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 힘들고, 사랑하니 다 예쁘다”

어느 때부터인가 주변에 지역아동센터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언뜻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궁금했다. 지역의 아동을 모아 놓고 공부를 시키겠다는 건지, 아니면 한 때 유행했던 ‘청소년 회관’들처럼 놀다 가도록 하겠다는 건지, 어떤 계층의 아이들이 오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마산합포구 창동에 있는 ‘행복한지역아동센터’에 찾아갔다.

네비게이션과 씨름을 하며, 골목을 뒤져가며 간신히 행복한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첫 인상은 그저 그랬다. 최대한 깔끔하게 건물을 활용하려 했으나, 솔직히 넉넉한 형편이라는 느낌은 안 들었다.

행복한 지역아동센터는 32평에 최대 29명까지 아동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가 난 아동센터다. 현재 인원은 25명. 7살부터 16살 학생까지 있으며, 대체로 결손가정이나 기초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5명은 일반 아동들이라고 했다. 나라에서 지원되는 월 운영비는 375만 원. 올해부터는 400만 원이고, 따로 두산중공업과 지인들로부터 후원금도 들어온다.

이곳의 센터장은 이영희(45) 씨다. 어떻게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할 생각을 했을까?

   

“저는 수출자유지역에서 20년 간 노동운동을 하려 했어요. 민주노조를 건립하는 게 목표였죠.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사람 바뀌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뭔가 사회에 기여할 길을 찾아야겠다. 그래서 2008년부터 앞서 운영하던 분에게서 인수를 받아 대표로 운영했고, 2010년부터는 센터장을 겸임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가 도대체 몇 개나 있는 걸까?

“제가 알기로 통합 창원시에 71개, 옛 마산 지역에 34개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오면 아이들이 뭘 하다 가는 걸까? 한쪽 벽에는 프로그램 운영표라고 해서 일종의 주간 시간표가 있었다.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종일 여러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공부방처럼 공부가 많았지만, 연극, 바이올린 연주를 매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아까부터 양쪽 방에서 계속 문제지를 풀고, 선생님들이 지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른들이 많았다. 좁은 공간에 어른만 5명이다.

“한 분은 저와 함께 상근을 하는 선생님이고요, 안쪽 교실의 선생님은 창원시가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서 보내주시는 분입니다. 또 이쪽 젊은 분은 공익근무요원이고, 주방에는 조리사님이 계십니다.”

인성·학습교육 모두 개인지도가 가능

12시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더욱 늘어났다.

“급식비는 1인 당 4000원입니다. 타 지역에 비해서 창원시는 높은 편입니다. 그 가운데 조리사님 인건비가 800원입니다. 말 나온 김에, 창원은 지역아동센터 치고는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강성훈 도의원, 강영희 시의원 등 진보성향의 의원들이 많아서, 창원시는 종사자 수당을 따로 20만 원을 줍니다. 또 두산중공업에서 센터 당 45만 원을 지원하고, 장학금 10만 원을 아이들에게 줍니다.”

   

소고기 미역국에, 돼지 불고기, 김치, 오이무침이었다. 식단이 일반 가정집보다 나을 정도고 양도 많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센터는 바쁘게 돌아갔다. 아이들은 계속 들어오고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말은 점점 빨라졌다. 그러다 작은 바구니 하나를 발견했다. 스마트폰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여기 오면 자발적으로 모두 휴대폰을 반납해야 해요. 역설적이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통신요금 지원이 있기 때문에 이곳 아이들이 오히려 고가의 스마트폰이 더 많이 보급 돼 있어요.”

아이들이 통화할 일이 있으면, 사무실로 들어온다. ‘전화 좀 써도 돼요?’ 하고는 사무실 전화로만 학원이나 부모에게 전화한다. 아이들이 자기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점심 먹고 잠시 휴식 시간 30분 정도는 스마트폰을 갖고 놀 수 있었다.

학생 수에 비해 선생님들의 숫자가 많으니 개인지도가 가능하다. 지역아동센터에 25명의 소속 학생들이 종일 있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가면서 상주 인원은 15명 내외였다. 선생님은 4명.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요령 피우기가 쉽지 않았다. 또 공간도 한정 돼 있기 때문에 한 눈에 아이들의 행동이 다 보인다. 모르는 척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아이들 문제집을 몇 권 꺼내봤다. 꼼꼼하게 풀려 있었고, 모든 쪽에 채점이 돼 있었다.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시간과 가정 형편을 줄줄 꿰고 있었다. ‘2시부터 영어학원이지? 언제까지 올거야? 아버지가 몇 시에 데리러 오신데? 밥은 먹고 왔어?’ 등 지도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아이들을 체크했다. 꼼꼼했다.

“솔직히 자랑하면, 우리 센터 아이들이 거의 다 상위권이에요. 아이들이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이뻐요. 연극도 하면서 자기 자부심을 키우려 합니다. 작년 12월 20일에 우리 센터 아이들이 연극 공연을 했어요.”

“연극은 신청자만 하나요? 아니면 전부 다 하나요?”

   

“이건 우리 센터의 특기활동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합니다.”

“센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뭔가요?”

“이혼가정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죠. 그러니까 뉴스로 20%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 체감이 안 돼요. 그런데 직접 상담을 받아보면 정말 문제가 많은 가정이 많아요. 그만큼 아이들이 방치 돼 있다는 거죠.”
엉겨붙는 아이를 어르며 이영희 센터장이 답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지역아동센터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 지도와 엉겨붙는 아이들 때문에 인터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바쁜 이영희 센터장을 앉혀 놓고 잠시 짬을 냈다.

지역아동센터를 새로 등록할 때는 먼저 24개월을 운영해야 한다. 그 동안은 일체의 지원금이 없다. 2년 동안 운영하는 것을 보고 인가를 내어준다. 인가가 났다고 끝이 아니다. 2년 안에 3개월을 잡아서 평가를 매번 한다. 시설, 운영, 급식, 관리 점수를 매겨서 60점을 넘어야 한다. 60점 이하 센터는 탈락되는 데 그럴 경우 월 운영비 400만 원의 절반 밖에 못 받는다.

작년까지는 운영비가 375만 원이었다. 국회에서 법이 개정 돼 400만 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종사자들은 월 6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는 월 500만이 상정 됐지만, 400만 원으로 결정 됐다. 월 400만 원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각종 시설비용, 부대비용을 다 감당해야 한다. 물론 연극이나 바이올린 같은 지도에는 선생님이 따로 오고, 월 20~30만 원 정도의 수당을 줘야 한다. 이 또한 400만 원에서 나간다. 400만 원 운영비는 정부 50%, 경남도 25%, 창원시 25%다. 위에서 말했듯이 창원시는 따로 조례가 있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어서 종사자 수당 20만 원이 따로 나오고, 급식비가 4000원이다.

운영비는 창원시 모든 센터에서 구청에 한 달 사용내역을 정산해서 올려야 입금 된다. 한 군데라도 올리지 않으면 해당 구내 전체 센터의 운영비가 내려오지 않는다. 센터들 가운데서 지역의 메인센터가 있다. 메인센터는 자기센터를 운영하면서 창원시와 일선 센터 사이에 중간매개자로서 지역 센터를 관리한다. 센터도 등급이 있는데, 행복한지역아동센터는 가장 보편적인 29인 센터다. 조금 작은 19인 센터는 작년 기준으로 월 355만 원의 운영비를 받았다.

지역아동센터는 모든 게 무료지만, 간혹 학부모에게서 5만 원 까지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다만, 두산중공업 같은 기업 후원과 지인들의 후원이 있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으로 착복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영수증을 끊어주고 창원시에 보고를 해야 한다.

이영희 센터장에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부에서 급식재료를 살 때는 무조건 카드를 쓰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어시장의 싱싱한 해산물을 사지 못하고 마트에서 사야합니다. 또한, 나랏돈을 쓰는 일이라 잡무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이 한 명 들어올 때도 다 신고 해야 하고, 매달 운영비 사용내역, 보조금과 후원금 사용 내역 등을 일일이 다 정리해서 올려야 합니다. 이 일 때문에 저나 선생님들이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습니다.”

이 외에도 아쉬운 점이 또 있었다.

“제가 운영하는 곳인데도 제 마음대로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과목도 국영수 전과목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안 하면 학원에 가 버려요. 얼마 전 까지는 영어를 안 하고 독서를 했는데, 아이들이 영어학원에 가니까 할 수 없이 독서를 폐지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후 3시가 됐다. 연극시간이다. 저학년과 고학년은 따로 나눠서 1시간 씩 창동 가배 소극장에서 연극 수업을 한다. 4시부터 시작되는 고학년 연극활동에 따라갔다.

먼저 공익근무요원인 김진수 씨가 앞장 서서 아이들을 인솔한다. 센터에서 가배 소극장 까지는 300미터 남짓. 김진수 씨는 연신 “인도로, 뒤에 아이들 기다리고, 횡단보도로 가야지”라며 아이들을 인솔했다.
가배 소극장 문이 닫혀 있어서 3층 자료실에서 설정극 놀이를 했다. 한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고, 다른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말로써 친구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치열한 논리(?)싸움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PC방이라고 설정이 되면 “여긴 흡연실입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아뇨, 저는 담배연기 맡아도 괜찮습니다”, “이 컴퓨터는 게임이 안 깔려 있습니다. 옆 자리로 옮기시죠”, “아뇨, 저는 인터넷만 하러 왔습니다”, “PC방 철거 공사중입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죽어요” 등의 즉흥적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서로의 재치를 뽐내며 웃고 떠들었다.

올 때도 역시 김진수 씨가 아이들을 인솔했다.

끝으로 이영희 센터장은 “물론 우리가 부모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말 안 들으면 미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있어도 저는 단순해서 금방 까먹습니다. 제 눈엔 아이들이 정말 이쁩니다. 이쁜 것을 보면 힘든 게 생각 안 납니다.”

둔덕마을서 1박2일 ‘행복한’ 겨울캠프

다시 1월 10일 겨울 캠프를 하는 날. 캠프장은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둔덕슬로푸드마을’이었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일부러 시내버스를 타고 갔는데, 선생님 2명에 김진수 씨와 대학생 자원봉사자 2명까지 5명의 어른이 아이들을 철저히 보호했다.

버스는 1시간 20분 만에 어시장에서 둔덕마을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놓았다. 아이들은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갔다. ‘개구리 무덤’을 찾는다고 했다. 지난 여름에도 둔덕마을에 왔는데, 숙소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아이들이 갖고 놀다가 개구리가 죽어버려서 아이들이 무덤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지금 그 무덤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물론 개구리 무덤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은 여름에 비해 황량해진 농촌모습에 놀란 것 같았다. 옥수수를 따던 밭은 흔적도 없었다.

밥을 먹고 오후 2시부터 연만들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연에 자기의 새해 소망을 적었다. 연 만드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두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김수한 둔덕마을 사무장은 “아이들이 집중도와 참여도가 매우 높습니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이들은 연신 ‘샘’을 찾았다. ‘샘, 샘, 샘, 샘…’ 마치 한 여름에 매미가 맴맴 울 듯 아이들은 어른들을 찾았다. 그렇게 22개의 연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사리 손으로 처음 만들어진 연이 제대로 날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날은 바람이 전혀 없는 날이었다. 마치 여름날처럼 공기가 멎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뜀박질을 하면서 연을 날리려 했으나, 연은 곧 꼬꾸라졌다. 실망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 중 2~3개는 약간 날기도 했으나 잠시였다. 김수한 사무장마저도 자기가 만든 연을 날리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안 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작게나마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에는 올해 자기가 꼭 가지고 싶은 것과 꼭 버려야 할 점을 적어서 함께 불태웠다. 모닥불을 피워놓자 아이들끼리 알아서 노래가 나왔다. ‘에헤라 디여차~ 어기여차’ 이건 민요 아닌가?

“네, 예전부터 민요와 판소리, 사물놀이를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자주 부릅니다”

동요만 배운 기자는 듣도 보도 못한 민요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손을 잡고 모닥불을 돌고 돌았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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