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철판 요리로 복합 외식 문화 공간 만드는

소년은 마산 구산면에서 나고 자랐다.
눈부시게 푸른 남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찬란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매년 봄 밀물이 되면 집앞 갯가 바닷속에는 큼직한 물고기 떼가 아른거렸다.
맨손으로 잡아올린 물고기들이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즈음, 갯가 한편에 모닥불을 피웠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잡은 물고기를 맛있게 나눠 먹고 나면 불의 힘은 점점 사그라져 한 줌 재와 연기만이 적막을 드리웠다. 한낮 뜨거운 몸을 불사르던 태양은 뉘엿뉘엿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내뿜는 아우라를 몸소 만끽한 소년은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먼 훗날 바로 이 자리에 '석양'이라는 이름을 내건 멋들어진 레스토랑을 하나 만들겠노라고…….

소년이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이 꿈은 30여 년 뒤 현실이 됐다.

마산 구산면 내포에 자리 잡은 ‘석양 레스토랑’(이하 석양). 이 집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작 철판’ 삼겹구이와 새우구이로 일찌감치 지역을 넘어 전국적 유명세를 치른 전국구 맛집이다. 최근 3년 사이 MBC, KBS, SBS 방송 3사 전파만 무려 5차례나 탈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취재차 찾아간 지난 5월 6일 점심에는 NC다이노스 주장 이호준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갔단다.

/사진 박일호 기자

옛 맛에 대한 기억이 만든 작품

‘꿈을 이룬 소년’ 석양 강일구 사장은 올해로 16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어릴 적 갯벌이던 지금 자리는 매립이 되어 말끔한 호안이 만들어지고 왕복 2차선 도로도 놓였다. 이렇게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추억 속 아름다운 석양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석양이 자랑하는 '장작 철판구이'는 강일구 사장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어릴 적엔 잔치나 초상이 나면 어른들이 돼지를 직접 잡았어요. 돼지 잡는 날은 흔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고기 일부를 어른들 몰래 빼돌려 친구들과 산에 가서 황토랑 솔잎, 솔가지를 으깬 반죽에 덮어 구워먹었죠. 황토는 구우면 단단해지는데 이 안에서 솔향과 고기 육즙이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거예요. '장작 철판구이'는 여기서 착안한 겁니다.” 황토는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반죽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빠른 순환이 필수적인 식당업에는 맞지 않았다. 이런 황토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바로 철판이었다.

탁 트인 바다가 시원스런 눈 맛을 사로잡는 석양의 철판구이 맛은 어떨까? 장작 철판 삼겹구이와 새우구이를 모두 시켰다.

장작불로 향 더하고 철판에서 맛 곱하고

먼저 삼겹구이. 석양은 황토와 녹차 먹인 브랜드 돼지를 주로 쓴다.

/사진 박일호 기자

삼겹살은 철판에 오르기에 앞서 훈연 초벌 과정을 거친다. 알루미늄 포일에 소나무 껍질과 삼겹살을 넣고 나무 장작에 잠시 구워내는 것. 이를 통해 석양 삼겹살은 돼지고기 특유의 구수한 맛과 소나무가 가진 솔향이 서로 융화돼 일반 삼겹살과는 색다른 풍미를 낸다.

이렇게 초벌된 삼겹살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 철판에 오른다.

삼겹살이 철판에 오르고 얼마 후 석양만의 특제 소스가 뿌려진다.

한데 이 소스가 압권이다.

철판에 잔뜩 들이부은 소스에 불을 붙이자 철판 위로 불기둥이 솟구친다. 밤이면 더욱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기둥이 사그라지면 삼겹살은 이미 먹음직스럽게 익혀져 있다.

“우리 집 소스는 바로 ‘술’입니다. 구이요리에 풍미를 더해주는 갖가지 양주를 한데 담은 건데, 알코올 도수만 100도가 넘습니다. 160도 이상 달궈진 철판에 소스를 뿌리고 불을 붙이면 육즙이 새어나오지 않아 장작 삼겹살의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의 불쇼를 본 뒤 즐기는 삼겹구이는 그야말로 진미다. 소스 덕에 직화로 구워진 만큼 겉은 단단·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해 씹는 맛이 산다. 살짝 그슬려진 겉은 고소한 맛이, 육즙이 꽉 잡힌 속살에는 은은한 소나무 향이 배어나 입안을 즐겁게 한다.

새우구이에 사용하는 새우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산 수입 대하를 사용한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 대개 몸집이 크기 마련인데 이 집 새우도 마찬가지다. 길이가 건장한 어른 손바닥만 하다.

/사진 박일호 기자

살집도 그득해 한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새우 살이 꽉 찬다. 새우 역시 삼겹살과 같은 소스에 불 찜질을 당하는데 덕분에 껍질과 육즙에 고소한 맛이 한층 배가 된다.

맛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 가득

이들 구이 음식에는 1년 동안 숙성된 묵은 김치가 곁들여지는데 이 역시 별미다.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철판에 구워먹어도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 특이한 점은 이 집에는 삽겹살, 새우, 김치 말고는 다른 반찬이 없다는 점이다. 고기를 먹을 때 흔히 생각나는 마늘, 고추, 상추 따위 푸성귀도, 쌈장이나 참기름 등 양념류도 없다.

이는 잘 숙성된 김치만으로도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강일구 사장의 신념이 담겼다. 손님들이 처음에는 부실한 밑반찬에 성화를 내다가도 김치를 먹는 순간 화가 누그러질 때가 잦을 정도로 최고의 김치 맛을 낸다는 자부심도 있다.

석양의 모든 음식이 완성되는 철판구이용 식탁은 모두 강일구 사장이 손수 만들었다. 철판 두께는 영업비밀이라 가르쳐 줄 수 없다지만 철판을 둘러싼 나무식탁 두께로 봐서는 2~3㎝ 정도로 보였다. 철판 바로 아래에는 장작을 넣어 불을 때는 나무연료통이 연결돼 있다. 앉아있으면 허리 아래로 뜨거운 열기가 엄습한다. 덕분에 대부분 손님이 서서 음식을 먹게 되는데 덕분에 야외 바비큐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겨울에는 식탁 아래 더운 열기를 찾아 일부러 석양을 찾아 식사 겸 찜질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단다.

복합 외식 문화 공간으로 변신 시도 중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많은 손님 덕에 이미 성공한 식당으로 이름난 석양. 이런 석양이 최근 또 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바로 음식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복합 외식 문화 공간’으로의 탈바꿈이다. 이를 위해 올해 초 건물 뒤 유휴부지에 작은 상설 공연 무대를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이곳에서 5인조 재즈그룹을 초청해 공연을 펼쳤다.

석가탄신일인 오는 17일에는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 초청 공연을 준비해 손님을 기다린다. 인간문화재의 전통 줄타기 시연과 다양한 풍물, 탈놀이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을 통해 석양을 찾는 손님들에게 먹는 즐거움은 물론 보는 즐거움도 함께 전하겠다는 각오다.

이날 공연이 끝나면 다음에는 인디언 음악 공연을, 8월에는 구산면민을 위한 노래자랑 대회 같은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잇달아 열 생각이다.

“매주 주말이 되면 많은 관광객이 구산면을 찾아옵니다. 전원생활을 위해 구산에 터 잡은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게 ‘문화적 욕구 충족’입니다. 구산은 도시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면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기러 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구산 토박이인 저로서도 많이 안타까운 일이죠.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하고자 미력하나마 제가 지역에 도움이 되려는 것입니다.”

소년이 이룬 꿈이 더 큰 꿈이 되어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셈이다.

/사진 박일호 기자

<메뉴 및 위치>

◇메뉴 : △삽겹살(550g) 3만 원 △새우구이 3만 원 △흑미찰밥 1000원 △소주 4000원 △맥주 4000원 △음료수 2000원. 
◇위치 :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51 (구산면 해양관광로 1393). 055-221-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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