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0평 남짓한 방안에 불이 켜졌다. 잠에 취한 얼굴과 가누기 어려운 몸뚱어리.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자 세 명의 취재기자 중 가장 선배인 권범철 기자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다 챙겼제? 나가자."

고성군 삼산면 두포리. 이곳에선 요즘 '갯장어잡이'가 한창이다. 갯장어는 봄이 되면 경상도·전라도 남해안 일대로 올라와 모래나 펄 속에서 지낸다. 그것도 딱 5월 하순부터 11월까지. 이 동네 주민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어둠을 뚫고 도착한 부두. 몇 척은 떠난 뒤였고, 출항을 서두르는 어민들도 보였다. 사실 우리 일행이 탈 배는 정해지지 않았다. 전날 인터뷰한 횟집 사장님 말만 믿고 무작정 나왔을 뿐이다.

"부모님이 갯장어잡이를 하시는데 시간 맞춰 가봐요. 새벽 일찍 나와 있는데 내쫓기야 하겠습니까?"

30분 뒤 어르신 한 분이 나타났다. 전날 잠깐 뵌 선장님 부인이었다. 그제야 부둣가 한편에서 주무시던 분이 선장님임을 알았다. 권범철 기자가 잽싸게 다가갔다.

갯장어 배에 승선한 저, 이창언 기자입니다. 새벽 3시 출항·낮 2시 입항…건장한 20대 남성인 저도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르신들 오늘 배 좀 같이 타면 안 됩니까?"

"배도 좁은데 뭔 다 탈라 카노. 배가 작아서 안 된다."

매몰찬 반응이 돌아왔지만 묘하게 승선도 가능해 보였다. '조용히 있겠습니다'라며 재차 부탁하고 나서야 '2명 승선 허가'가 떨어졌다. 새벽 3시. 권 기자의 구슬픈 손짓을 뒤로하며 남석형·이창언 기자의 '갯장어 여정'이 시작됐다.

배는 40여 분을 달려 미끼잡이 배 근처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서는 이미 3~4척의 배가 서로 선체를 묶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배를 포함 3척이 더 합류하자 이내 '징검다리'가 만들어졌다. 노란 바구니를 든 어민들이 하나 둘 미끼잡이 배에 오르자 그물이 올려졌다. '팔딱팔딱'. 메가리(전갱이) 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갯장어잡이 미끼는 전어를 쓰기도 하나 7월에는 주로 메가리를 사용하는 편이다. 배 한편에선 정겨운 '승강이'가 오갔다. '좀 더 퍼 줘라'. 장소를 옮겨 이 같은 모습을 한 번 더 반복하고 나서야 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새벽 5시. 칠흑 같은 어둠은 사라졌다.

각자 생각한 '포인트'로 가기 전 부표에 선체를 묶고 멈춰선 배는 미끼 끼우기에 들어갔다. 갯장어잡이에는 '주낙'이 쓰인다. 주낙은 500m 길이의 긴 줄에 130여 개 낚싯바늘을 단 짧은 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은 낚시어구다. 한 번 나설 때 20여 통을 챙긴다. 어선 한 척에 평균 2명이 오르니 미끼 끼우기부터가 예삿일이 아니다. 굳은살 밴 손이 그간 세월을 말해준다. 아침 6시 15분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배는 다시 10여 분을 달렸다. 이윽고 부표 하나당 주낙 2통을 연결하고선 1m 간격으로 낚싯바늘이 던져졌다. 선장님이 배를 몰며 간격을 조절했고 부인이 리듬을 타며 던졌다. 주낙 20통을 모두 던지는 데는 1시간 15분가량 소요됐다. 보통은 이때 아침밥을 먹지만 이날만큼은 건너뛰었다.

"빨리 끝내고 육지 가야제."

부표에 묶어 놓았던 줄을 풀어 기계에 걸자 본격적인 '낚시'가 시작됐다. 선장님은 연방 낚싯줄을 끌어올렸고, 부인은 바늘과 줄을 정리했다. 하지만 130여 개 바늘 중 갯장어가 걸려오는 건 기껏해야 5~6개 정도. 그렇지만 '왔다'라고 간간이 외치는 선장님과 이를 받아 낚싯줄째 잘라 보관하는 부인 얼굴은 늘 밝았다. 끊겨버린 낚싯줄을 놓고 서로 온갖 타박을 주고받을 때도 어김없이. 오후 1시가 되자 모든 주낙은 수거됐다.

"뱃멀미는 안 했나? 집에 가자."

배는 다시 육지로 나아갔다. '반 거지꼴'을 하고 육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살았다'라며 자신을 위로한 사이, 이날 잡은 갯장어는 곧바로 횟집으로 향했다.

"어제보단 양이 적네. 그래도 통 안 잡히더니 인자 좀 나오는 갑다. 욕 봤소."

만선의 꿈은 모든 뱃사람에게 있다. 그렇지만 지나친 욕심을 품는 일은 결코 없다. 그들에게 갯장어와 바다는 내일도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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