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노래하다

“올해는 시인의 탄생 80주년이라 박재삼 문학제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준비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제16회 박재삼 문학제를 준비하는 박재삼 문학선양회 김경 회장의 첫마디다.

바다도 나무도 그 푸름이 한층 깊어지는 6월 7일~9일, 박재삼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천시 삼천포항이 내려다 보이는 노산공원으로 전국의 문인들이 대거 방문할 예정이다.

올해로 16회째를 맞이하는 박재삼 문학제는 그동안 청소년에서부터 문학지망생, 경남의 문인들과 전국 문인들을 이어가는 역할을 아낌없이 해왔다. 여기에다 문학제를 통해 문인들과 지역 대중들을 잇는 가교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독창적인 기획력과 프로그램 진행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화예술인과 지역민이 만드는 축제

박재삼 문학제는 그동안 기획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도 문학을 넘어 미술, 음악, 도예 등 다른 문화예술 장르와 어우러진 기획을 자신있게 내놓고 있다. 대중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박재삼 문학관 전경./사진 권영란 기자

사천미술협회는 박재삼 시인 그리기대회를 연다. 박재삼 시인 얼굴, 박재삼 활동 상상화, 박재삼 캐릭터 그리기, 박재삼 시화 그리기 등 참가자들이 자유롭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의 정형화 된 그림대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시노래 음악제 ‘찬란한 미지수를 풀어놓고~’는 경남(사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작품으로 노래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다. 사천가수협회에서 주관한다.

문학제 기간내 열리는 시도자전시회는 참가자는 물론 전국에서 찾아온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대부분 문학제에서는 시화전을 여는데 서예와 도예를 접목한 시도자전시회라 특별하다.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서예가와 도예가가 합심을 해서 만든 전시회라 더욱 의미가 있다.

배희권 화가는 ‘전국 시민·문인 캐리커처전’에서 평화를 위한 100만인 얼굴 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문학제 현장에서 20~30초에 그려 전시하게 된다.

거기에다 박재삼 문학제 기간에 ‘문인 및 시민·학생바둑대회’가 열린다. 이 행사는 박재삼 시인과 바둑과의 남다른 인연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시인은 극심한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바둑을 통해 그 아픔을 이기고 인생을 관조하며 시심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여러 신문에 바둑관전기를 연재하며 그 원고료로 생활하기도 했다. 문인과 시민, 학생 등으로 나눠 진행한다. 사천바둑협회에서 주관한다.

삼천포항이 내려다 보이는 박재삼문학관집필실.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12년 건립./사진제공 박재삼문학선양회

또 창작하는 손, 핸드프린팅 ‘세상을 품은 작가의 손을 기억하다!’는 지난해부터 시상하고 있는 박재삼 문학상과 박재삼 사천문학상 수상자 등 한국문학을 빛내고 있는 시인(작가)의 손을 실물 그대로 본떠 보존하고 전시하는 행사이다. 지역의 학생과 문학청년들이 작가의 손을 보며 상상력을 키우고 문학에의 꿈을 이어가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이외에도 마루문학회에서는 백일장과 사천8경 답사 진행, 한국전통삼천포정우차회는 헌다례 및 무료차봉사, 동서금동주민자치위원회와 동서금동새마을남녀협의회, 팔포상가번영회에서는 행사 참여자 식사 및 숙박 등을 지원한다.

박재삼문학선양회 김경 회장은 “외부에 의존하는 행사가 아닌 지역 문인들의 힘으로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문학제”라며 “일부 지역의 문학제가 외부에 의존하거나 좌지우지되는 경향과 차별성을 갖고자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천년의 바람’이 된 박재삼 시인은 누구인가

 

고 박재삼 시인./사진제공 박재삼문학선양회

삼천포 노산공원에 있는 박재삼 문학관에 가면 박재삼(1933~1997) 시인의 시세계와 삶의 궤적을 낱낱이 볼 수 있다. 또 문학관 3층에서는 그가 노래하던 삼천포항과 어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년 2월부터 4월까지는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붉은 동백이 그의 피울음처럼 선명하게 피었다 진다. 때론 그의 넋인 듯 ‘천년의 바람’이 바다 물결을 쓸어가기도 한다.

박재삼 시인은 우리네 삶의 가난과 한(恨)을 가장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정서로 노래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한국적 서정 시인의 대표로 손꼽는다.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네 살이 되던 해 가족이 모두 귀국해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사천(삼천포)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항구에서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삼천포와 진주에 있는 시장을 전전하는 생선행상을 했다. 시인은 삼천포 바닷가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삼천포는 박재삼 시인에게 문학적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분명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읊고, 그의 가난을 읊고 있는데 그 시의 뒤로 삼천포 바다와 어시장, 삼천포항의 골목골목들이 배경으로 그려진다. ‘어떤 귀로’에서는 새벽에 장사를 나갔다가 한밤중에야 돌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빚으로도 못갚는 땟국물같은 어린것들이/방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중략)…//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 위에 이고 온/별빛을 풀어놓는다./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또 그의 시 ‘어느 뱃사공’은 원통하지만 대물림 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아버지는 그 넓은 바다를/밭처럼 갈고 살더니/결국은 푸른 바다에 빠져 죽고,/그 원통한 길을 다만 별 수 없이/아들이 대를 이어/그물을 던져 생선을 길어 올리네./…(중략)…/어쩔 수 없이 슬픔은 물려받고/그 슬픔을 꽃피우는/이 짓 밖에 다른 할 일은 없네.’

박재삼 시인은 <천년의 바람><어린것들 옆에서><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등 15권의 시집과 <아름다운 현재의 다른 이름>외 10권의 산문집을 남겼다.

그는 온 생애를 다하여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노래한 시인이다.

“박재삼 문학제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축제…”

박재삼문학선양회 김경 회장과의 일문일답

김경 회장./사진 권영란 기자

박재삼문학제는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시인이 작고한 다음해인 1998년에 시작해서 올해로 16회를 맞이합니다. 박재삼문학제는 시인의 문학세계와 그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이야기를 비롯한 사천8경 등 지역의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답사도 하고 외부 문인 및 독자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문학제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기획을 해왔는데 지난해부터는 박재삼문학상과 박재삼사천문학상도 제정했습니다.”

박재삼문학상, 박재삼사천문학상을 제정한 동기는?

“박재삼 시인은 시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고향 사천을, 이곳 삼천포항을 유난히 사랑했다 합니다. 거기에다 생전에 젊은 시인들과 즐겨 이야기하고 그들의 창작열에 격려를 이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재삼사천문학상은 경남지역 시인들의 창작 활동을 북돋우기 위한 문학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해 동안 경남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등단 10년 미만 시인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올해 수상자는?

“제2회 박재삼 문학상 수상자는 시집 ‘뿔을 적시며’를 펴낸 이상국 시인이고, 박재삼 사천문학상은 박종현 시인이 수상했습니다. 시상식은 문학제 기간인 6월 8일 사천시 노산공원 내 박재삼 문학관에서 열립니다.”

박재삼문학제는 다른 문학제와는 다르다’며 그 차별성을 강조하던데 어떤 점이 특히 다른지?

“지역 사회의 다양한 단체가 적극 참여하는 ‘시민 모두의 축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문학제가 자칫 문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축제가 되기 쉬운데 그러지 않기 위해 지역 내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 끌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남문인협회, 경남작가회의, 마루문학회, 사천문인협회, 사천미술협회 등 문화예술단체는 물론이고 사천시바둑협회, 사천가수협회, 한국전통삼천포정우차회, 동서금동주민자치위원회, 동서금동새마을남녀협의회, 팔포상가번영회 등이 적극 참여해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인, 그런 문학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박재삼문학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의 문인들이 준비하고 지역의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축제라는 점입니다. 사천8경을 답사하고 삼천포항의 재래시장(삼천포수산시장 등)에서 직접 지역민을 만나고 지역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삼천포를 알리고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올해 2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 이상국 시인과 수상시집 표지./사진제공 박재삼문학선양회

문학제 기간 중 진행하는 사천8경 답사의 관심과 호응은 어느 정도인지?

“사실 전국 문인들의 관심이 아주 큰 프로그램입니다. 사천시나 문학제를 주관주최하는 입장에서도 울리 지역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삼천포대교의 절경,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실안해안도로 등 사천8경은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는 곳입니다. 더욱이 문인들의 눈과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지요. 사천8경의 아름다움이 문인들의 작품으로 탄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길 바랍니다.”

문학제에 앞서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올해는 더욱 애를 써서 문학제를 찾는 귀한 걸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재미와 의미를 담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학 세미나도 열리고 전국의 많은 문인들이 참여하니 문학 지망생에게는 창작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가까이 있는 지역 주민은 물론 박재삼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았으면 합니다.”

제15회 박재삼문학제/사진제공 박재삼문학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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