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가시 많고 손질 까다로워 입속에서 천천히 음미하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 일품

체력 유지가 어려운 여름이면 '보양식'이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린다. 제철 보양식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런 면에서 갯장어는 인기 만점이다.

갯장어는 5월 말부터 9월까지가 제철이다. 일부 어민은 '9~10월이 더 맛있다'고도 하나, 여름 한복판에서 맛보는 갯장어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고성군 삼산면 두포리 주민들이 매일같이 바다로 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다림의 연속 갯장어

가격이 말해 주듯 갯장어는 그야말로 '귀한 몸'. 그도 그럴 것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기다림'이 연속한 결과다.

여름 한철을 기다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여름철이면 식중독이나 비브리오 위험 때문에 생선류를 금기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갯장어만큼은 예외다. 고성군 일대 횟집에선 '하모 개시'라는 펼침막을 내걸며 여름을 반긴다. 물론 여기에는 갯장어 샤부샤부(유비키)가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샤부샤부는 갯장어를 적당한 크기로 포를 뜨고서 펄펄 끓인 육수에 데쳐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음식을 말한다. 부드러우면서 탱글탱글한 육질, 시원한 육수 맛이 일품이다. 특히 익혀 먹다 보니 식중독에 걸릴 염려가 없다. 더불어 신선한 채소·약재가 들어가 담백함을 더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니 해마다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어떤 이는 경상도와 전라도 샤부샤부 맛을 비교하기도 한다. 전라도는 깔끔한 국물이 특징인 반면 경상도는 그보다 더 맵거나 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어떻든 제철 보양식을 맛볼 수 있다는 건 변함없다. 판매자로서도 여름철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셈이니 '기다린 가치'가 충분하다.

샤부샤부도 좋지만 갯장어가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역시 회다. 갯장어는 다른 장어류와 달리 횟감으로 맛이 뛰어나다. 게다가 100% 자연산이라는 점도 갯장어회가 사랑받는 이유다.

갯장어는 잔가시가 많다. 그 때문에 회로 내놓으려면 토막 내듯 잘게 썰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곳 주민들조차 '기술자 아니면 힘들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어떻게 써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하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또 갯장어는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생선으로 꼽힌다. 껍질을 벗겨 내고 잔가시, 지느러미, 내장, 머리를 제각각 다뤄야 한다. 버릴 게 없다 보니 주방장들은 칼질에 더 신경을 쓴다. 갯장어회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상 나온 갯장어회는 허겁지겁 먹기보단 천천히 음미할 것을 권한다. 갯장어회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쌈을 싸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무방하다. 콩가루를 얹어 먹거나 브로콜리, 오이, 당근 등 각종 채소를 곁들여 먹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방식이야 어떻든 제 맛을 느끼도록 입 안에서 적당히 '기다리는 것'은 필수다.

가장 맛있는 크기는 4~5마리 1kg으로 뽑힌다. 마리당 무게는 200~250g, 크기는 60cm 정도다. 너무 큰 것은 잔뼈가 억세 식감이 떨어진다. 반대로 40cm 미만의 작은 것은 어종 보존을 위해 낚시 때 곧바로 놓아준다.

구이용은 회보다 좀 더 큰 게 선호된다.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꽉 차야 구웠을 때 부드러운 맛이 잘 살아난다. 이곳에서는 소금구이보다 양념구이가 더 인기다. 고춧가루, 마늘, 설탕, 파 등으로 만든 양념장은 맵지 않고 단맛이 강해 어린아이 입에도 딱 맞다. 양념 제조법은 각 횟집 기밀사항이기도 하다.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

고성군 삼산면 두포리에는 갯장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횟집만 다섯 곳이다. 그중에서도 이 일대 갯장어회 원조라 자부하는 '나포리횟집'과 샤부샤부를 가장 먼저 선보인 '부산횟집'이 앞선다. 여기에 마을 어귀에 있는 '대봉장횟집'과 끝을 지키는 '끝마을횟집', 올해 개점한 '큰들민박횟집'이 더해진다. 모두 인접해 있는 까닭에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점심·저녁 시간에는 색다른 풍경을 볼 수도 있다. 7~8명이 승합차 한 대에서 우르르 내려 횟집으로 향하는가 하면, 횟집 사이사이에서 한바탕 '만남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손님을 맞는 집, 상대적으로 한가한 집도 확연히 구분이 된다. 그렇다고 도로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하거나, 서로 다투는 일은 결코 없다. 소비자로선 취향대로 자신만의 단골집을 만들어 볼만하다.

이들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갯장어 요리는 회, 샤부샤부, 구이로만 그치지 않는다. 어렵사리 잡은 갯장어는 전부를 내어준다. 껍질과 머리는 탕에 쓰인다. 갯장어탕은 토막 낸 살과 껍질·머리로 국물을 우려내고 고춧가루, 방아잎, 고사리, 숙주 등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마늘, 계핏가루 등으로 양념하는 음식이다. 흔히 회나 구이, 샤부샤부를 먹고 나서 식사류로 많이 찾는다. 특히 시원한 국물 덕에 해장음식으로 널리 알려졌다. 몸은 횟감으로, 뼈는 샤부샤부 육수로 쓰인다. 뼈는 튀김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나, 대부분 너무 굵고 딱딱해 즐기지는 않는다. 내장은 수육으로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100% 자연산인 하모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갯장어는 통째로 중탕해 먹기도 한다. 중탕은 커다란 솥에 3~4시간 달인 갯장어를 통째로 넣고 물로 희석해 10시간 이상 끓인 탕이다. 비린내를 제거하고자 기름에 한 번 볶기도 하나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이에 꺼리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확실히 피곤함이 덜하다"며 그 효능을 극찬한다.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술도 잘 넘어가고 훨씬 많이 먹을 수 있다'며 반기는 이도 있다. 중탕은 헛개와 가시오가피 등 각종 약재를 넣어 함께 끓이기도 한다. 대신 체질에 따라 신중하게 고를 것이 권장된다.

이처럼 다루는 집도, 요리도 다양한 갯장어.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보다 우선시하는 게 있다. 주민들은 그 '성질'을 가장 먼저 내세운다.

"힘이 얼마나 센데. 처음 잡는 사람은 허리가 휘청거려. 수족관에 있다가도 한 이틀 지나면 꼬리를 확 치켜들곤 해. 뱀 같다니까."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이 여름, 저놈 덕에 먹고살잖아."

횟집이든 요리든 성질이든 이래저래 재미가 쏠쏠한 게 고성 갯장어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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