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조건 밝혀지지 않아 양식 불가, 자연산밖에 없으니 더 '귀하신 몸'

7월 중순, 고성군 삼산면 두포마을. 이 어촌마을은 오전 내내 조용하다 낮 12시를 향하자 시끌벅적해진다. 바깥에서 연이어 들어온 자동차는 하나같이 '하모'라는 글이 내걸려 있는 갯장어 횟집들 앞에 멈춘다. 손길 분주한 주인장은 "통영에도 하모가 유명하다지만, 거기 사람들도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먹는다"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툭 던지는 듯하지만, 그 으쓱함은 숨길 수 없다. 이 여름날, 고성은 갯장어(하모)로 꿈틀거리고 있다.

고성군은 기름진 땅 덕에 '쌀' 좋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넉넉한 바다까지 품고 있다. 그래서 굴·미더덕·멸치 같은 것도 쏠쏠찮게 내놓는다.

하지만 이것들을 지역 특산물로 내세우기에는 좀 부족하다. 경남에서 굴은 통영, 미더덕은 창원 진동, 멸치는 남해가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갯장어는 이 지역에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갯장어 앞에 당당히 '고성'을 붙여도 토를 다는 이는 많지 않다.

/사진 박일호 기자 nam@idomin.com

고성 '자란만'은 갯장어를 품고 있는 곳이다. 갯장어는 따듯한 물을 찾아다닌다. 5월이 되면 서·남쪽 연해로 몰려들어 10월까지 활동한다. 낮에는 수심 20~50m 모래진흙 바닥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한다. 이러한 환경이 들어맞는 곳이 고성 자란만이다. 이곳은 삼산면과 하일면에 걸쳐 있다. 1895년 만들어진 <조선통어사정>에는 갯장어가 '경상도 도처에 서식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고성 자란만이 그 중심이다.

고성군 자란만 일대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옛 기억을 쏟아낸다.

"그때는 이따만한 놈들이 낚싯줄에 연신 올라왔지."

"고성에 쌀이 많이 나지만, 바다 주변에서는 귀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겨울에는 우선 쌀을 빌려다 먹어. 그리고는 여름에 잡은 갯장어로 그 값을 대신 치렀지."

"여름에 바짝 벌어서 한해 먹고 살기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지."

갯장어는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품성 있는 놈들은 전량 일본에 수출했다. 전체 어획량 가운데 상품 가치 있는 것이 80%, 그 나머지 부실한 놈들은 갯장어 잡는 이들 몫 정도였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찾게 된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방식인 '유비키'라 할 수 있는 '하모 샤부샤부'가 이곳 고성에 들어온 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갯장어는 뱀을 떠올리게끔 한다. 살아 움직일 때 모양새는 꽤 부담스럽다. 그 탓에 옛사람들로부터 고운 대접은 받지 못했다.

옛 문헌에는 '뱀을 닮은 모습에 사람들이 꺼리고, 먹기보다는 일본에 팔기 위해 잡았다'라고 언급해 놓았다. 한때 일본에 전량 수출되었던 것은 비싼 가격이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꺼릴 만한 그 외관도 한몫했던 듯하다.

여기다 교통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바깥으로 내다 팔기도, 그렇다고 외지인들이 편히 들어와 먹기도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뒤늦게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이제 여름 보양식으로 갯장어를 찾는다. 오늘날은 국내 소비량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일본 수출은 전체 어획량 가운데 15~20% 수준으로 줄었다. 창원·진주 같은 곳에서도 여름이면 갯장어를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전남 여수·고흥에서 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고성 것들이라 보면 되겠다.

그래도 수송 사정이 나아졌다고 한들 현지 것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 그 이유 중에 수족관 물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고성에서는 갯장어 환경에 맞는 바닷물을 퍼올려 수족관을 채운다.

그런데 수산 자원은 늘 그런 법이다. 무분별한 사람 손길을 언젠가는 감당하지 못한다. 갯장어 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당장 눈앞 이득만 바라보고 어린놈까지 잡아 올리는 바람에 20년 전과 비교해 그 수가 줄었다. "한해 한해 올라오는 수가 다르다"는 푸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특히 올해는 더 그렇다. 예년보다 수온이 높아서라지만, 지난 세월을 먼저 탓해야겠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갯장어 수를 늘리기 위해 어민들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갯장어 자원회복 동참 어선'이라는 깃발을 저마다 달고 있다. 보통 3~4년 된 길이 60cm 이상 것을 잡는데, 40cm 이하 것은 그냥 두려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잡을 수 있는 양이 워낙 적다 보니까"라며 그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눈치다.

식탁 앞에서는 '갯장어'보다 '하모'가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 느낌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하모(はも)'는 '물다'라는 의미를 둔 '하무(はむ)'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갯장어는 아무것이나 잘 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바다의 깨물기 대장'이라는 별명도 달라붙는다. 경상도에서는 '그래' '맞다'는 의미로 '하모'라는 사투리를 쓴다. 그래서 갯장어를 지칭하는 '하모'라는 말이 경상도 사람에게는 차지게 다가오는 면도 있다.

/사진 박일호 기자 nam@idomin.com

장어는 종류가 많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하모라 부르는 갯장어 외에 아나고는 붕장어, 곰장어는 먹장어, 민물장어는 뱀장어이다. 일반 사람들이 장어를 외형만 놓고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갯장어는 뱀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겠다.

갯장어는 '메가리', 즉 전갱이를 미끼로 해서 오직 주낙으로만 잡는다. 붕장어와 달리 통발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활동성이 좋아 보고 있노라면 "살아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앞으로만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뒤로도 이동한다. 바다에서 잡은 놈을 수족관에 두면 하루 정도는 얌전하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 익숙해지면 머리와 꼬리를 치켜든다. 공격적인 그 습성을 이내 드러내는 것이다. 갯장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에 네 개, 아래에 두 개 있다. 단지 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온몸을 비틀어 치명타를 입히려 애쓴다. 칼로 머리를 끊어도 그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끝까지 위협하려 한다. 물리면 살점 떨어지는 것은 예사다. 갯장어 다루는 이들은 손목 주위에 갯장어에 물린 흉터가 여기저기 있다.

1814년 정약전이 쓴 어류학문서인 <자산어보>에는 갯장어를 '견아리(犬牙驪)'라 표현했다.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빨은 개처럼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장어 효능에 대해서는 '맛이 달콤하여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하는 사람은 이것으로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라고 설명했다.

갯장어 산란 환경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아직 양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름 한철에다 오직 자연산밖에 없으니, 인간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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