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점심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11시 조금 지나서부터 몰려든 손님은 오후 2시 30분을 넘어서야 빠져나간다. 그때야 가족,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이 뒤늦은 식사를 한다. 그러면 곧바로 또 저녁 손님 준비에 들어간다. 좀 이른 시간에 찾기로 한 예약 손님이 있어 식탁에 기본 찬을 깔기 시작한다. 오후 5시를 넘기자 손님 발길이 또 이어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님을 치르고 오후 9시나 되어서 저녁을 먹는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정리하면 하루는 이미 가 있다.

고성군 삼산면 두포리에서 '부산횟집'을 운영하는 차태수(47) 씨는 여름 내내 이러한 하루를 이어간다. 차 씨는 가족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칠순 넘은 아버지, 예순 넘은 어머니가 직접 갯장어를 잡아온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손님 몫을 다 감당하지 못한다. 부족한 물량은 따로 들여온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잡은 것을 내놓는 횟집이 고성에 두어 군데밖에 없다. 오후 2시를 넘기자 부산횟집 창문 너머로 배 한 척이 들어온다. 차 씨는 큰 통을 들고 선착장으로 나간다. 갯장어잡이하고 돌아오는 차 씨 부모 표정은 어제나 오늘이나, 많이 잡히나 적게 잡히나 늘 똑같다. 차 씨 옆에는 남동생이 서 있다. 주방에서 갯장어 손질을 맡고 있다.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창 배워가는 중이다.

부산횟집을 운영하는 차태수 씨./박일호 기자 iris15@

차 씨 동생은 아버지·어머니에게 김밥 두 줄을 건넨다. 부모들은 10시간 넘게 배에 있으면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업에 열중해 끼니 놓치는 일이 잦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작은아들이다.

차 씨가 아버지한테 묻는다.

"오늘은 좀 잡히던가예?"

아버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한다.

"별로다."

하지만 배에 담긴 갯장어를 본 차 씨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흐른다.

"오늘은 많이 잡힌 편이네. 40kg 정도는 되겠는데?"

차 씨는 갯장어를 통에 옮겨 담고서는 동생과 함께 횟집 수족관으로 향한다. 횟집에서는 차 씨 아내가 밀려드는 손님을 상대하고 있다. 차 씨 부부, 부모님, 동생 등 7~8명이 횟집 일에 매달린다. 물론 여름 지나면 일반횟집과 다름없다. 이때는 손님이 덜하다. 사실상 갯장어 한철 장사다. 차 씨가 이곳에서 갯장어 횟집을 한 지는 10년 가까이 됐다.

"20대 때부터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칼질을 10년 넘게 했거든. 주방에서 회 써는 것 배워 가며 오래 일했지. 그렇게 한동안 밖에서 지내다가 1997년에 고향 고성으로 돌아왔지."

차 씨 부모님은 고향에서 어장을 하고 있었다. 갯장어도 쏠쏠찮게 잡았다. 부모님 일을 돕던 차 씨는 갯장어에 눈 돌리기 시작했다.

"아예 갯장어 횟집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 그 당시 고성에서 갯장어 하는 집은 두 곳밖에 없었거든. 갯장어는 몸 전체가 가시라서 잘게 썰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하거든. 전남 여수는 이미 갯장어로 이름 알려졌을 때라 거기서 다루는 법을 배웠지."

빚을 내서 땅 사고 건물을 지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 대한 기억이 있어 간판은 '부산횟집'으로 내걸었다. 그렇게 2003년 횟집 문을 열었다.

물론 반응이 좋았다. 수천만 원에 이르던 빚을 3년 만에 깔끔하게 털었다. 차 씨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당시 고성에서는 갯장어를 회로만 먹는 정도였지, 샤부샤부는 구경할 수 없었다. 차 씨는 더 섬세한 칼질을 통해 샤부샤부를 선보였다. 불과 5~6년 전이다. 손님들로서는 흔히 접하지 못한 음식이었다. 뽀얀 속살을 육수에 적시니 칼집이 예쁘게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훌륭했다. 가시가 입에 부딪히는 느낌도 없었다. 입안에 부드럽게 감기는 그 맛은 일품이었다.

한번 맛본 이들은 바로 단골이 되었다. 회보다는 값을 좀 더 치르고서라도 샤부샤부를 찾는 이가 늘었다. 주변 횟집에서도 내놓기 시작하면서 이제 삼산면 두포리는 '하모 샤부샤부'로 유명한 마을이 되어 있다.

"대전·서울에서 오는 건 예사지. 외국 살던 사람이 일 때문에 서울에 왔다가 갯장어 맛을 못 잊어 우리 집에 발걸음 하기도 했지."

차 씨는 갯장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어릴 때도 갯장어 잡는 배가 많았지만, 아는 사람들이나 조금씩 먹었지, 바깥사람들은 몰랐어. 가끔 휴가오는 사람들이나 한 번씩 맛보는 정도였을까…. 여기서 잡은 거는 전부 일본에 수출했지. 갯장어잡이가 제일 좋았을 때는 1990년대 초반 정도였다고 보면 되지. 그때는 kg당 3만 원 정도 했다고 하니 엄청난 거야. 20년 지난 지금도 그 정도 가격이 안 되니까. 갯장어로 외화 많이 벌어들인 셈이지. 지금은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한데 수출할 수가 있나."

그 몸에 좋다는 장어를 늘 접하고 있는 차 씨다. 그 덕을 좀 보고 있을까?

"우리야 뭐, 자주 먹으니까 한번 먹었다고 기운이 넘치고 그러지는 않지. 그래도 몸 아픈 데 없는 걸 보면 그 덕 때문 아니겠어.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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