항이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막막한 현실이지만 반드시 완쾌하리라는 강한 믿음 하나로 서로 사랑을 듬뿍 주고받으며 오늘도 행복을 이야기하는 수항이와 어머니 김경희(50) 씨를 ‘한 사랑의 집’ 접견실에서 만났다.

신수항 남해초등축구선수./사진 김구연 기자

느닷없이 찾아온 희귀병 골육종

수항이는 남해초등학교 축구부 소속의 주전 골키퍼다. 특기적성프로그램을 통해 축구의 매력에 빠진 수항이는 엄마를 졸라 결국 4학년이던 지난 2011년 11월 하동 진교초등학교에서 축구부가 있는 남해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수항이에겐 축구와 함께 한다는 것이 더 행복했다. 큰 키 덕분에 5학년 때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수항이는 아프기 전까지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남해초의 수문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수항이에게도 병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지난 2월.

엄마는 설 명절을 맞아 모처럼 집을 찾은 아이의 다리가 부어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이가 축구 선수인 데다 가끔 운동을 하다 다친 적이 있어 이번에도 괜찮겠지 라며 애써 넘겼다.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갔지만 수항이의 다리는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남해초 여원혁 코치가 수항이를 둘러업고 병원을 찾았고 MRI를 찍고선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엄마는 그 길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고,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MRI와 뼈 스캔, 조직검사를 거친 후 골육종(뼈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지금도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의 말을 허투루 들은 게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김경희 씨는 “평소 건강하고 운동도 잘해 이런 병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골육종은 정확한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으로 일반 장기에 전이가 될 수 있는 위험한 병”이라고 했다.

골육종이 발견되면 일단 뼈를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절단하는 것은 아니다. 종양이 생긴 뼈 주변부를 광범위하게 드러낸 다음 이식골(인공 뼈)이나 종양대체물(뼈처럼 생긴 금속 대체물)을 삽입한다.

골육종 판정을 받은 수항이도 그동안 뼈 주변부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항암 치료를 진행 중이다. 어른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수술과 항암치료를 두 번씩이나 견뎌낸 수항이지만, 오히려 속상해하는 엄마를 위로할 때면 김 씨의 마음은 더 타들어간다.

축구 규칙과 전ㅅㄹ이 빼곡하게 적힌 수항이의 노트

“저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투병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해요. 제대로 먹을 수도, 누울 수도 없어요. 더 투정부려도 이해할 텐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죠.”

병원과 숙소만 오가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수항이는 ‘살 빼러 운동 좀 하고 오세요’ , ‘책 좀 사 주세요’라고 엄마의 외출을 종용할 때도 있다고. 힘든 엄마를 위해 아픈 몸으로도 장난을 걸고 애교를 부리는 수항이. 그런 어린 아들에게서 엄마는 사랑을 배운다고 했다.

이 날도 수항이는 1시간이 넘게 걸린 인터뷰 내내 밝은 인상으로 엄마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줬다.

“축구 선수, 내 꿈을 버리지 않았죠”

암 투병 중이지만 수항이는 아직도 축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엄마가 건네준 수항이의 노트에는 축구 규칙과 전술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인터넷을 통해 축구 이론을 정리하고, 최근에는 축구에 대한 책도 사서 공부 중이라고 했다.

수항이는 “운동장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직접 배울 수 없으니 제 혼자라도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늦게 축구를 시작해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으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거든요. 지금은 병원에서 공을 찰 수 없으니 이론 공부라도 열심히 해둬야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수항이의 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계적인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이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목표인 수항이에게 경남 FC 유니폼 한 벌을 선물했다. 처음에는 ‘경남 FC보다 울산(현대)이 좋은 데요’라고 했지만, 유니폼을 좀체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

주위의 응원, 큰 힘이 됩니다

기약 없는 싸움이지만, 수항이와 엄마 김경희 씨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바로 남해 지역민의 관심이었다. 수항이의 사연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자, 남해군은 물론 남해초, 남해전문대, 남해향우회, 남해초 여원혁 코치가 다니는 호남대에서까지 정성을 보탰다.

   

남해초 축구부의 학부모들도 제 자식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수항이의 빠른 쾌유를 바라고 있다. 친구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적은 편지도 수항이가 힘들 때 꼭 읽어보는 필독서가 됐다.

일찍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수항이를 키우던 김 씨에게 주위의 이 같은 관심은 큰 힘이 됐다.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도움 주신 성의를 봐서라도 수항이는 반드시 완쾌될 겁니다.”

김 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수항이와 엄마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본다. 힘들다고 몸부림치는 순간마다 이들을 잡아준, 주위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골육종(osteosarcoma)이란 = 골육종은 뼈에 발생하는 원발성 악성 종양(암) 중에서 가장 흔하다. 왕성한 10대 성장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남자에게 조금 더 많이 발생한다. 발생 빈도는 미국의 경우 연간
500~1000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약 100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팔, 다리, 골반 등 인체 뼈의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으나 흔히 발생하는 부위는 무릎 주변의 뼈이다. 암이 있는 부위가 아프거나 붓는 것이 흔한 증상이다. 골육종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예방이 어렵다. 방사선·식생활·흡연·유전 등 흔히 암을 일으키는 요소와의 관련성도 아직 모른다. 그 때문에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서둘러 검사를 하는 게 최선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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