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표는 '현장중심 연구 지원센터'를 건립하는 것

사천시를 흔히 첨단항공우주도시라고 부른다.

사천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용기 분야 방위산업체이자 민간 항공기 부품 생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주)와 30여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있다. 그리고 사천 첨단 항공우주 과학관, 항공박물관, KAI 에비에이션센터 등 항공우주를 테마로 한 특색있는 관광자원도 풍부해 첨단항공우주도시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남테크노파크 항공우주센터가 설립됐기에 사실상 첨단항공우주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옥주선 센터장이 지난 2004년 신지식 기계산업 특화기술 기반구축 사업부장으로 취임하지 않았다면, 첨단항공우주도시 사천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항공우주센터는 설립 당시 경남테크노파크에 속한 하나의 부서로 신지식 기계산업 특화기술 기반구축 사업부였다. 이 부서가 신설된 지난 2004년부터 항공 관련 중견기업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던 옥주선 센터장이 책임을 맡게 됐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

항공우주센터의 성공 신화를 만들다

경남테크노파크로 자리를 옮긴 옥 센터장은 밤낮없이 업무에 매달렸다. 주말과 휴일도 반납했다. 1년 365일 오로지 일밖에 몰랐다. 여기에 그의 탁월한 능력까지 보태지면서, 지금까지 추진했던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실제 지난 2007년 지식경제부의 지역혁신기반구축 공모사업에 응모해 선정됐고, 2008년에도 지식경제부의 공동연구기반조성사업 공모사업에도 선정됐다. 그리고, 2012년에도 고용노동부의 지역맞춤형인력양성사업과 지식경제부의 동남광역경제권 선도산업 항공프로젝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으로 불린다.

그의 성공 신화에 힘입어 신지식 기계 산업 특화기술 기반구축 사업부는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된다. 지난 2010년 항공우주센터로 승격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사업부의 규모 또한 엄청 커졌다. 항공우주센터는 63억 원의 사업비로 부지 2만 6124㎡에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됐는데, 항공업체를 위한 입주공간과 행정실, 교육장, 전시실, 회의실, 공장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6개 업체가 입주했으며 이 가운데 경북 김천에서 입주한 AMI 연구소,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한국폴리텍항공대학 교육장을 센터 내에 구축해 항공업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박일호 기자

‘택도 없다’는 센터 건립을 기어이 해내다

항공우주센터 건립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옥 센터장의 추진력과 대범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항공우주센터의 터 구입비가 20억 원인데, 책정된 예산은 4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항공우주센터 건립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옥 센터장은 큰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경남개발공사에 16억 원을 빌리기로 한 것인데,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택도 없다'는 뜻이다.

옥 센터장은 경남도와 경남개발공사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담당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결국, 옥 센터장의 끈질긴 노력에 16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게 됐고, 항공우주센터도 1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중용에 나오는 '성자천지도야(誠者天之道也)'라는 글귀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산다는 옥 센터장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싶다. 성자천지도야는 성실함의 중요성이 담긴 말이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박일호 기자

하지만, 항공우주센터가 커지면 커질수록 옥 센터장은 가정적으로는 ‘0점 남편’이고, 1남 1녀의 자녀에게도 ‘0점 아빠’로 인식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산1호 항공기 ‘부활’ 개량복원 사업을 착수할 때에는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이어트가 됐다고 한다. 몸무게가 20㎏ 이상 빠졌다고 하는데, 이를 지켜본 부인 신옥희(53) 씨의 심정이 어땠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국산1호 항공기 ‘부활호’ 개량복원 성공

부활호는 지난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됐는데, 1954년 4월 3일 명명식을 가진 국산1호 항공기이다. 특히, 6·25전쟁 후 국산 항공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공군이 항공기 설계 제작 실습과 연습기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했으며, ‘부활’이라는 이름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이 직접 짓고 친필 휘호를 내렸다. 그래서 부활호 개량복원 사업을 하는데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부활호의 기술과 역사를 계승해 경남이 소형기 개발과 친환경 비행기(전기 비행기) 개발을 선도하자는 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활호 개량 복원 사업은 그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적은 예산으로 개량 복원한 부활호를 날릴 수 있겠느냐는 의심과 50년대의 비행기를 복원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부활호 개량복원 사업비는 고작 10억 원이다. 그리고, 부활호의 설계도를 구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박일호 기자

공군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고, 부활호 최초 설계자인 이원복(87) 예비역 공군대령을 찾아 부활호 복원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등 발품을 팔았다. 더구나 부활호를 개량 복원하더라도 조종사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비행기를 조종할 조종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에 옥 센터장은 개량 복원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조종사부터 물색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개량 복원 사업에 참여시켰다. 부활호를 믿고 조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옥 센터장의 뜨거운 열정과 발품을 판 대가로 드디어, 2011년 7월 14일 부활호가 2년여의 개량 복원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날 개량 복원된 부활호 2대가 일반에 공개됐고, 전시용 1대를 제외한 실제 비행용 1대가 20여분 동안 기념비행을 했다. 옥 센터장은 부활호가 활주로를 따라 달리다 하늘로 솟아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감격에 겨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옥 센터장은 “부활호가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치고 격납고 앞에 멈추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그리고,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며 “그동안의 고생이 완전히 날아가는 듯 했다. 부활호 개량 복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경남도가 주관하고 재단법인 경남테크노파크가 총괄한 이 사업에는 모두 10억 원이 투입됐다. 경남도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박일호 기자

옥 센터장은 항공 관련 중소기업들이 항공기를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는 ‘현장중심 연구 지원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항공우주센터장으로서의 최종 목표라고 한다. 이는 확실하게 항공클러스터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그의 질주본능이 멈추지 않는다면, 사천은 우리나라의 첨단항공우주도시가 아닌 세계적인 첨단항공우주도시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부활호와 복원된 부활호

부활호는 지난 1953년 국내 기술로 제작된 최초의 국산 비행기(2인승 경비행기)이다. 전쟁 중인 1953년 6월 28일 비행기 제작에 들어갔는데, 같은 해 10월 11일 사천 공군기지에서 민영락 소령이 조종하고 설계자인 이원복 소령이 동승해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휘호를 받았다. 부활호라는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을 부활시켜라’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부활호는 1960년까지 정찰·연락, 초등훈련용으로 사용됐다.

부활호는 공군이 지난 2004년 원형 복원한 적이 있다. 복원 당시 활주로를 달리기는 했으나 실제로 비행할 수는 없었다. 원형 복원에 초점을 맞춘 때문이다. 이에 경남도는 지난 2009년 4월 10억 원의 사업비로 부활호 개량 복원에 나선 것이다. 물론 경남테크노파크 항공우주센터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경상대학교와 함안에 있는 수성기체산업(주)이 힘을 보탰다.

항공우주센터는 부활호의 형상은 유지하되 성능개량과 경량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기존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2004년 공군이 원형 복원한 도면을 토대로 설계했다. 복원과정에서 기존 85마력 엔진 대신 100마력의 고효율 엔진을 장착해 최고속도를 180km에서 250km로 성능을 높였고, 수상비행에 필요한 플로트도 장착했다. 그리고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하는 항공기용 낙하산과 블랙박스 장치 등을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동체와 꼬리날개는 복합재 재료, 주 날개는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등 성능과 장비를 대폭 개량했다. 외형은 길이 6.6m, 폭12.7m, 높이 3.05m, 무게 380㎏으로 기존의 부활호와 동일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비행기 ‘부활호’는 58년 만인 지난 2011년 7월 14일 이름처럼 부활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옥주선 항공우주센터장./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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