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식 눈 속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

국명 : 직박구리
학명 : Microscelis amaurotis (Temminck)

지난 6월 이사를 했다. 아파트가 오르막 경사에 지어져 다른 아파트 6~7층 높이는 족히 되어 3층이어도 전망이 좋았다.

서둘러 계약을 하고 이사를 했는데 저층으로 이사 오니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가 없으니 올라가고 내려가는 시간이 단축되고 적어도 3층까지는 걸어다니니 운동이 조금이라도 된다. 게다가 정원사가 딸려 있는 정원을 통째로 가지게 되었다. 아파트에 심어진 정원수가 현재 딱 3층 높이까지 키가 자라 굳이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지 않아도 거실에서 내 정원수가 한가득 보인다. 왕벚나무와 곰솔, 스트로브잣나무가 주요 수종이라 봄에는 벚꽃이 만발할거고 요즘엔 곰솔과 스트로브잣나무 잎이 초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새들의 놀이터라서 나무 말고도 다양한 새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수시로 보인다. 소파에 편하게 앉아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파트에 있는 곰솔에 앉아 노는 직박구리.

예전 같았으면 단감이 홍시가 된 걸 못 먹는다고 버렸을 텐데 새들이 보이니 새에게 주면 되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에 홍시를 내놓았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직박구리가 아침마다 잠을 깨워주는데 딱 8시 30분부터 오기 시작해서 10시 30분경이면 다른 곳으로 놀러간다. 그렇게 마실 나갔다가 4시쯤 되면 다시 먹으러 오는데 직박구리도 사람처럼 배꼽시계가 정확한 모양인지 시간을 비교적 정확하게 잘 맞추어 오는 편이다. 직박구리는 도심지에서 자주 볼 수 있을뿐더러 소리가 시끄러워 평소에 별로 예뻐하지 않았던 새 중의 하나였다.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로 ‘찌익~~!’ 또는 ‘꽤액~~!’하고 우는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음역대의 소리를 내며 크기가 기차화통 까지는 아니어도 반통 정도 삶아먹은 큰 소리를 낸다. 하지만 구애를 할 때는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해서 쟤가 직박구리 맞나? 할 정도로 놀라게도 한다. 어쨌든 흔하기도 하고 목소리도 예쁘지 않아 예뻐하지 않았지만 아침마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홍시를 먹는 모습은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은지 누가 직박구리를 밉다고 했나~할 정도다. 사람 마음이 이리 간사해서 되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리 미워도 자꾸 보면 정이 든다더니 딱 그짝이다.

홍시를 먹는 직박구리 모습.

지난 12월 28일에 경남에는 60년만의 폭설이 왔는데 홍시에도 자꾸 눈이 쌓이자 직박구리가 먹으러 왔다가 아무것도 없으니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그냥 간다. ‘짜식 눈 속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 할 수 없이 수시로 베란다고 나가 홍시를 눈 위에다 꺼내 놓아주었더니 바로 눈발을 뚫고 직박구리가 날아왔다. 그래가지고 이 험한 세상 헤쳐나가겠나 싶었지만 그래도 눈을 맞고 홍시를 먹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다음날은 딸내미들이 만들어온 눈사람을 옆에 놓아주었더니 처음엔 누군가 싶어 소리도 꽥! 질러보고 째려도 보고 위협도 했는데 눈사람이 들은 척도 안하자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후로 며칠동안 눈사람 옆에 앉았다 가곤 했다. 덕분에 나는 멋진 연하장 사진도 한 장 건졌으니 누이좋고 매부좋고!

어쨌든 3층으로 이사 오니 집안에서 새를 가깝게 볼 수 있는 이런 호사를 다하고 늘 아파트 고층을 고집할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홍시를 먹는 직박구리 모습.
홍시를 먹는 직박구리 모습.
홍시를 먹으면서도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경계하는 모습.
눈사람과 친구가 된 직박구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시 먹으러 오는 녀석중에 가장 미모가 뛰어난 녀석. 항상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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