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바다가 내겐 논이고 밭이야"

진해구 자은동 광진호 선장 양태석(65) 씨 집은 마당이 절반이다. 짙푸른 잎이 꽉 찬 정원 가운데 비파나무가 솟아 있고, 한쪽엔 텃밭도 있다.

대문 앞 수돗가에서 새벽에 잡아온 전어를 다듬는 동안 부인 원우선(61) 씨는 된장을 으깨고, 텃밭에서 고추며, 깻잎을 딴다. 말없이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습은 배 위에서의 그것과 닮았다.

두 사람은 수신호로 배에서 소통했고, 가끔 하는 대화도 취재진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젊었을 때는 전어 잡으러 가덕도, 낙동강 하류, 태종대, 거제 학동까지 갔었지. 지금은 욕심 안 부리고 할 수 있는 정도만 해."

전어 잡이 15년, 그가 배를 탄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다.

"그때 하던 일을 말아 먹었지. 다른 일을 해도 안 풀리고, 그래서 배를 샀어. 막둥이가 학교 졸업한 지 10년 됐는데, 그때 어려웠지. 뱃일도 익지 않았고."

진해가 고향인 그는 답답해서 배를 샀다. 되는 일도 없는데, 속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바람에 바다에 나갔다. 소일 삼아 낚시라도 하고 있으면 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맛에 조금씩 뱃일을 배워 여기까지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했다 싶어. 이 일은 정년도 없고, 그래서 자식들한테 손 벌릴 필요 없고, 상사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 무엇보다 고기 올라오는 게 그렇게 재밌어."

돌고 돌아 돌아온 바다. 남보다 늦은 출발. 때문에 그는 공부에 더 열중했다. 전남 광양에서 진해만까지 오는 동안 '전어'에 대해 가장 논리적인 전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자망어선에 있는 수중 모니터 탐지기와 그물 올리는 기계도 그가 어민들과 함께 추진한 일이다.

전어잡이에 나선 지 15년 된 양태석·원우선 부부는 진해 행암만에서 하루 두 번 조업을 한다. 부산 가덕도, 낙동강, 거제 학동 등 전어를 찾아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늘 대하는 전어지만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한 마리 한 마리는 언제나 반갑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는 지금 진해연안자망자율관리 공동체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이 공동체는 해양수산부에서 주는 모범공동체상을 3번이나 받았다.

"어민들이 자율적으로 바다도 지키고, 소득도 올리고자 하는 일이지. 많이 정착했어. 앞으로는 유통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 그리고 그런 장비 덕에 나이가 들어도 부부가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아니면 힘들어서 못 해."

마당이 보이는 거실은 아담했다. 벽이며 수납장 위는 가족사진, 손자, 손녀 사진으로 찼고, 안방 문 앞엔 근육통에 쓰인다는 로션이 자기 자리인 양 거기 있었다.

계획 없던 방문에 계획 없던 상차림이 금세 나왔다.

"이 집에서 1남 2녀 키웠지. 막둥이는 쌍둥이를 임신해 있어. 사위들이 회를 좋아하는데 내가 썰어 주는 거 먹고는 횟집 회는 맛 없어서 못 먹겠다고 그래. 하하."

거제가 고향인 부인과는 부산에서 학교 다니며 만났다. 이제 둘만 남은 이 집. 쓸쓸하지는 않을까? 회와 함께 먹으라며 매실 진액을 된장에 부어주던 원우선 씨의 말이다.

"둘만 있으면 수월하지. 애들 많을 때보다야. 잘 싸우지도 않아. 싸우는 것도 누가 봐야 재밌지. 결혼할 때 이 사람 엄청나게 잘사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 집만 컸던 것이었어. 하하하!"

조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양태석 씨가 전어를 손질하고 있다. /남석형 기자 nam@idomin.com

잘사는 집 아들로 보였다는 양태석 씨는 사실 근방에선 알아주는 대농 집안이었다. 8남매 중 둘째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농사꾼이었다. 부친도 그런 그를 아꼈다.

"농사꾼이 되고 싶었어. 꿈이었지. 그런데, 일대가 개발되면서 농사지을 땅이 사라진 거야.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어린 시절에 방황도 했어."

지금 그에게 바다는 논이고 밭이다. 농사 짓는 심정으로 바다에 나간다고 한다. 씨 뿌려 모종 키워서 심고, 물 대고, 잡초 뽑아 수확하기 까지 쉴 틈 없는 농사일을 하듯 바다에 나간다.

"오늘도 사실 그물 한 번 더 치려고 했어. 늘 그런 맘이 들어. 매일 바다에 나가고 있어. 그래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풍년이 들어도 어찌될지 모르는 농사와 달리, 뱃일은 그런 게 없어. 노력한 만큼 돌아와. 욕심을 부려서도 안 돼."

하얀 민소매 속옷 밖으로 드러난 그의 팔뚝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앞으로 꿈은 우리 공동체가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야. 바다엔 욕심 없지만, 일에는 욕심이 있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를 비롯해서 다들 나이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배를 탈 수 있겠어? 준비를 해야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상차림은 계속 '준비 중'이다. 먹는 동안도 잠시 앉아 있지 않았던 부인 원 씨는 어느새 삶은 '쏙'을 내온다. 오늘 새벽 전어 그물에 올라 온 것들이다.

"늦게 시작한데다가 모르고 시작했고, 지금도 모르긴 마찬가진데 긍지는 있어. 계속 연구해서 공동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그거야. 지금 장비는 내가 제일 잘 다뤄. 가르쳐 줘야지."

광양 망덕 포구에서 시작해 진해만까지 전어를 찾아온 길. 찾은 곳마다 했던 질문이 있다.

"여기 전어는 어떤 장점이 있나요?" "진해만 전어? 진해만 전어는 이 붉은 부분이 있어서 특히 맛있어. 고등어에도 있지. 그런데, 우리 전어가 제일 맛있다고 말 못하겠어. 제일 맛있는 전어? 그런 거 없어. 그냥 자기 지역에서 난 전어가 제일 맛있는 거야! 어릴 적 엄마 밥이 제일 맛있는 이유와 똑같아!"

맞는 말이다. 거실 창으로 겨우 들던 아침 햇빛이 마당으로 쏟아질 때쯤 현관문을 나섰다. 이 집에 들 때부터 인상 깊었던 마당을 돌아 나오는데 대문까지 따라 나오신다.

"우리는 오늘 한 배를 탔었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어. 자주 놀러와."

새벽 취재를 마친 피곤함 탓인지, 넉넉한 정을 받은 편안함 탓인지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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