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것도 화끈하게 해결하는 ‘옆집 총각’ 같은 방송인

경남도민이라면 도로를 달리다 한 번 쯤은 라디오에서 들어봤을 목소리, 쇼파에 누워 한없이 채널을 돌리다 한 번 쯤은 스쳐봤을 젊은 아나운서. 이번 언론인 인터뷰는 KBS창원총국 심인보(35. KBS 공채 31기) 아나운서다.

중학생 때부터 방송에 관심 가져

“개인적인 것 가지고 하는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KBS창원총국 1층 카페에서 영광스럽게도 기자는 국내, 아니 전 세계 최초로 심인보 아나운서 심층 인터뷰를 하게 됐다.

-부인도 아나운서라고 들었습니다.

“네, 박소영 아나운섭니다. 2011년 11월에 결혼했습니다. 지금 뱃속에 아기가 있고, 6월에 태어날 예정입니다.”

-부인과 함께 방송한 것이 있나요?

“네, 한 때는 9시 뉴스를 같이 했습니다. 이런 건 굉장히 드문 일인데, 아무도 기사를 써 주지 않았습니다(웃음).”

심인보 아나운서./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고향이 어디십니까?

“제 고향은 서울 개포동입니다.”

-그럼 서울에 태어나셔서 중고등학교를 경남으로?

“아뇨,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다녔습니다. 대학을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에 오게 됐습니다.”

-서울에도 좋은 대학 많은데, 멀리 포항까지 온 이유는 뭔가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방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교도 당연히 방송계열로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연세대 신방과, 서강대 신방과 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야간자율학습을 하는데 짝지가 한동대 김영길 총장 연설 테이프를 들려 주는 겁니다. 한동대는 획일화된 전공 선택을 막기 위해 1학년 때 무전공 무학부 체제로 운영하고, 시험을 칠 때도 감독이 없는 ‘양심시험’을 친다는 겁니다. 또 학교 모토가 ‘배워서 남주자’입니다. 딱 느낌이 왔습니다. 이 학교에 가야겠다.”

-반대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담임 선생님 말씀이 ‘신생학교라 대학 선배도 없고, 재단이 건실한 것도 아니고, 막말로 군대 갔다오면 없어질 수도 있는 대학’이라며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게 당시 가나다라 학군 모두 다 원서를 쓴 겁니다. 한동대는 다 학군에 있었고, 나머지 가나라 학군은 서울 지역 대학에 원서를 냈습니다.”

아마도 서울 지역 대학에 합격하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판단이었으리라. 그는 4학군 모두 합격을 했고, 주저 없이 한동대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2학년으로 복학한 그는 언론정보문화학부에 들어갔다.

뉴스 생방송 중인 심인보 아나운서./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그럼 어떤 계기로 아나운서가 되신 거죠?

“아…. 이게 이야기가 참 깁니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2학년 때는 광고에 흥미가 있어 공부를 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 3학년 때에는 연극에 흥미가 있어 연극을 하고, 한동대 방송국을 만들고 PD를 하기도 했다. 이후 CEDA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나가서 3학년 때는 16강, 4학년 때는 우승을 했다. 이 때 처음으로 ‘말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PD나 공연기획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3학년 때 동숭 아트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점을 리포터로 동숭 아트센터에 제출했다. 동숭 아트센터에서는 ‘졸업만 하면 하우스 매니저를 보장한다’고 했다. 4학년이 되자 진로상담을 하던 지도교수가 ‘아나운서 해봐라. 말도 잘하고 어울린다’고 하자, 교수를 믿고 아나운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갑작스런 도전이라 전혀 준비가 없었지만 MBC공채에서 4차 실무면접까지 가는 성과를 이뤘다. 그리고 1년 동안 더 준비한 끝에 2004년 KBS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2005년 KBS 창원총국에 발령을 받았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게 아나운서

창원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을까?

“솔직히 저는 창원시를 교과서에 계획도시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당시 KBS창원총국에 부장님(노병무 아나운서) 말고는 남자 아나운서가 없어서 창원에 오게 된 겁니다. 창원을 보니 도시가 예쁘고, 공원이 많고, 자전거도로도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창원에서는 이방인(?)이었던 그를 순식간에 인기남으로 만든 것은 역시 KBS 9시 뉴스 진행과 <소화제>였다. 그는 이 가운데 <소화제>를 각별하게 느끼고 있었다.

“<소화제>는 ‘소소한 일에 대해 화끈한 해결책을 제시해 드립니다’의 줄임말입니다. 저는 하얀 가운을 입고 닥터 심이라는 이름으로 경남, 서울, 일본 등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습니다.”

<소화제> 촬영중인 심인보 아나운서./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소화제>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10원 짜리 동전을 모아 보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제 10원 짜리는 돈으로 생각을 안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10원 짜리를 모아봤습니다. 화장대, 화장실, 시장통 등 온갖 곳을 다 찾아봤습니다. 방송에서 공지도 하고, 부녀회에게 부탁도 하고, 가두행진도 하면서 10원 짜리를 모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약 100만 원 가량이 모였습니다. 이를 당시 기름유출 사고로 고생하던 태안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또 전 제작진이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을 닦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창원 출발해서 밤 11시에 창원 왔는데, 정말 많은 것을 느낀 방송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송대상을 받은,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 플라스틱 변기를 설치해 주는 것도 기억에 납니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맞춤형 아이템이었고, 정말 어르신들이 좋아한 화끈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소화제가 그에게 또 각별한 이유는 그의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화제> 프로그램의 특성상 현장에서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고, 덕분에 그는 ‘옆집 총각 같은 아나운서’라는 캐릭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 활동 모습./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사람들이 정말 많이 알아보시죠?

“네. 그렇습니다. 처음엔 망설이거나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시고 나서는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모릅니다.”

-알아보는 방식도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은데.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조건 일단 잡는 유형입니다. 팔을 잡던 엉덩이를 툭 치건, 자신도 모르게 반가워서 접촉을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돌아보면 굉장히 당황해 하시죠. 두 번째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속닥거립니다. ‘심인보 아냐?’ 그래도 직접 확인할 자신은 없어서 아이를 보냅니다. 아이들이 와서 ‘텔레비전 나오는 아저씨 맞아요?’라고 묻죠. 세 번째는 알아보기는 했는데 아는 체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분입니다. 그럴 때 누군가 용감한 사람이 나서면 우르르 몰려드는 형태입니다.”

심인보 아나운서./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가장 잘 알아보는 분들은 누구십니까?

“택시 운전 기사들입니다. 제 목소리 한 마디만 들어도 바로 알아보십니다. 심인보 아나운서 아니냐고. 그럴 때 참 고맙죠.”

-택시도 타고 다니십니까?

“택시도 타고 다니고, 버스도 타고 다니고, 요즘엔 누비자도 자주 타고 다닙니다.”

KBS아나운서라면 다른 직장인보다 경제력이 좋을 것 같은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닌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결혼하고 나서 살이 쪄서 운동 삼아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늘 대중교통 이용하자, 누비자 이용하자고 제가 말을 하기 때문에 제가 한 말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인보 아나운서./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기획안을 내는 아나운서

-아나운서의 일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뉴스 하고, 녹화 하는 시간 말고는 뭐 하십니까?

“저희들도 일반 회사원과 비슷합니다. 서류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있고, 결재 받아야 하는 것이 있고, 청사 환경개선 TF팀이라고 그 팀에 들어가서 논의도 해야 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방송국에서 하는 행사들 사회를 해야 하고, ‘바른 우리말 선생님’이라고 해서 청소년 언어순화 사업이 있습니다. 전국 학교를 돌면서 특강을 해야 합니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난리겠네요.

“네, 특히 싸인을 해줘야 하는데, 일일이 다 해주다 보니까 제작진이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수십 장을 미리 준비해서 가져갑니다.”

-출근은 언제 하십니까?

“보통 오후 2시 출근입니다. 퇴근은 밤 10시 정도고, 특집이 있거나 녹화가 있으면 더 빨리 와야 합니다. 또 한 달에 한 번 씩 일종의 당직인 주말근무를 합니다. 토요일·일요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있어야 합니다.”

-뉴스 진행도 많이 하시죠?

“오후 3시 1라디오 뉴스, 오후 4시 2라디오 뉴스, 오후 5시 1라디오 뉴스, 9시 TV 뉴스를 합니다.”

-뉴스 진행이 많으니 시간 관념도 철저해야 할 건데.

“솔직히 많이 예민해 집니다. 정해진 시간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앉아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긴장을 하니까 꿈을 많이 꿉니다. 꿈에서 뉴스 원고가 전부 한문으로 돼 있을 때도 있고, 원고가 신문기사로 돼 있을 때도 있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자고 일어나면 진땀이 엄청납니다.”

-제가 얼마전에 듣기로 프로그램 기획안을 하나 내셨다고 하는데요. 아나운서로는 드문 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아나듀서(아나운서+PD)를 지향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진행자 입장에서 아나운서를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면 좋겠다.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형태라면 어떤 걸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기획안 내용이 뭡니까?

“<경남100경 완전정복>처럼 경남 100인을 다루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약 2만 개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 경남에 100가지 직업은 충분히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남에도 해녀도 있고, 프로구단이 많으니 치어리더처럼 색다른 직업이 경남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애환을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탈락했습니다. 하하.”

심인보 아나운서 친필 싸인./심인보 아나운서 제공

“보편적 것이라면 말할 수 있어야”

심인보 아나운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한다. 대개는 일상적인 내용이 많지만, 간간이 강한 비판도 드러난다. 종편, KBS 비정규직, 유력인사들의 성문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아나운서는 정보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속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할 때는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 올린 글로 인해 반박이나 비난이 들어온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또한 아나운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한다고 한다.

“아나운서는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궁금한 건 시청자도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시청자가 궁금한 것은 저도 궁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안 궁금하다고 묻지 않으면 시청자는 들을 기회가 없는 거죠. 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정에 맞춰서 방송을 하기 보다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제가 4시간 동안 봤는데, 아무리 직업이 그렇다고 그래도 표정이 너무 밝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좋은 일이 있습니까?

“저는 모든 게 늘 감사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지만, 그것보다 감사할 것이 훨씬 많지 않나 싶습니다. KBS 아나운서라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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