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과 인근한 부산은 여느 도시가 그렇듯 음식에 지리적 환경과 지나온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다.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바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공동어시장과 자갈치시장의 탄생 배경 자체부터가 그렇다. 조선의 수산물을 독점하려는 일제의 침략 의도가 공동어시장을 낳았고, 이에 맞서는 영세 조선어민들의 자구책이 자갈치시장을 만들었다.

부산의 대표음식으로 일컬어지는 돼지국밥과 밀면에는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가 스며있다. 돼지국밥은 전쟁 피란민들이 돼지고기로 설렁탕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며, 밀면도 북녘의 고유 음식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대용에서 탄생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각종 해산물 요리부터 육류, 국․탕, 면 요리까지 그야말로 ‘음식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부산의 진정한 맛 지존, 즉 최고의 맛집들은 어디일까. ‘맛 칼럼니스트’이자 부산 지역 인터넷 파워블로거(blog.naver.com/landy)로 잘 알려진 박상현 씨의 도움을 받아, 많은 식객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부산 음식점들을 정리해 봤다.

동래역 인근 거대숯불구이의 삼겹살. 질 좋은 소금과 후추를 곁들였다. 사진/박상현

최고로 꼽힌 할매돼지국밥과 개금밀면

먼저 부산 어디를 가나 곳곳에 눈에 띄는 돼지국밥집과 밀면집부터 알아보자. 워낙 많은 데다 또 맛도 비등비등해 특정 몇 집만 꼽기는 사실 쉽지 않은데, 기준이 될 만한 자료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박상현 씨 블로그가 그것이다. 박 씨는 지난 2011년 블로그를 통해 최고의 돼지국밥집과 밀면집을 가리는 일종의 ‘인터넷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부산 지역 맛 애호가 30여 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영예의 1위는 동구 범일동 할매돼지국밥과 진구 개금동 개금밀면이 각각 차지했다. 모두 5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로서 과연 탁월한 선택이라 할 만했다.

신선한 돼지고기로 우린 깔끔하면서도 깊은 육수가 특징인 할매국밥과 닭육수에 새콤달콤 양념을 더해 인기를 끌고 있는 개금밀면은 맛과 대중성, 질과 양, 가격 경쟁력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음식점들이다. 두 집의 뒤를 이어 2위에는 괘법동 합천일류돼지국밥과 부전동 춘하추동이 각각 올랐다.

부산은 바다를 낀 도시임에도 특이하게 돼지고기(삼겹살)가 맛있는 음식점이 적지 않은데, 역시 연원을 따져보면 돼지(국밥)를 다루는 과정에서 쌓인 안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수영구 광안동 서초갈비는 늘 빼놓지 않고 지존급으로 거론되는 곳이다. 1인분 2만 원으로 다소 비싸지만, 양(200g)이 넉넉하고 어린 암퇘지를 얇게 슬라이스한 고기 맛이 ‘극강’이라 가도 가도 또 가게 되는 집이다. 돼지기름에 함께 구워먹는 잘 익은 김치도 절대 그냥 지나쳐선 안 될 ‘정규 코스’다. 밥도둑도 이런 밥도둑이 없다.

요즘 한창 뜨는 집으로는 동래역 인근의 거대숯불구이를 들 수 있다. 현대적 인테리어에 최고의 고기, 최고의 숯, 최고의 소금만을 추구하는 이 집에 가면 돼지고기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삼겹살집 ‘답지 않게’ 차림표에 올라 있는 일본풍의 돼지찜(가쿠니)과 메밀국수(소바)도 별미다.

해운대 센텀시티에 위치한 일식집 가미의 고등어초밥. 사진/박상현
일본식 숙성회를 내는 한국식 횟집들

이젠 본격적으로 해산물 요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부산은 예의 일본의 영향이 크게 느껴지는 음식(점)이 적지 않다. 유난히 많은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와 일식집이 그렇고, ‘부산오뎅’ 등 음식명 자체에 남은 흔적, 그리고 활어회보다 숙성회를 많이 내는 횟집 문화가 그렇다.

각각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 인근에 위치한 명물횟집과 거제횟집은 ‘일본식’ 숙성회를 내는 부산의 대표적인 ‘한국식’ 횟집들이라 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가격대지만 숙성회 특유의 감칠맛과 탁월한 탕․국 솜씨로 사랑을 받는 곳들이다.

정통 일식을 즐기고 싶다면 해운대 센텀시티 내 가미(佳味)를 적극 추천한다. 점심 2만 2000원(1인당), 저녁 5만 원의 일식집 치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 수준의 일식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잘 손질된 각종 생선회와 초밥부터 해삼창자, 쥐치간, 성게소까지 흔히 먹기 힘든 제철 해산물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생선구이, 튀김, 소고기 스테이크 등은 덤이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

해산물 요리를 중심으로 한 일반 밥집으로는 복국과 추어탕, 생선회 등이 유명한 자갈치시장 근처 구포집, 냉동 대구로 믿을 수 없이 깊은 국물 맛을 선사하는 해운대 아저씨대구탕, 밀복국과 생선회 두 가지 메뉴로 30여 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공동어시장 인근 남포식당 등이 식도락 강호의 ‘고수’로 꼽히고 있다.

국내 최대의 고등어 유통량을 자랑하는 공동어시장 내 구내식당도 맛집 리스트 한 자락을 차지할 만한 곳이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고등어로 요리한 고등어구이와 조림은 기본적으로 어민과 거래상, 어시장 직원들을 위한 것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절대 속일 수 없기에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집이다.

해운대 미포항에 인근에 자리한 아저씨대구탕 예전 가게 모습. 지금은 근처 더 넓은 곳으로 옮겼다. 사진/박상현

‘로컬 푸드’ 실천하는 엘 올리브

그밖에 부산에는 경남 지역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제대로 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한 곳 있는데 수영구 망미동 ‘엘 올리브’가 그 주인공이다. 흔히 이탈리안 하면 연상되는, 그렇고 그런 파스타와 피자가 나오는 곳이 아니다. 제철 재료, 지역 농수산물(로컬 푸드)에 기반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진짜 음식점’이다.

이를테면 쭈꾸미샐러드, 개불파스타, 전복리조또, 구운 키조개를 곁들인 토마토 가스파쵸 같은 것들. 두툼하고 육즙 넘치는 소고기․양고기 스테이크 또한 많은 식객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 등으로 가벼운 안주에 가볍게 한 잔을 하고 싶다면 남구 대연동 미소오뎅을 추천한다. 부산의 유명 어묵을 한 자리에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치․스지, 그리고 질 높은 독일․일본 맥주까지 즐길 수 있다. 이 집이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부산의 사람과 부산의 분위기, 그리고 부산의 삶을 자연스레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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