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디자이너들 뭉쳐 한 번 일 내보자"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모여든다. 특히 디자인업계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더 하다.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서울 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지방행을 택한 디자이너가 있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몽골리안그래픽랩’의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인 정보휘(32)실장. 그를 만나러 창원 상남동 번화가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그의 작업실이자 방(?)에 들어선 순간 그의 성격이 짐작되었다. 흐트러짐 없이 정리된 작업공간. 갓 내린 커피 두 잔을 앞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몽골리안그래픽랩은 무슨 뜻인가요?

“지금까지 여러 번 작업실 이름을 바꿔왔는데 이번 ‘몽골리안그래픽랩’이 가장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몽골사람 같다는 얘기를 요즘 좀 들어서… 이름은 재미있나요? 아는 분 작업실 이름이 ‘자메이칸와사비’라서 버금가는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작업실 이름을 바꾸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혼자 쓰는 이름이기 때문에 바꾸고 싶을 때 바꿉니다. 슬럼프가 오거나 할 때 이걸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정보휘 그래픽 디자이너./김구연 기자

잘못 끼운 첫 단추, 불안했던 시간들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그 때부터 디자인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생 때 미술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려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대각선으로 보이는 친구의 모습을 간단하게 그렸는데 선생님께서 ‘니는 학교 때려치워라’ ‘왜요?’ ‘선생님이 새우 한 마리만 그려도 이백만원이다. 선생님이 미술 가르쳐 줄 테니까 내 밑에서 배워볼래?’ 저에게 처음으로 어떤 파장이 일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죠. 대학은 혼자 결정했어요. 사람 좋아하는 성격 믿고 관광학부, 가고 싶었던 실용음악과 이렇게 두 군데를 지원했는데 관광학부에 먼저 합격했고 입학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 한기만 다니고 부모님 모르게 자퇴를 했습니다.”

-자퇴라는 건 큰 결정이었을 텐데요.

“안 맞는 걸 머리에 억지로 집어넣는 게 고문 같았어요. 고민이 많아지니까 안 가던 학교도서관에 나가서 이해도 하지 못하는 철학책 같은 걸 읽어댔어요. 책 내용의 무게로 자퇴에 대한 고민과 후에 닥칠 일들에 대한 부담감을 좀 덜어냈던 것 같아요. 웃기지만 그때는 심각했어요. 괜히 막 이래서 철학을 하는구나 싶고. 그렇게 한 한기를 버티다가 자퇴를 해버렸어요. 그리고 몇 년 후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다른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대학생활은 재미있었나요?

“네.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고 디자인 툴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정보휘 그래픽 디자이너./김구연 기자

그래픽디자이너가 되다

-졸업 후에 바로 디자이너가 되신 건가요?

“아뇨. 먼저 제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의 기획파트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쪽을 통해 서울의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공연기획 일을 하다 어떻게 디자인을 하게 되셨습니까?

“어느 날 아는 분이 제가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아시고 공연포스터를 부탁하셨어요. 반응이 좋았고 많진 않지만 디자인비를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매일 일을 하고 밤에 집에 들어와 의뢰받은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점점 저도 디자인에 흥미를 느꼈고요. 친하게 지내던 디자이너분이 ‘유니크피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혼자 하고 계셨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거기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 때 진짜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서울을 떠나기는 했지만 지금도 교류하며 자문을 구하는 분입니다. 멀리 있지만 든든하죠.”

-디자인 취향이 있으신가요?

“점과 선 같은 단순한 기호나 컬러의 대비 그리고 글자 위주의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아직도 흰 바탕에 검정 글자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디자인 작업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나 남다른 방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래픽디자이너이고 주로 인쇄가 되는 편집디자인을 많이 합니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명확하게 이해시켜주는 동시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갖고 싶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새로운 것을 만들려 상식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려고 하기보다 읽는 사람들을 위해 가독성을 기초로 하여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요소는 한글 서체에요. 그것만으로 디자인 퀄리티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걸 요즘 들어 더 실감했어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나에게 디자인을 맡길 때 먼저 판단을 하는 편입니다. 나에게 디자인을 정말로 맡기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들의 생각을 나를 통해 풀어내려고 하는 건지. 전자의 경우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후자의 경우 작업 능률이 떨어지지만 소통을 통해 풀어내려고 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요?

“‘유니크피스’ 시절 대표님과 함께 작업한 것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2011시즌 작업물. 굉장히 공과 힘을 많이 들였습니다.

-외국에서도 일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독일에 ‘엑슈타인’이라는 바이올린 활을 만드는 장인이 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전시에 필요한 디자인을 대행사를 통해 제가 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오신 후 대행사에 제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몇 달 후 연락을 받았습니다. 요즘 어설프게나마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휘 그래픽 디자이너./김구연 기자

서른두 살, 또 다른 시작

-서울에서 창원으로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서울에서 일하면서 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창원에 왔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본 전광판에 ‘디자인의 도시 창원’이라고 크게 떠있었습니다. ‘뭐지?’ 싶었죠. 일주일 동안 창원에 머물렀는데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클럽도 생기고요. 그런데 좋은 곳, 돈 쓸 곳이 많이 생겼는데 젊은이들이 놀만한 ‘장’이 없어보였어요. 에너지는 있는데 이걸 쓸 데가 없어 보였어요. 제가 말하는 ‘장’은 술집이나 클럽이 아니라 ‘착한 곳’을 말합니다. 만난 후배들에게 물어봤어요. 수업 없는 날에는 뭘 하냐고. 술 먹고 토익공부 한다고 하더라고요. ‘너 영어공부 좋아해?’ 라고 물으니 아니래요. 다른 후배는 서울에 올라가려고 아르바이트를 한데요. 서울에 왜 가고 싶은지 물어보니 서울에 가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답니다. 일주일동안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서 재밌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겠다’고. 일단 서울에 가서 몇 달 동안 정리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조금 쉰 후 곧바로 창원으로 와 작업실을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창원에서 계획하고 계신 일이 뭔가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하면서 에너지 넘치는 후배들과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직 시작 단계라 큰 얘깃거리가 없긴 한데 일단 <포스터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영업용 포스터가 아닙니다.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일종의 계몽운동? 창원에서 문화 활동, 특히 디자인에 관련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이죠. 사람을 모으려면 제가 재미있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텐데 일단은 그게 뭘 지 고민 중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디자인 공부를 같이 해도 좋고,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영화를 찍고,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작게 상영회 같은 것도 열어서 창작물을 남에게 선보이는 맛도 함께 보고, 뭐 그런 거요.”

정보휘 그래픽 디자이너./김구연 기자

-지역에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도 서울에서 디자인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틀렸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서울에서 느낀 분명한 점은 서울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디자인=서울’, ‘서울 회사가 더 좋을 거야’ 라는 생각 때문에 막연하게 서울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꼭 다시 생각해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제가 독일 사람과 일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독일도 지역이고 서울도 지역이고 창원도 지역입니다. 좀 더 세상을 넓게 본다면 서울 타령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서울에서 디자인을 배웠다’는 무기가 필요 없습니다.

서울 회사보다 좋은 스승은 책입니다. 저는 디자인과를 나오지 않았고 디자인 학원을 다닌 적도 없습니다. 어디서 디자인을 배웠냐고 물으면 책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필요한 책을 그 때 그 때 사 보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디자인 관련 책 300만원 어치를 샀습니다. 서울에 가도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서점에 가면 살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좋은 디자이너 이름 하나만 검색해도 연관된 좋은 디자이너 몇 명이 딸려서 나오는 공부하기 좋은 세상인데 ‘나는 전공이 아니라서 힘들어’ ‘지방에 살아서 힘들어’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진로를 택해서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고민은 많겠지만 괜찮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아직 저도 배울 점이 많지만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이유로 가끔 강의 같은 걸 나가기도 하는데 학생 중 억지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아 보이는 학생에게는 이 공부 그만두라고 얘기합니다. 제 얘기에 집중하지 않는 게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그 학생에게는 제 얘기를 듣는 것보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더 중요해서에요.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있죠. 그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정보휘 그래픽 디자이너./김구연 기자

-몇 년 후 본인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요?

“새롭게 구상한 일들을 잘 해나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멘토로 생각하는 분이 ‘3년을 버티면 5년이 가고 5년을 버티면 10년이 그냥 간다’고 하셨어요. 잘 버티고 싶어요. 물론 재미는 있었으면 좋겠고요.”

인터뷰가 끝난 후 오늘 일정을 물으니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평소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후배들을 만난다고 했다. 정 실장은 앞으로 그들과 편집과 지역 문화를 접목해나가는 일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일만 할 때보다 바쁘지만 더 살맛이 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돈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우리 지역에 끼칠 영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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