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기다려 수확할 때 가장 행복해"

통영시 평림동 갈목마을 바다에 작은 어선이 지나간다. 하나가 아니다. 줄이 묶인 다른 배가 끌려간다. 이 배에는 붉게 물든 멍게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뗏목 작업장에 앉아 있는 홍성옥(64) 씨는 흐뭇한 눈빛을 하고 있다. 30년 넘게 대하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반갑고, 또 고맙다.

홍 씨는 1982년부터 멍게 양식을 했다. 일본에서 종묘를 들여와 막 시험양식에 들어갈 때쯤이다. '멍게양식 1세대'인 것이다.

"1980년이었죠. 수협에서 일본 센다이 멍게 종묘를 들여왔습니다. 그 당시 마리당 5000원 정도 주고 들여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군대 갔다와서 원양어선도 타고, 이래저래 어업 일을 계속했지요. 그러다 어느 어른 밑에서 멍게 양식 일을 도왔지요. 멍게를 처음 봤을 때 감탄을 금할 수 없었어요. 그 빛깔이 너무 고운 거예요. 붉은 놈들이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 매력에 빠져 1982년부터 본격적으로 멍게 양식업에 뛰어들었죠."

1982년부터 통영서 멍게 양식을 한 홍성옥 씨.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하지만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사하기 바빴다. 수협에서는 종묘를 서너 차례 더 일본에서 들여왔다. 여전히 죽어나가는 것이 많았지만, 그 안에서 끈기 있게 버티는 놈들도 제법 됐다. 조금씩 면역력이 생긴 것이다. 1983~1984년은 30년 멍게 세월을 이은 징검다리였다.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2년도 안 돼 돈을 꽤 벌었죠. 이거 괜찮은 거구나 싶었죠. 하지만 계속 그런 날만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2년 반짝 장사하고, 또 폐사하는 놈들을 지켜봐야만 했지요. 면역력이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조금 안정이 됐죠."

1990년대에는 6000만 원 넘는 돈을 벌어들인 해도 있다. 20만 원으로 한 달 생활하던 시절이었으니,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여러 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올해 잘 됐다고 내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멍게 양식이라는 게 한 해 바짝 벌어 앞에 빚진 거 갚고, 그러길 반복하는 거예요. 한번 올라갔으니 또 내려가야 하는 거죠. 한 2년간은 소쿠리에 한 마리도 담지 못했어요. 1990년대 말 물렁증이 왔을 때였어요. 뭐 이거는 원인도 알 수 없으니 손 쓸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앉아서 죽은 멍게 꺼내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절망했죠. 그렇다고 지금껏 해 온 게 있는데, 손 놓을 수도 없잖아요. 내년을 기다리며 아직 물속에 있는 놈들도 있으니 그걸 어떻게 버려요. 그냥 그렇게 계속 가는 거지요."

오늘날 통영 멍게는 30년 전 일본에서 들여온 것 가운데 강한 것들이 남긴 씨앗이다. 오히려 일본으로 역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멍게는 수온에 워낙 민감하기에 여전히 노심초사한다.

"지금도 어렵죠. 지난해 잘 된 자리가 올해는 형편없기도 하고 그래요. 멍게는 0.05도에 따라 산란이 결정돼요. 수온에 대해서는 30년 된 저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 속을 알면 이리 고생할 것도 없지요. 다만 '예년보다 기온이 어떻고 저떻고'라는 소식을 들으면 거기에 맞춰 대략적인 대비를 하기는 하지요. 그래도 별수 없죠. 자연에 맡겨 둘 수밖에 없어요."

그토록 애태웠지만 그래도 멍게 덕에 무사히 자식농사를 지었다. 자식들 출가할 때 전셋집 구할 돈 정도는 줬으니 말이다.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뒀으면 가족들 모두 힘들 뻔 했는데, 잘 견뎠죠.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치는데, 그래도 아들놈이 몇 년 전부터 이 일 해보겠다고 나섰어요. 대를 이어 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제법 돼요. 우리하고는 달라서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공부도 하고 그래요. 힘들기는 하지만 자부심 느끼고 해볼 만하지요."

작업장에서는 멍게 세척, 껍질 벗기기, 차에 실어나르기가 한창이다. 15명 넘는 이들이 달라붙어 저마다 역할을 하고 있다. 멍게는 연중 생산할 수 없다. 수확 끝나는 5~6월 이후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종묘를 계속 줄에 부착해야 한다. 기온이 오르면 더 깊은 바다로 집어넣었다가, 또 나중에는 적정한 수온에 맞춰 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 곳에만 모아 두면 집단 폐사 가능성이 있어 여기저기 흩어 놓기도 한다. 그나마 위험률을 분산하는 전략이다. 30년간 하는 일이지만 지겨울 틈은 없다.

"그래도 이 일이 매력 있어요. 2년간 기다린 놈들을 수확할 때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멍게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니까요. 오늘도 소주 한 잔 할 건데 젓가락질을 멍게에 제일 먼저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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