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많은 곳, 사람도 살기 좋은 곳 농작물 해충 잡아먹어 사람에게 큰 도움

하루난 제비 한 쌍이 날아 들거날 흥보가 좋아라고, "반갑다 저 제비야. 고루거각을 다 버리고 궁벽강촌 박흥보 움막을 찾아드니 어찌 아니 기특허랴." 수십일 만에 새끼 두 마리를 깟는디, 먼저 깐 놈은 날아가고 나중 깐 놈이 날개공부 힘을 쓰다 뚝 떨어져 다리가 작각 부러졌것다. 흥보 내외 어진 마음으로 명태껍질을 얻고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동여 매어 제 집에 넣어주며, "부디 죽지 말고 살아 멀고 먼 만리 강남을 평안히 잘 가거라."

-판소리 〈흥보가〉 중 흥보가 제비 다리를 고치는 장면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에는 마음씨 착한 아우 흥보와 심술궂은 형 놀보 그리고 제비가 나온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이야기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말한다.

흥부전뿐 아니라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나 속담에서도 제비를 찾을 수 있다. '제비를 보면 기쁜 일이 생긴다', '제비가 집에 둥지를 지으면 복이 들어온다', '제비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풍년이 든다'와 같이 조상들은 제비를 행운이나 복, 재물을 상징하는 새로 여겼다.

이뿐 아니라 '제비집을 부수면 집이 망한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지 않으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제비를 아끼고 보호하는 데 힘을 썼다. 제비가 사람의 삶이나 생활과 아주 가까이 연결되어 있으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비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제비의 먹이를 통해 답을 추측할 수 있다. 제비는 날아다니는 곤충을 즐겨 먹는데, 그 양이 아주 많다. 어미 제비는 새끼를 기를 때 하루에 300번 가까이 먹이를 물어다 주기도 한다.

이렇게 잡아먹히는 곤충은 대부분 농작물을 갉아 먹는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을 제비가 먹이 활동을 통해 없애주는 것이 된다. 또한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모기 같은 해충도 먹어서 없애주기 때문에 제비는 참으로 고맙고 귀한 존재인 것이다.

   

제비도 사람이 사는 집에 둥지를 틀고 살며 사람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제비에게 해를 끼치는 천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는 제비가 둥지를 틀지 않는다. 사람과 제비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오래 전부터 각자의 유전자를 통해 이어져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가까운 둘레에서 제비를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농경문화가 사라진 것을 가장 크게 꼽을 수 있다. 논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도시가 들어서면서 제비가 활동할 수 있는 곳도 함께 사라졌다. 둥지를 지을 흙을 구할 수 없고, 충분한 먹이를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문화가 크게 바뀌면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람과 제비가 함께 쌓아온 믿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벽이나 처마에 있는 제비 둥지 아래에 떨어진 배설물은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떼어내는 일이 잦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집 처마 아래에 제비가 둥지를 짓기 시작하자 집 주인이 바로 떼어냈는데 제비는 계속 흙을 물고 와서 떼어낸 옆 자리에 자꾸만 둥지를 지으려 했다. 며칠 실랑이 끝에 결국 제비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옛날 같았으면 들어 온 복을 애써 제 발로 차버린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이 "재물이 가득 담긴 박씨는 없고 더럽게 보이는 배설물만 잔뜩 남기는 제비를 쫓아낸 것이 왜 잘못한 일이지?", "농경문화가 사라졌는데 제비가 해충을 먹는 일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제비를 귀하게 여기고 살펴야 하는 까닭이 단지 해충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조상들이 터부시해가며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제비도 사람처럼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지구에서 사는 뭇 생명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생활에서 실천하며 온갖 생물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우리들의 조상이 아닌가?

제비가 많이 사는 곳은 둘레 자연 환경이 깨끗하고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다. 제비가 편안하게 사는 곳에서는 사람도 편안하고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올해는 우리 집 처마에 제비가 둥지를 틀어 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집이 둥지를 지을 수 없는 곳이라면 가까운 마을에 제비가 찾아왔는지를 살피는 것은 어떨까? 바쁘게 사는 동안 잊었던 제비를 찾아 행운을 느끼는 한 해의 시작이 되면 좋겠다.

/박성현(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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