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붓으로 옮기는 화가

사람과 만나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 보는 눈이 밝아진다. 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아닌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억지웃음을 짓는 건지 아닌지…. 어느덧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인스턴트식’의 만남에 익숙해질 때쯤, 그를 만났다. 소탈한 웃음과 검소한 생활태도, 순수한 마음, 가식이 없는 솔직 담백함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경계심이 풀어지고, 진심으로 그를 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색 도화지가 자연스레 물감을 빨아 당기듯 조현계 수채화가(67)는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4월 말, 그의 18번째 개인전(5월 15일~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을 앞두고 작업실을 찾았다. 마산합포구청 앞 상가 2층이다. ‘계림화실’이라고 화선지에 먹으로 쓴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작업실도 그의 품성만큼 소박하고, 꾸밈없어 보였다. 작업실 한 편에는 서울에서 전시될 작품이 겹겹이 쌓여있거나 벽에 걸려 있었다.

수채화가 조현계./김구연 기자

-거의 다 풍경 그림이네요.

“그림에서 생기가 넘쳐 나지 않나요? 이 그림을 보면 덥게 느껴지고 저 그림을 보면 춥게 느껴지고. 90% 이상을 현장에서 작업했는데, 2011년 5월부터 강원도, 전라도, 경기도, 제주도 등을 다니면서 그린 거예요.”

-요즘 화가들은 카메라로 현장을 찍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잖아요.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거지요. 화가에게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곧 행복이고 바람과 향기, 소리까지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이 화가의 마음입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는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찍어요. 18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는데, 그 중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세 군데를 말할 수 있겠네요.”

-어디요?

“제주도 성산일출봉, 강원도 울릉도, 거제 매물도….”

-혹시 그림으로 그렸으면 볼 수 있을까요?

“성산일출봉하고 울릉도는 배를 탔을 때 본 풍경이라, 그림을 그릴 수 없었어요. 그 대신 카메라로 찍었죠. 매물도는 3점정도 그렸는데, 다 팔렸어요.”

수채화가 조현계./김구연 기자

-‘조현계’하면 경남에서 손꼽히는 수채화가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요?

“허허허. 어렸을 땐 그림이 너무 좋았죠. 제가 공부는 못했어도 그림으로 받은 상은 많아요. (웃음) 초등학교 무렵 어머니가 부림시장에서 ‘부림식당’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제가 끊임없이 데생 연습을 한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데생 연습을요?

“네. 어머니가 시장에서 게나 가재 등을 사오면 식당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그것을 똑같이 연필로 그렸어요. 아주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묘사를 했는데, 손님들이 제 그림을 보고 “살아있다”면서 칭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깨가 으쓱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죠. 식당 옆 포목점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자극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 당시 그 여자애는 제일여고 학생이었는데, 서양 배우들을 연필로 자주 그렸습니다. 한 날은 그 애의 스케치북을 보고 묘사를 너무 잘해서 잔뜩 놀란 적이 있죠.”

-마고(마산고등학교)를 나왔던데…. 그 당시 마고를 다녔으면 공부를 잘한 거 아닙니까?

“운으로 간 거죠.(웃음) 마산중 담임선생님이 “마고 넣으면 떨어진다”면서 못 넣게 하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떨어져도 좋다. 무조건 넣어달라”고 부탁했었죠. 저도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합격자 발표일에 확인해보니 제 뒤에 100명이나 있는 거 있죠? (웃음)”

-고등학교 시절, 어떤 학생인지 궁금한데요.

“영어, 수학 등 입시공부만 하면 머리가 아픈 거예요. 수업 시간에 책은 안보고 그림 그리는 것만 상상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공부하지 말고 그림만 하루 종일 그리게 해주세요!’라고 빌었어요. 그때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고 싶다’라는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미술부 활동도 했다고 하던데….

“네. 수업 끝나면 부원들과 마산고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 3때는 얼떨결에 미술부 부장을 했어요. (웃음) 제가 아까도 말했잖아요. 공부는 못했어도 그림을 잘 그려서 상을 많이 탔다고…. 졸업할 때는 ‘공로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미술대회가 많았나보네요. 어떤 상을 받았나요?

“음…. 진행군항제, 충무한산제, 마산항도제, 밀양아랑제, 부산일보사생대회, 국제신문파스텔대회, 진주개천예술제….”

조현계 수채화가는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에 합격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이어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사업도 망했고, 어머니의 건강도 악화됐다. 3남 2녀 중 둘째였던 그는 어머니를 살려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과감히 붓 대신 칼을 들었다. 혼자서 하루에 우동을 50그릇 만들고, 서빙하고, 배달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생활을 했건만,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선배 소개로 진동 삼진중학교 미술교사로 1년 동안 근무했고 군대에 갔다. 제대 후 제일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으며 1972년 ‘조 아틀리에’를 지금 작업실 자리에 차렸다. 그리고 만 3년 후 그는 경남미술학원계 양대 산맥인 ‘계림미술학원’을 차리게 된다. 계림미술학원은 고 남정현 작가가 문을 연 남화실에 이어 만들어진 도내 2번째 화실이다.

수채화가 조현계./김구연 기자

-김경미, 노춘석, 노충현, 이임호, 이종두, 정원식, 조재익, 조충래, 조현경, 박두리, 배달래, 홍정미, 하판덕…. 지역과 전국서 이름값 하는 화가들이 전부다 선생님 제자예요?

“(자랑스럽게)네~. 교편도 잡고 학원도 약 30년이 넘게 운영하다보니, 제자가 많네요.”

-지금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전혀 엄할 것 같지 않은데…. 다들 매도 잘 때리고 무지 엄한 선생이었다고 하던데요.

“혼자서 40명 학생을 가르치다보니 스파르타식으로 지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매를 들면 큰일 나지만 그때 당시엔 매로 학생을 다스리던 시절이었으니까…. 몇몇 학부모는 저에게 와서 “아들, 대학 좀 보내 주이소”하며 맡겼는데 아이 장래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생활했고요.”

-5월 15일 스승의 날 때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를 여는데, 제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오겠네요.

“(웃으면서) 일부러 그 날을 잡았잖아. 사람들 많이 오라고…. (웃음)”

-1972년 제1회 수채화전을 열었고, 1974년~1978년 제2‧3‧4회 유화전을 열었네요. 그 이후에는 쭉 수채화전만 고집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투명수채화에서 불투명수채화로, 비구상에서 구상으로, 스타일이 바뀌긴 했지만 수채화를 좋아합니다. 수채화는 물로써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는 화풍입니다. 유화를 소설이라면 수채화는 시라고 할 수 있지요. 형체가 있는 시가 그림이고 형체가 없는 그림이 시지요. 김춘수의 <꽃>, 김소월의 <진달래>, 유치환의 <깃발> 같은 시를 읽으면 꼭 한 폭의 수채화 같지 않나요? 물의 원숙함과 깊이, 중후함, 동양적인 느낌, 파스텔 색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무학산의 봄.

-미술선생이 아닌 작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1991년 동서미술상 수상 때라고 알고 있습니다. 송인식 동서화랑 관장님과는 그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 인가요?

“1991년 이전부터 송 관장님은 마산에서 화랑은 운영해온 터라 잘 알고 지냈습니다. 동서미술상을 덜컥 받고나니 한 편으로는 부담이었으나 그림에 전념하라고 주는 상인만큼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현장작업을 고집하시는 만큼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려면 체력관리를 잘하셔야겠어요.

“배낭에 파라솔, 의자, 붓과 물감 등만 있다면 어디든 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지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 엎드려서 4시간 정도 그림을 그려도 힘든 줄 몰라요. 젊었을 때야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서 요즘 말로 ‘배에 왕자’가 있을 정도로 건강했지만 지금은 많이 쇠약해졌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왕자가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웃음) 제 인생은 기찻길입니다. 개인전은 간이역과 같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18번째 간이역을 지나고 있죠. 종착역에 다다를 때는 수채화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가 있길 바라봅니다.”

그가 18번째 수채화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은 약 50점 정도다. 굵직굵직한 힘 있는 선들과 선과 선의 경계를 허무는 붓 터치,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물들이는 색채, 붓으로 툭툭 치듯이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풍경들.

성산일출봉.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지 못 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애써 꾸미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정직한 노력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서울 전시에 이어 6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도 그의 18번째 수채화 개인전은 계속된다.

유채밭.
정선 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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