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탕 한 그릇에서부터 지역공동체 만드는

전통시장에서 젊은 사람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거대 자본이 주인 된 사회는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시장을 생계가 보장된 안락한 정착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탓이다. 진주 내에서도 규모가 큰 중앙시장도 시대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30대 장사꾼을 보기 어렵다. 시장 상가는 대부분은 40대 중·후반~60대 중·장년층들이 운영하고 있다. 옛날 화려했던 100년 역사가 무색한 지경이다. 이런 중앙시장에 아버지 대를 이어 ‘생선알 내장탕’을 만들어 파는 키 크고 인물 훤칠한 30대 젊은 주방장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수 천 만 원대 연봉도 내팽개친 채 아버지 가업을 잇는 송강식당 제2대 주방장 조재경(37) 사장이다.

송강식당을 찾아가는 길. 중앙시장 내 굽이진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니 먼발치에 불을 밝힌 ‘송강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식당 입구에는 서너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요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차림새로 국자를 휘휘 젓는 사내가 눈에 든다. 전체적으로 브라운-블랙 계열 배색으로 바지와 티셔츠, 패딩조끼를 신경 써서 (색)깔맞춤한 티가 난다. 머리에 쓴 모자도 흰 요리사 모자가 아닌 일반 야구 모자를 쓰고 불 앞에서 간을 보는 모습이 이채롭다.

진주 송강식당 조재경 /사진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족히 180㎝는 훌쩍 넘어 보이는 큰 키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몸매, 수더분한 인상에 부드럽고 유려한 서울 말씨가 퍽 매력적인 사내. 송강식당 제2대 주방장 조재경 사장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인상적인 아우라(?)다.

아버지 대이어 손맛 지키는 사연

송강식당은 ‘생선알 내장탕’만 30년 넘게 해 온 대를 이은 맛집이다. 조재경 사장은 아버지 조구영(72) 씨가 하던 식당을 이어받아 6년째 운영 중이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외국계 제약회사를 다니다가 아버지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을 하고 6년 전부터 식당 운영에 뛰어들었다. “어려서부터 언젠가는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어요. 한데 그 시기가 좀 빨리 왔네요. 하하.”

아버지 조구영 씨는 진주에서 알아주는 ‘일식 명인’으로 손꼽힌다.

‘진주 일식 1세대’로 통하는데, 현재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일식집들은 모두 조구영 씨 손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한때는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이런 아버지 손맛이 담긴 가게를 아들이 물려받은 것이다.

“결혼을 할 때쯤 물려받아야겠다는 마음이 표면으로 드러났어요. 아내에게는 결혼 전에 ‘언젠가는 식당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 못 박고 결혼을 했죠. 장인어른 반대가 심하긴 했어요. 아무래도 딸자식을 데려간 사위가 정장에 넥타이매고 번듯하게 직장 생활 하는 모습을 보길 바라는 마음이 크셨겠죠. 사위가 생선 내장 만진다면 좋아할 장인이 어디 있겠어요.”

장인어른도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사위인 재경 씨가 다니던 회사에 노조 설립을 주도한 것. 알게 모르게 회사에 미운털이 박히고 나서 더는 회사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없게 되자 장인어른도 사위의 전업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조재경 사장은 수천 만 원 연봉을 멀리하고 음식 장사에 뛰어든 마당에 앞뒤 가릴 여지가 없었다. 식당을 잇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는 자체적인 요리 수업을 시작했다.

반년이 넘도록 전국에 생선 내장탕으로 이름난 집을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맛을 봤다.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함께 맛을 품평하기도 하고, 무례를 무릅쓰고 불쑥 주방을 엿볼 때도 있었다. 이렇게 맛을 보고 어깨너머로 익힌 몇몇 노하우를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원천적인 맛에 접목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재 송강식당 ‘생선알 내장탕’이다.

“젊은 나이지만 생선은 물론, 낙지, 오징어, 장어, 닭 등을 모두 다룰 줄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이런 거 만지는 모습을 보고 자랐잖아요. 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죠. 피도 못 속이는 법이고.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음식을 배워나갈 수 있었어요.”

진주 송강식당 /사진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전국 최초(?) 남자 부녀회원 되다

하지만, 어려운 일은 따로 있었다. 워낙 대가 세기로 유명한 진주 정서에, 젊은 사장이 음식 장사에 나서는데 대해 주변 상인들과 손님들이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 일을 할 때는 서빙부터 시작했어요. 사람들 사이에 ‘쟤는 뭔데 들어와서 일을 하냐. 금방 나가겠지’ 하는 보이지 않는 정서가 느껴지더라고요. 안 그래도 시장 인심이 세잖아요. 텃세도 심하고……. 비록 아버지가 잘 닦아놓은 고속도로 위에 섰지만, 혼자서는 험준한 산길을 달려야하는 심정이었어요.”

이를 ‘감동’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매일 5000원 씩 쓰자고 결심했어요. 명함을 만들어서 오시는 손님마다 다 드리고 또 받았어요. 미리 이야기 해 놓은 찻집에다 전화해 식사 마친 손님에게 커피를 배달해드리기도 했죠. 시장 상인 분들은 기호를 파악해 유자차 등을 주문하기도 했고요. 당시 커피 값이 1000원이었는데, 쓰다 보니 하루에 3만 원은 기본이더라고요. 이렇게 3년 정도를 하고 나니 ‘아 저놈이 뭐하는 놈인지 알겠다’며 마음을 놓으시더라고요.”

이렇게 한 발 한 발 시장 구성원으로 녹아들어간 조재경 사장은 현재 중앙시장 부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아마 전국 최초(?) 남성 부녀회원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정성으로 다가가니 아내도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원래 선생님들 칭찬에 인색하잖아요. 참 기분이 좋았죠.”

조재경 사장의 아내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진주 송강식당 / 사진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기본을 지키는 게 맛의 비결

아버지가 쌓은 연륜, 새로운 맛을 찾는 노력, 감동 경영. 이 삼박자가 두루 맞는 송강식당 ‘생선알 내장탕’ 맛은 어떨까. 먼저 신선한 내장이 일품이다. 부산과 삼천포 등지에서 냉동이 아닌 신선한 생물에서 갓 발췌해 낸 것만 받아쓴다. ‘생선알 내장탕’에는 명태 내장과 알, 대구 이리, 장어 내장, 아귀 내장, 물메기 알 등 대 여섯 가지가 생선 내장이 들어가는데 하나같이 신선함이 눈에 보인다. 특히, 양이 작아 비싸기로 유명한 장어내장이 넉넉히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삼천포에 ‘㈜동림’이라고 장어를 손질해 고기만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는 수산회사가 있어요. 여기서 작업하고 남은 내장 전량을 저희 집에서 받아쓰거든요. 그래서 신선함이 남다르죠. 나머지 내장들도 전문 수산 업체에서 받아쓰니 믿고 드실 수 있어요.”

야채 등 나머지 부식은 중앙시장 내에서 사들이면 된다. 이렇게 좋은 물건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식재료 수급 망이 인상적이다.

내장이 가진 신선한 맛을 한층 살려내는 육수는 조개를 주재료로 한다. 백합과 바지락, 그리고 멸치로 우려낸 육수는 깊은 바다 내음을 온전히 녹여낸다. 이에 더해 무와 파, 콩나물 등을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시원한 맛이 한층 더해진다. 별다른 양념 없이 고춧가루, 마늘, 후추 등 기본 밑간만 더하면 빠알간 기운이 식욕을 자극하는 ‘생선알 내장탕’이 완성된다.

진주 송강식당 조재경 /사진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생선알 내장탕 위에는 쑥갓이나 깨순을 올려 향미를 더한다. 열전도율이 높은 양은냄비에서 순식간에 끓어올라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잡아낸다.

숟가락을 움푹움푹 넣어 시원 칼칼한 국물에 고소한 내장을 올려 한 입에 우적여도 좋고, 흰 쌀밥 고슬고슬하게 너울지는 때 국물을 자박하게 부어 비벼먹어도 그만이다. 명란이 입 안에 터지며 내는 고소한 맛, 대구 이리가 내는 담백함, 장어와 아귀 내장이 주는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지면서 입안을 즐겁게 한다. 이 맛에 소주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더욱 이상할 정도다. 이 때문에 송강식당은 진주 내에서도 나이 많은 주당들이 즐겨 찾는 순례코스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들 음식 외에도 송강식당에는 숨은 매력이 하나 있다. 바로 다락의 존재다. 다락은 음식 맛과 함께 옛날 추억과 운치를 더한다. 다락에는 테이블이 네 개 놓여있는데, 계단에서 멀어 종업원이 미처 들지 못하는 깊은 곳은 손님이 직접 음식을 끌어당겨다 식탁에 놓을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끌대’(?)가 마련돼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청소년이 건강한 진주 만들어야”

이러한 송강식당 제2대 주방장 일 말고도 조재경 사장은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참여중인 사회 활동만 모두 3개. 청소년문화공동체 ‘필통’,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골목길아트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현재 가장 열성을 쏟는 건 ‘필통’에서 준비하는 청소년신문 복간 지원 활동이다.

이외에도 멘토 스쿨, 봉사프로그램 등 통해 청소년들이 자유로우면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지금 같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불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매일 같이 들리는 학교폭력, 왕따 심지어 자살 소식을 들으면서 하루라도 마음이 편할 어른이 어디 있겠어요. 이런 일들은 모두 어른들이 아이들을 소외 배척하고, 과도한 경쟁만 추구하도록 기계화 시킨 탓 아니겠어요. 이런 구조를 조금씩 바꾸어보자는 것이죠. 적어도 우리 지역에서만큼은 청소년들이 소외되고 우울하고, 괴로워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이 때문에 이 일을 중요한 거죠.”

아이 셋을 둔 아빠로서 머지않은 미래,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각오도 함께 담겼다.

“많은 구상들이 있어요. 아직은 다들 바빠 손을 대지 못하고 있지만, 천천히 해 나갈 예정이에요.”

현재 진주시 주약동 금호아파트에 사는 조재경 사장은 단절된 아파트 문화를 바꾸는 작은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초등학생이 사망한 일이 발단이다.

아직 구상 단계지만 몇몇 가지 구체적인 계획은 나왔다.

“재능기부를 통해 아파트 내 주민들이 참여하는 콘서트를 열 생각이에요. 이미 몇몇 재능기부를 할 예술단체도 섭외했고요. 또 동네 초등학교, 어린이집 아이들을 단련시켜 작은 연주회도 하게 할 생각이에요. 못해도 리코더 합주나 가창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동네 노인정에 할아버지·할머니들도 함께 하는 무대도 만들고요.”

이름은 ‘아싸 콘서트’로 정했다. ‘아파트 사람들을 위한 콘서트’다. 현재 함께 할 후원자도 찾는 중이다. 이 밖에도 아파트 내에서도 단절된 공간 가운데 하나인 ‘엘리베이터’ 문화를 새롭게 꾸밀 생각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엘리베이터가 두려움과 공포에 둘러싸인 공간이 된 듯해요. 언제까지 아이들 안전에, 엘리베이터 범죄에 불안해 할 순 없잖아요. 더불어 안심하고 사는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는 이런 변화된 공간 문화 창조가 꼭 필요하다 생각해요.”

진주 송강식당 /사진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꿈

미래를 이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눈이 참 선하게 보인다. 오랜 시간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패션 스타일이나 사회 문제와 불의에 대응하는 생각과 방법 모두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데 왜 식당일을 할 때도 스타일리시한 패션을 고집하는 걸까?

“하하. 궁금했나봐요. 다섯 살 난 딸아이에게 늘 일만 하는 아빠, 생선 냄새나는 아빠, 항상 손님들에게 굽실거리는 힘없는 아빠로 기억되기 싫어서예요. 퇴근 후 집에 갈 때면 생선 비린내 없애려고 섬유탈취제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신경을 써요. 쉬는 날에는 바리스타 공부도 하고, 기타 연주도 하면서 늘 다양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제가 어릴 때 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아픔을 우리 아이는 덜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러는 거예요.”

가업을 잇는 아들로, 또 아이에게는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자 하는 ‘가족사랑’. 내가 사는 지역과 이 지역 속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 송강식당 30년 전통을 잇는 원동력은 조재경 사장이 늘 간직한 바로 이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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