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바탕 돼야 최고의 영상 찍을 수 있죠"

“영상 찍는 일에는 한강 이남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인터뷰한 KBS 창원방송총국 배용화 TV제작부장의 이 말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인 김태균(35·KBS공채 32기·사진) 카메라감독을 만났다. 그는 굉장히 젊어보였다. 나이보다도. 옷차림에서부터 젊은 냄새가 풀풀 풍겼다. 마치 20대를 보 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말과 행동거지는 정중하지만, 그 속에 젊은 자유로움이 엿보였고 전문가의 치열함도 느껴졌다. 묘한 인상을 안고 인터뷰에 들어갔다.

-언제부터 방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고등학교 땝니다. 당시 방송부원이 5명 이었는데요, 오디션을 보고 아나운서 파트로 들어 가 방송부장을 2년 했습니다. 해 보니까 (방송이)더 매력적이더군요. 그래서 대학교도 다른 것은 신경 안 쓰고 신문방송학과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해서 신방과만 지망했습니다. (그는 동아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당시 몇몇 선배들이 PSB(현재 KNN전신)의 VJ특공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6미리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방송국에 내고 있었습니다. 선배들이 저에게 우리 팀에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게 방송국과 첫 인연이죠.”

-당시 어떤 프로에 나갔습니까?

“당시 〈리얼터치 오늘〉, 〈세상발견 유레카〉, 〈현장추적 싸이렌〉 등에 나갔습니다. 제 가 그 팀에 들어갈 당시 2002년이라 촬영할 게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월드컵, 아시안게임, 부산국제영화제, 김해 민항기 추락사고....”

김태균 감독./임종금 기자

-그럼 당시 감독님은 팀에서 뭘 하는 겁니까? 촬영? 인터뷰?

“아뇨, 당시의 VJ는 요즘으로 치면 1인 미디어입니다. 기획, 촬영, 연출, 편집을 혼자서 다 합니다. 아이템을 잡고 아침부터 혼자서 찍고, 밤새 편집하고, 방송국에 냅니다. 그리고 다 시 촬영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3년을 쉴 새 없이 달렸습니다. 당시 VJ팀은 외주프로덕 션으로 변신해서 VJ취재 말고도 광고도 제작하고 기획도 했습니다. 이렇게 3년을 온갖 일 들을 하다 보니 지치더군요.

그래서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7개월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죠. ‘방송국에 가자.’ 원래는 PD로 가려고 했습니다. 편집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PD시험에는 언론 고시(논술)가 있지 않습니까? 언론고시까지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일단 올해는 테스트로 시험을 쳐 보자. 단, 카메라감독으로 하면 언론고시 없이 일단 1차 면접까지는 가 지 않겠나. 그러면 테스트로서 의미는 있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KBS공채를 쳤는데, 바로 합격해 버렸습니다.”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가 돼야

얼마 전 KBS 창원총국에서 제작한 <경남100경 완전정복>에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찍는 미션을 방영했다. 그걸 찍으려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천왕봉 일출을 찍을 때, 카메라를 여러 대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관련 장비까지 합치면 약 70킬로그램 정도 됐습니다.”

-그럼 그걸 어떻게 들고 갔나요? 헬기로 공수한 것 아닌가요?

“셋이서 그냥 짊어지고 갔습니다. 촬영감독은 때에 따라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전 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에 올라간다고 칩시다. 산악인이야 산만 타면 되지만, 촬영감독은 장비를 짊어지고 산악인들을 따라가면서 촬영까지 해야 합니다. 어지간한 산악 인만큼 산을 잘 타야 하는 거죠. 또 스포츠 중계를 할 때도, 촬영감독은 공 잡은 선수를 놓 치면 안 됩니다. 선수가 공을 패스하는 것처럼 속임 동작을 하더라도 거기에 속아 카메라를 돌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 선수가 정말 패스를 하는 것인지, 속임 동작을 하는 것인지 판단을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김 감독은 평생 운동만 해 온 선수들도 속는데, 촬영감독은 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중국 돈황의 모래언덕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무엇일까요?

“경남도가 사막화방지협약총회를 유치하고, 이를 기념해 <모래의 역습>이라는 환경다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황사 발원지인 몽골 사막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아침 9시 부터 오후 4 시 까지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덥고 갑갑한 곳입니다. 거기 사는 주민들도 낮에는 활동을 안 할 정도니 말 다 했죠. 그리고 여기서 죽을 뻔 했습니다.”

-무슨, 사고가 일어났나요?

“네. 사막을 항공 촬영 하기로 했습니다.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사막과 오아시스 를 찍는 계획이었습니다. 글라이더를 띄우려면 가속을 해서 양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막이라서 바퀴가 모래에 빠져서 속도가 안 나는 겁니다. 글라이더가 안 뜨는 거죠. 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이 있었습니다.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속도를 높여서 띄우자고 했습니다.”

오아시스에서 비행하는 모습.

이야기로 듣고 있어도 왠지 불안했다.

“새벽에 글라이더를 언덕 아래에서 밧줄로 당기면서 가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라이더가 잠시 하늘을 날았지만, 양력을 못 받아서 그대로 추락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거기가 사막 모래바닥이라서 충격이 덜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그렇게 떨어졌다면 다리가 부러졌거나 머리를 크게 다쳤을 겁니다.”

-촬영 시 재미난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습니까?

“재미난 에피소드는 아니고,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 산청에서 구형왕릉을 촬영했습 니다. 2월 중순인데 골짜기에서 찬 바람이 올라오는 겁니다. 설명해 주신 분이 ‘여긴 무덤 위로 새도 안 지나간다’고 하더군요. 뭔가 음기가 강한 곳이었습니다. 촬영을 한창 하는데, 배터리가 충분하던 휴대폰이 방전되는 겁니다. 또 헬기 카메라가 여러 번 추락하고 온갖 문 제들이 다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 이상하다’ 싶어서 촬영을 끊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잘 부탁드린다고. 그런데 한 외주업체는 끝까지 절을 안 했습니다. 결국 그 업체는 자동차 키를 잃어버려서 한참이나 촬영 현장에 묶여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모래폭풍을 기다리며.
중국 돈황 월야천.

방송, ‘본질’로 돌아갈 날이 올 것

인터뷰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기자는 어려운(?) 부탁을 하나 했다.

“감독님,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황당한 질문이지만, 카메라맨이 제일 싫어하는 게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언제 이 말을 던지나 고심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요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PD, 작가, 카메라감독 등 온갖 스텝들이 다 출연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며 선선이 승낙했다.

김태균 감독./임종금 기자

-말 나온 김에, 요즘 방송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 트랜드가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일반 카메라 외에 DSLR까지 막 섞 어서 쓰는데, 다 장단점이 있지만, 약간 문제의식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되십니까?

“예전보다 장비들이 굉장히 발달했고, 방송에서도 카메라와 장비를 예전보다 굉장히 많이 씁니다. 좋게 보자면 시청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서로 질감이 다른 것을 마구 섞어놓은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한 그림에 물감도 쓰고, 크레파스도 쓰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점들이 고도의 계산이나 노력이 아니라, 편의상 섞어 쓰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럼 카메라마다 다 특성이 다른 가요?

“네, 예를 들어 예전에 많이 썼던 6미리 카메라를 보면, 화질이 좋지 않고 가벼운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휴먼다큐멘터리처럼 인물에 밀착해서 감동을 전달하는 데에는 6미리 카메라가 더 낫죠. 요즘 방송들을 보면 이런 특성들을 고려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튀어 보일까’ 고민하는 것 같은 느낌만 듭니다.”

-시청자들이 이걸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글쎄요. 저는 언제까지 이런 식의 막 섞어쓰기가 통용되리라 믿지는 않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은 곧 물리게 되듯이, 사람들도 언젠가는 클래식한 면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다시 6미리 다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6미리 시대는 갔다’고 했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HD영상에서 풀HD영상, 이후 나올 U-HD영상(풀 HD영상 보다 화질이 2배) 등으로 화질 경쟁이 치열한데,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화질 경쟁 또한 언젠가 무의미할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장비가 가진 기술력 보다 찍는 사람의 감각, 영상의 본질로 돌아갈 날이 올 겁니다.”

그의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경남은 대한민국이 압축된 곳”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물은 뭔가요?

“2009년에 방영됐던 <습관>이라는 다큐입니다. 장편 다큐로는 첫 작품입니다. 또한 이를 연출한 이지윤 PD도 첫 장편 다큐입니다. 솔직히 주제가 추상적이지 않습니까? 습관을 어 떻게 찍겠다는 건지 감이 안 옵니다. 그래서인지 본사 예산 지원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촬영하나요? 어떤 습관을 도촬(몰래 숨어서 촬영)할 수 도 없질 않습니까?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흡연자, 토해내는 습관, 항상 늦는 습관, 과자만 먹는 습관, 정리정돈 안 하는 습관을 가진 분을 골랐습니다. 그 분들의 동의를 받아서 사시는 방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서 촬영했습니 다.”

-자기 사생활이 노출될 것인데 순순히 카메라 설치를 응하던가요?

“처음부터 설명을 했습니다. 전문가 집단을 투입해서 최종적으로는 습관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만들어 보려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들도 자기 습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물론, 영상을 찍는 저도 솔직히 반신반의 했습니다. 평생 못 고친 습관인데 66일 만에 가능할까? 그런데 66일 동안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전화하고 체크하니까 그 분들이 서 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습관만 바뀐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뀌게 되었습니다.”

-<습관>은 성과가 좀 있었습니까?

“성과가 많았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방송대상 우수상, 올해의 좋 은 프로그램상, KBS우수프로그램상, KBS촬영상도 탔습니다. 상금도 상당했고, 6번이나 방 영됐습니다. 작가는 이 내용을 가지고 책도 팔고, 출연했던 교수는 강의도 나가면서 많은 경험이 됐습니다.”

방송대상 시상식에서(LED화면 오른쪽).

-경남에서 8년간 근무해 오셨는데, 경남을 피사체로 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경남은 굉장히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이건 저만의 평가가 아니고, <6시 내고향> 제작진도 똑같이 평가한 점입니다. 경남에는 산지도 있고, 평야도 있고, 바다도 있고, 서울 못지않은 번화가부터 대단위 공단, 두메산골까지 다양한 풍경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한 곳에서 이렇게까지 다양한 모습을 찍어내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의 압축된 모습이 경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남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곳은 어디인가요?

“글쎄요. 천왕봉 일출 장면이 가장 멋진 풍광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거긴 사람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언제 일출을 볼 수 있을 지 모르지 않습니까? 접근성까지 고려 한다면 제 생각에는 통영 미륵산 정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굉장히 멋진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경남의 매력을 잘 살리는 영상을 찍으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요?

“제 생각에는 좋은 영상을 찍으려면 사람과 인문학 소양이 필요합니다.”

동문서답이었다. 촬영에 대해 묻는데 갑자기 웬 인문학?

“경남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찰나의 장면들이 한없이 펼쳐집 니다. 그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찍고, 여러 장면 중에서 어떤 부분을 잡아낼지 판단하려면 많은 배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정확한 핵심을 결코 찍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과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동문서답이 아니라, 우문현답이었다.

그는 카메라감독으로 인정받은 능력 있는 젊은 사람이다. 대개 ‘능력 있는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에 환호하고 과거의 것을 외면하거나, 또한 자신이 가진 순간의 재치나 응용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김태균 감독은 끝까지 ‘본질’과 ‘깊이’를 강조했다.

케냐의 마지막 남은 오아시스에서.
케냐의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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