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그를 맨 처음 봤을 때, 중저음 목소리와 또박또박한 말투가 아나운서 같았다. 단아한 외모 도 한몫했다. 그를 다시 봤을 때, 담백한 언변과 해박한 미술지식이 교수나 강사 같았다. 그 의 공식 직함인 ‘미술관 관장’을 빼면 말이다. 미술관 관장하면 으레 나이 지긋한 남성이나 여성을 떠올리지만, 기자가 만난 최정은 (43) 관장은 젊고 소리 없이 강한 여성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국내 유일무이한 건축도자전문미술관으로 2006년 개관했다. 최 관장은 신상호, 임미선 관장에 이어 세 번째로 2011년 7월,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이 됐다. 그가 미술관에 온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교육프로그램이 늘 었다는 것과 두 번째는 건축과 도자를 균형 있게 다룬다는 것, 세 번째는 미술관 알리기에 열을 쏟는다는 것이다. 최 관장을 만나 그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미술관 앞에서./김구연 기자

-지난해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최 관장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을 참 잘한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는데요. 과거 스피치 관련 학원에 다닌적이 있습니까?

“(웃음)전혀 없습니다. 제가 대학교나 미술관 등지에서 강의를 10여 년 정도 했는데, 그게 쌓이다 보니 ‘그나마’ 말을 이만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하지는 않아요.”

-겸손한 것 같습니다. 비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전 말을 할 때, ‘효율적’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불필요한 말은 최대한 줄이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어...’, ‘아...’ 등 쓸 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효율적이고 경제 적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서 강의를 했던데, 강의할 때도 ‘요점만 간단히’ 말하는 스타일인가요?

“어떤 분은 말로 한 시간을 다 보낸다고 하던데.... 설(設)을 편다고 하죠? (웃음) 전, 그걸 못해요. 그래서 수업준비를 철저히 해가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강의를 할 것인지 계산을 하 고 갑니다.”

지난해 강의를 할 때, 최 관장이 “한 번도 강의를 늦게, 또는 빠르게 마친 적이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똑 부러지고, 깔끔한,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하고야 마는 성격 같았다.

최 관장은 고려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석사 졸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 위 말하는 엘리트다. 관장을 하기 전, 그는 강사뿐만 아니라 미술 전문 잡지 <월간미술>기자, 월간 <아트앤컬처> 편집장,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미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언어학과 재학시절, 프랑스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새로 부임하셨던 젊은 교수님(김성도) 의 영향이 컸습니다. 시각문화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방법론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그래서 좀 더 체계적으로 기호학적인 방법론을 연구하고 미술‧영상 등 시각예술이론과 비평을 훈련해보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원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신과 의사였어요. (웃음) 부모님은 제가 말을 무척 잘하시는 줄 알고, 변호사 등 말로 먹 고사는 직업을 가지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나름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미술관에 와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 심리적 치유를 경험하니까요. 그래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일은 처음이었을 텐데, 어렵진 않았나요?

“2007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을 처음 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언젠가 는 이곳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웃음) 말했다시피, 전 그간 전시기획과 강의, 비평, 취재 등의 일을 해왔습니다. 미술관을 운영해보니 그간 제가 해왔던, 그리고 고민해왔 던 일들이 모두 집대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일했습니까?

“첫 번째는 전문성과 대중성의 조화, 두 번째는 홍보와 교육사업 강화였습니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조화는 공공미술관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질적인 전문성이 없는 한 장기적으로 대중성은 확보되기 어렵고, 대중성이 없는 전문성은 공공미술 관에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제가 진단하기로 그동안 클레이아크는 (건축도자전문미술관으로) 전문성이 탄탄하게 구축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전문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도 대중 참여적이고 친화적인 성격을 더 해야 합니다.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교육사업’인데요. 지난해부터 저희 미 술관은 경남도와 부산시교육청, 부산교육연수원, 도박중독자치유센터 등과 연계해 활발한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웃음) 또 한 가지는 미술관 홍보사업이에요. 저 자신도 언론, 기 업 등의 특강을 통해 기관홍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KNN, 헬로 TV 등 방송에서 강의한 모습을 봤습니다. 잘 하시던데.... 먼저 제의가 들어왔나요?

“(손사래를 치며)아니요. 제가 찾아갔습니다. (웃음) 미술관은 너무 멋진데, 그에 비해 사람 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김해에 오자마자 방송국 등을 돌며 홍보 좀 많이 해달라고 했죠. 강 의를 많이 한 이력 덕분에 방송국 측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같이하자!”라는 제의를 했고, 최근에는 MBC경남 ‘문화가산책’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지난해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경남도 전체 문화예술기관 가운데 가장 사업실적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국제도자아카데미협회(IAC) 정식회원기관으로 승인을 받았다. 국제도자아카데미협회는 55개국 600여 도자 예술가와 비평가, 큐레이터, 미 술관, 재단 등이 회원으로 등록된, 도자 분야에서 국제적 권위를 갖춘 학술협회다.

또한, 전시실 3개와 교육 스튜디오 2개, 도서실 1개 등을 갖춘 큐빅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그곳에선 현재 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앞서 최 관장님이 ‘전문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한다고 했습니 다. 그래서인지, 교육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저희 미술관은 교육청과 연계해 다양한 맞춤형 교육 체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학생을 위해 건축과 미술관 분야의 진로 탐색 프로그램과 창의미술 활동 등이 준비되어 있는데, 저 를 비롯해 미술관 자체 인력이 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요시에는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기도 합니다. 저희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은 다른 미술관에서 우수 모범 사 례로 언급되고 벤치마킹 되는 등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어요.”

-현재 클레이아크를 진단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숨가쁜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재작년과 비교해 작년 저희 미술관은 전시 횟수는 5 회, 교육 사업은 19개가 많아졌습니다. 또한, 연간 관람객 숫자도 재작년 대비 2만 명 이상 증가해 9만 6000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죠. 특히 작년 상반기 기획전인 ‘컨템포러리 한옥’ 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려 많은 관람객을 유치했어요. 기획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필리핀 한국문화원에 초청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미술관에 오면 외관과 풍경 등만 봐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운 점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도 관람객이 증가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데요?

“서울에서 온 지인들도 미술관에 오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칭찬을 해요. 탁 트 인 경치도 좋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처음에는 시에 봉하마을로 가는 버스 가 미술관을 지나가도록 노선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웃음) 최근에는 김해시민이 ‘미술관 순환버스’를 만들어달라고 시에 요청해 시범적으로 운영했는데 (주말엔)10명도 안되더라고요. 결국에 생각한 것이 사람을 미술관에 머무르게 하는 ‘뮤지엄 스테이’를 운영하 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유일무이한 건축도자전문미술관인만큼 그와 관련된 좋은 전시와 교 육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관장님이 오기 전, 클레이아크에선 도자 분야를 많이 다뤄왔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1년에 한 번씩 건축과 도자 관련 전시를 차례로 여는 것 같습니다.

“규모가 가장 큰 기획전을 연 2회 개최하고 있는데, 건축과 도자예술을 번갈아 다룹니다. ‘건축’ 분야를 다루게 된 첫 번째 이유는 클레이아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산업적으로 활용가능한 건축도자미술을 탐색하고 개발하는 것인데요. 그것을 위해서는 건축에 대해 도 자 작가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아직 국내에는 건축전문미술관이 없어서 클 레이아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어요.”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과거 미술관의 수장은 대부분 남자였어요. 지난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초 여성 관장(정형민)이 취임하기도 했죠. 여성만의 지도력이 미술관에 끼치는 영향이 있는지요.

“미술관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도 목표가 다르고, 생사의 위험을 다루는 병원이나 군대 와 같은 조직도 아닙니다.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와 자신을 돌아보고 정서적인 휴식 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에요. 물론 예술적인 영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죠. 이 를 위해선 먼저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나 업무 분위기가 매우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따뜻한 여성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해요.”

인터뷰 하는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여성들은 권위적이고 명령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방식보다는, ‘상호 소통’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미술관에서 직원들 각자가 본인의 역할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주고 조정하는 것으로 생각해, 가능한 담당자 의 의견을 존중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발전가능성이 크다’라고 하셨는데, 미술관의 로드맵을 제시한다면?

“개관이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건축도자분야에 특화된, 깊이 있는 전시를 통해 건축도 자미술관으로서의 전문성을 탄탄히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다양한 계층 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앞으로도 전시, 교육, 홍보 분야를 더욱 활성화해 나갈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앞으로도 해야 할 사업이 아주 많아요.(웃음) 예를 들어 도 자 작가들이 기업과 산업체와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거나 진례 지역 공방과 도자 작가들이 협업을 통해 도예 작품의 수준을 높이고 판로 개척을 하는 거죠.”

2006년 문을 연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술 중 ‘건축과 도자’ 영역을 다루는 미술관이다. 사례가 없어서 관장으로서 미술관을 운영하기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최정은 관장은 “특수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강점이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해 미술관은 7살이 됐다. 최 관장에게 ‘7’은 행운의 숫자일까 아닐까? 미술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행운을 걸어본다.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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