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터 원숭이, 거지 전문배우’라 불린다

“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기뻐한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형성됐습니다. 때로는 내 몸으로 가능하다면 좋겠고, 개인적으로 돈이 좀 든다 할지라도 남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열정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한상덕 교수. 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뭔가 좀 있어 보이고, 실제로도 사회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마구’ 망가지고 있다. 시골 장터에서 원숭이로 분장하는가 하면, 어린이를 상대로 거지로 분장해 ‘글로벌 거지’를 외친다. 이 길에는 그에게 수업하는 대학생 50여 명도 함께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얼마나 깍쟁이인가. 심각한 청년 실업 현상을 반영하듯 ‘스펙’ 쌓는데 다 걸다시피 하는 세태에 그다지 도움되지 않아 보이는 일에, 그것도 떼로 나선 것도 이례적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다. 한 교수는 경상대학교가 해마다 선정하는 ‘잘 가르치는 교수상’에 2010년 2011년 2년 연속 선정됐다. 그중에서도 2011년에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가장 잘 가르치는 교수상’을 받았다. 경상대학교는 ‘잘 가르치는 교수상’ 수상을 2회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 제한이 없었다면 더 받을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올 들어서는 지역사회를 위한 또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각종 연수 등에 강사로도 인기가 제법 있단다.

한상덕 교수./사진 박민국

자신의 체면이 망가지는 데도 개의치 않고 현장으로 뛰어나온 대학교수. 그런데 가르치기도 잘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첫 이기열전(異奇列傳) 주인공으로 모시기로 하고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전통시장에 활기를 주기 위해…

‘에그, 이게 뭐야. 완전 콘셉트 잘못 잡았잖아.’

미리 메일과 전화로 인터뷰 주제와 시간 약속은 했지만 6월 5일 한 교수 연구실을 찾아갔더니 문이 잠겨있다. 전화했더니 옆 건물에 있는 평생교육원 원장실에 있단다. 처음부터 뭔가 핀트가 안 맞았다는 생각이 엄습해 온다. 사전 정보 검색과 메일 인터뷰를 통해 ‘연극으로 다져진 끼’를 기대했던 기자는 7부 바지에 라운드 티, 야구모자 콘셉트로 인터뷰에 나섰다. 인터뷰이를 배려하겠다는 포석이었는데, 원장실에서 한 교수를 보는 순간 정말 헐~이다. 좀 심한 결례를 했다 싶은 게,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깔끔하게 매고 기자를 맞아주는 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육백만불 사나이 눈으로 스캔해보지만, 어쩌면 ‘직업관료’에 가까운 느낌만 들 뿐, 그 몸 어디서 그런 ‘끼’가 나오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 ‘끼’는 주인도 모르는 새에 원장 집무실을 가득 휘어잡는다.

“일반적으로 교수들의 사회참여는 시민단체에 관여하거나 자치단체의 각종 위원회 활동 같은 게 대표적인데, 교수님은 스스로 망가지는 형식으로 비칠 만큼 파격적”이라고 말문을 꺼냈더니 이내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는 답으로 돌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딨느냐는 것이다. 스스로 ‘만학도’임을 들며 “보통 사람, 아니 ‘루저’의 대명사”라고 표현한 그는 자신의 삶이 “희망의 증거”라고도 말했다.

궁금한 게 많다. 하필 연극인지, 하필 하동인지….

거지역으로 분장한 한상덕 교수

“100% 친구 때문에 시작했어요. 내 고향은 하동군 화개면이고, 부모님도 그곳에 계시고, 지금 내 주민등록상 주소도 그곳입니다. 하루는 하동군청에 근무하는 친구 이용우 과장이 부탁하더군요. 당시 그는 전통시장 활성화 담당이었는데 내 전공을 살려 전통시장 살리기에 힘을 실어달라는 겁니다. 마침 나도 개인적으로 대중들 속에서 하는 연극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 계획도 있고 했는데 이런 얘기 들으니 구미가 당겼습니다. 그리 시작했지요.”

교수로서 교외 봉사 방향을 ‘강희(講戱: 강의와 연극놀이의 융합 장르)’로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데다 하동은 고향이고, 더구나 친구가 공연 외적인 환경을 모두 마련해줬기에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숭이가 되고 거지가 된 이유

하동읍 장은 2일과 7일에 선다. 매달 첫 장날인 2일에 읍 장터 중앙에 한옥과 무대를 설치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여는데 스스로 원숭이로 분해 출연했다는 것. 왜 ‘원숭이’였을까? “시장 상인과 장꾼들의 시선을 끌 수 있고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라고 선택 배경을 설명한다.

“처음에는 고정 레퍼토리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매번 동일한 관객이 모여든다는 점 때문에 소재에 변화가 불가피했습니다. 처음에는 관광객을 의식해 하동의 인정과 특산물 소개에 중점을 뒀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고정 관객이 늘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춤과 노래를 많이 안배했습니다.

거지역으로 분장한 한상덕 교수

이를테면 구식결혼이나 극 중에서 실제로 이발을 하고, 희망의 대형 섬진강 종이배 접어 띄우기, 대형 하동군 지도 그리기, 민속놀이 같은 것으로 확장했지요.”

그뿐 아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악양 최참판댁 인근에 있는 하동생태과학관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거지들의 찬가>라는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한 교수뿐만 아니라 50여 명의 대학생이 함께했다. 역시 당시 생태과학관장으로 있던 이용우 과장 제안을 받아들인 것.

“최참판댁 조금 떨어진 곳에 하동생태과학관이라고 생긴 지 일 년 됐습니다. 눈에도 잘 안 띄고 하는데, 친구가 1주년 기념행사를 해야겠다면서 행사내용을 어떻게 해야 꼬마들에게 유익할까 고민하던 중 내가 원숭이 공연했던 것을 바탕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대신 예산이나 지원금은 하나도 없으니 완전히 재능기부로 해달라네요.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왜 ‘거지’였을까?

“낮고 보잘것없는 사람 거지에게도 꿈과 희망은 있습니다. 거지도 시장개척이 필요하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한국의 거지라면 한류의 주인공인데 글로벌 거지가 되려면 외국어도 알아야 한다, 거지라도 ‘거지(巨智)’의 주인공이 되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존경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자, 뭐 이런 콘셉트로 접근했습니다.”

이 공연에서는 그가 올해 교양과정으로 개설한 ‘연극의 이해와 감상’ 수강 학생들이 큰 구실을 했다.

“마침 올해 교양 과정으로 ‘연극의 이해와 감상’이라는 과목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안을 받고서 50명쯤 되는 수강생들에게 ‘이번에 이런 제안을 받았는데 체험도 할 겸 같이 활동 참여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물었더니 다들 좋다 하더군요. 제일 좋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콘셉트를 잡는다면 어떤 게 좋을까 논의해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거지들로 분장해서 꼬마들에게 꿈과 희망 주는 내용 엮어보자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학생 50명과 같이 했지요.”

같이 한 배우들은 극회 회원이 아니라 일반 학생 중 연극에 관심 있어 참여한 완전 초짜였다. ‘연기력’이니 ‘연출’이니 이런 것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게 함께 어울리는 마당. 거지가 부를 수 있는 기본적인 품바타령부터 교실에서 가르쳤고, ‘학교종’ 같은 동요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함께 연습했다. 더구나 학생들 속에는 중국에서 유학 온 8명도 포함돼 있었다. 한 교수 전공인 ‘중국’과 ‘연극’이 컨버전스(Convergence)된 것.

경상대 교정에서 한상덕 교수./사진 박민국


‘거지’ 캐릭터에다 ‘골목 인문학’ 구상

왜 하동인지는 알겠는데, 왜 원숭인지, 거지인지도 알겠는데, 그런 발상은 어디서 왔을까?

이 지점에서 이력서에는 안 나오는 그의 이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58년(호적에는 1960년)에 하동군 화개면에서 태어났다.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 경상대학교 연극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현장으로까지 연극활동이 이어졌고, 무대에 올린 연극도 10여 편에 이른다. 경남도 연극제 최우수 연기자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역에서 연극으론 ‘밥’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 한 교수는 “연극을 해도 여유 있게 해야 하는데 사는 것 때문에 연극을 그대로 못하고…”라고 회상한다.

성균관대 석사를 거쳐 중국 무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하지만 연극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으니 박사학위 주제가 중국연극이었다. ‘중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조우 작가의 <뇌우>를 전공했는데, 마침 현지 극단이 이 작품을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도교수도 추천하고 해서 직접 출연까지 했다.

“박사학위 공부하고 있을 때 중국 극단이 전공 작가 작품 공연한다는 소식 들었고, 지도교수가 그분들하고 연계돼 극단에 가서 중국으로 연극으로 참여한 일이 있는데 의미 깊었습니다. 외국인 참여는 처음이었다네요. 10여 년 전 내가 번역해 한국에 출판했고, 이윤택 감독이 국립극장서 공연했습니다. 제 작품으로 공연했기에 대접도 받고 감독과 대화도 나누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뇌우>는 조우의 첫 작품으로 24살 대학생 때 쓴 것인데 이 작품 하나로 세계적으로 ‘중국의 셰익스피어’ 대접을 받았다. 한 교수는 “조우 작가의 이후 작품은 물론, 현대 중국 희곡에서 이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고 설명한다.

연극에 대한 열정, 연극으로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그 생각은 알겠는데, 부담은 없었을까?

“잘하고 못하고는 능력의 한계이니 어쩔 수 없고, 최선을 다한다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유료가 아니니 머물고 떠남은 관객의 선택이니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그는 “새로운 시도는 항상 설레고 도전력을 가지게 한다”며 그런 도전 정신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도 말했다.

“교수로서 할 일을 다하면서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판단했고, 실제로 대학에서 해야 할 일에 영향이 없는 정도에서 외부 활동을 합니다. 특히 몸담고 있는 대학의 명예에 손상이 간다고 판단하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수답지 않은’ 외부활동에 대한 부담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단호하다. “사회가 내게 주는 부담은 아직 없다. 다만,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지금 그러한가 하는 내게로 향하는 부담은 크다”는 한 교수는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며,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다는 한 교수. 지역사회를 위해 구상 중인 사업과 연관 있다. 그는 교훈적인 ‘강희’를 개발해 공연하겠다는 것.

한상덕 교수 (왼쪽)와 대담중인 정성인 기자

“‘거지’ 캐릭터로 지역사회 골목골목을 돌며 ‘골목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쉽고 재미있는 감동을 나눌까 구상 중입니다. 아울러 4년 전 경남도교육청 주도로 <고전으로 배우는 자녀교육의 지혜>라는 교재를 만들었는데 이처럼 한문 명언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연극 작품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넘치는 끼와 열정을 쏟아 부을 곳을 찾은 듯하다.

‘조는 학생’이 없는 강의로도 유명

화제를 조금 바꿔봤다. 경상대학교 ‘잘 가르치는 교수상’을 2년 연속 받은 비결을 물었다.

“강의 대상인 학생은 내가 가장 받들어 모셔야 할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겸손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기본이고, 학생을 극장의 관객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가짐만으로 쉬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더니 “학생이 졸아서는 안 됩니다. 안 졸게 하려면 지식 전달도 중요하지만 중간 중간 분위기 쇄신할 수 있는 장치도 좀 필요하겠다 싶어 유머 에피소드를 넣고 동작도 좀 과장된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서 합니다.
50분 강의하면 40분 정도는 지식 전달에 쓰고 10분 정도는 에피소드나 삶의 지혜, 교훈적인 얘기를 해주곤 합니다. 가끔 졸업생을 만나면 ‘강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교수님의 이러저러한 말씀이 기억난다’는 얘기를 해요. 그런 식입니다.”

중어중문학과 교수이니 아무래도 한자 교육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을 듯. “<사자소학> 한 권만 마스터해도 인성교육과 한자 기초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재미있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자’와 ‘한문’ 교육 분리도 주장했다. “현행 중학교 한문 교과서는 사실 ‘한자’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한자도 잘 모르는 학생에게 무슨 주어가 어떻고 술어가 어떻고, 술목관계니 어쩌니 이런 걸 잔뜩 가르치잖아요. 아예 한문은커녕 한자에 관한 관심마저 끊게 하기 십상이지요. ‘한자’ 과목으로 해서 생활에 기본 되는, 알면 유익한 어휘 500개나 1000개 정도를 선정해 가르치고, 이를 활용할 수 있고 상상력으로 어휘 조합할 수 있게 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고등학교에서는 한문학이나 중국 등 전공하려는 학생이 ‘한문’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게 하면 될 겁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점.

“관객의 심리에 대해 많이 연구하는 편”이라는 한 교수는 “감동은 크고 화려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규모와 아이템에 주력한다. 그리고 나의 ‘끼’를 믿고 최선을 다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기 구상을 현실화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경상대 교정에서 한상덕 교수(오른쪽)와 정성인 기자./사진 박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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