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요? 개인 타이틀보다는 팀 성적이 먼저죠”

프로야구계에서 리그를 평정한 선수들을 보면 데뷔 때부터 남다른 뭔가가 있었다. 무쇠팔 ‘최동원’, 무등산폭격기 ‘선동열’,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한국프로야구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하나 같이 신인 때부터 리그를 파괴하고 정복한 사나이들이다. 비록 리그의 질이 다르고 기준은 다르지만 리그를 점령한 사나이가 창원에도 있다. NC 다이노스 간판스타 나성범(24)이 그 주인공이다.

나성범은 프로 입단 때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데뷔 첫해 퓨처스리그를 속된말로 ‘씹어먹어버렸다’. 그 결과 그는 올 시즌 프로야구 신인왕 후보 1순위, 계사년을 빛낼 스포츠스타 1위에 올라있다. 계사년인 올해 NC의 간판스타 나성범은 공교롭게도 스물네 살 뱀띠다. 지난 시즌 화려함은 뒤로 하고 올 시즌만 바라보겠다는 나성범을 스프링캠프 훈련 일정이 시작된 7일 만났다.

투수에서 타자로, 롤모델은 추신수

지난해 NC 유니폼을 입은 나성범은 입단 초기에만 해도 전도유망한 투수였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연세대시절 투타 양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에게 입단 직후 투수가 아닌 타자로 보직을 변경할 것을 권유했다.

2013년 1월 NC다이노스 프로야구단 1군 진입 앞두고 첫 공식훈련을 마산야구장에서 했다 / 사진 김구연 부장

“제가 2학년 때 어깨부상을 입어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투수로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더군다나 3, 4학년 때는 방망이도 제대로 잡지 않고 오로지 투수로만 경기에 나섰기 때문에 더 고민됐죠. 하지만 김경문 감독님의 안목을 믿고 그 결정에 따랐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시나 감독님의 결정이 옳았던 것 같아요.”

그는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준 김경문 감독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타자로 전향하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2년 간 놓았던 방망이를 다시 잡고 훈련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투수 로테이션에 맞춰진 그의 신체 리듬을 재부팅 하는 건 더 어려웠다.손바닥이 찢어지고 물집이 나는 건 예사일 정도로 그는 혹독한 겨울 캠프를 보냈다. 그는 타자 전환 1년 만에 퓨처스리그 타자 부문 1위에 오르며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내비쳤다. 남부 리그 타격 4관왕(타점, 홈런, 안타, 장타율)에 올랐고, 구단이 자체 선정한 팀 내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는 영광도 누렸다.

그는 추신수를 본보기로 삼으며 뒤따르고자 한다.

“처음 제 롤모델은 김광현(SK) 선배였어요. 파워 있는 피칭을 하던 김광현 선배를 동경해왔는데 타자로 전향한 뒤로는 추신수 선배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졌어요. 우선, 저와 마찬가지로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잖아요. 거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니 더 본받고 싶어지더라고요. 게다가 포지션도 외야수라는 공통점이 있고 나와 같은 왼손잡이잖아요. 타자가 된 후 호타준족형 타자를 꿈꿔온 제게는 최고의 롤모델이죠”

그가 밝힌 것 외에도 빠른 발과 타격실력, 강한 어깨 등 추신수 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 비슷하다. 추신수가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라면 그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다. 원한다면 닮는다고 했던가? 나성범은 어느새 추신수를 닮아가고 있다.

신인왕보다 풀 시즌, 타점왕이 탐나

야구 인생에서 단 한 번 품을 수 있는 상이 바로 신인상이다. 지난해 신인왕을 탄 서건창(넥센)은 나성범과 광주출신에 동갑내기 친구다. 하지만, 같은 팀으로 함께 뛴 적은 없다. 나성범은 진흥중-진흥고에 이어 연세대에 입학했고, 서건창은 충장중-광주제일고를 나와 2008년 LG에서 신고 선수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건창이와는 포지션이 달라서 비교를 당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건창이는 당시에도 2루수를 봤는데 타격, 수비, 주루 플레이 모두 뛰어났죠. 2008년 건창이가 프로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니 ‘프로의 벽이 정말 높긴 높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건창이가 지난해 결국 일을 냈잖아요. 신인왕에다가 골든글러브까지…. 친구로서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성공한 친구에게 축하를 건넸지만 저 역시 꼭 성공해서 ‘나도 너만큼 잘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친구한테 뒤처지면 부끄럽잖아요. (웃음)”

지난 시즌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신인왕 친구 서건창과 올 시즌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인왕 후보 1위 나성범은 그렇게 서로에게 선의의 경쟁자가 돼가고 있었다. 친구인 서건창이 신인왕을 타면서 나성범의 머릿속에도 온통 신인왕 수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싶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신인왕 타이틀에 욕심이 있냐고.

하지만, 나성범은 개인 기록보다는 팀 성적이 좋았으면 한다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그는 “다들 신인왕, 신인왕 하시는데 그보다 저는 풀타임 출전이 목표예요. 주변에서 기대가 큰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런 부담감조차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관심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하니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죽기 살기로 모든 걸 쏟아 부어 한 단계 성장한 나성범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다.

단호한 어조로 올 시즌 각오를 밝힌 나성범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팀 배팅에 중점을 두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타이틀이 있다면 타점왕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타점왕이 된다는 건 찬스에 강하다는 얘긴데, 타점을 늘리다 보면 팀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을까요. 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홈런보다는 타점에 더 애착이 가요. (웃음) 어릴 때부터 저를 가르친 감독님들께서 꿈이 커야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롯데와의 개막전, 제일 기대되죠”

나성범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전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수두룩한 1군 무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유다. 그는 ‘맞수’ 롯데와 최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삼성)과의 대결에 몹시 들떠 있었다.

2013년 1월 NC다이노스 프로야구단 1군 진입 앞두고 첫 공식훈련을 마산야구장에서 했다 / 사진 김구연 부장

NC는 KBO의 작은 배려(?)로 4월 2일 창원 홈경기에서 ‘지역 라이벌’ 롯데와 1군 데뷔 첫 홈경기이자 개막 3연전을 치른다. 그는 “KBO에서 작정하고 롯데와 우리 팀을 라이벌 구도로 몰고 가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인지 첫 경기인 롯데전이 가장 기대되죠. 창원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만큼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우리 팀이 물론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올라가기 때문에 상대가 얕잡아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 말씀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고 즐거운 야구 보여드리도록 노력할 겁니다. 원래 스포츠의 묘미는 다윗이 골리앗을 잡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롯데전 필승 의지를 내비쳤다.

또 나성범은 오승환과의 맞대결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오승환 선배의 ‘돌직구’를 직접 타석에서 느껴보고 싶어요. TV를 보면 충분히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다들 치기 어렵다고 하던데 얼마나 공이 묵직할지 궁금하고 기대돼요. 오승환 선배의 공을 받아쳐 제가 끝내기 안타나 홈런을 치면 얼마나 짜릿할지 벌써 두근거리네요.”

많은 프로선수가 오승환과의 맞대결을 꺼리는 데 반해 오승환과의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인으로서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계사년 기다려라, 나성범이 간다

나성범은 올 시즌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팀이 1군 무대에 진출하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계사년, 뱀의 해다. 1989년생인 나성범은 뱀띠로서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고자 한다.

   

“사실 올해가 계사년인지도 몰랐어요. 몇몇 기자 분이 저랑 뱀띠 해를 연관하다 보니 이상하게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인 성적은 저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녀서 말하기 어렵지만, 뱀띠 선수 중에 ‘이 놈 참 쓸 만하다’라는 이야기는 듣고 싶어요. 다만, 지난해 다쳤던 손목부위를 조심하면서 시즌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입은 부상 덕분에 제 몸은 제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거든요.”

그는 얼마 전 TV에서 이승엽이 ‘방망이를 많이 휘두르는 것보다 정확하게 집중력 있게 휘두르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라고 말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성범은 “이승엽 선배 얘기를 듣고 저도 크게 공감했죠, 훈련 시간이 많으면 분명히 도움은 되겠지만 제가 얼마만큼 그 훈련에 집중해서 하는가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래 선수들이 즐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NC에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 대거 합류했다.

2004년 타점왕을 차지한 이호준과 2007년 타격왕에 오른 이현곤은 나성범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나성범도 한 식구가 된 선배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베테랑 선배들의 경험은 결국 제가 많이 뛰어야 채울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다만, 득점권기회에서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선배님들이 1군 무대에서 겪었던 투수들의 노림수에 대해 많은 조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노림수 없이 공보고 공치기를 했다가는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겠죠”라며 웃었다.

2013년 1월 NC다이노스 프로야구단 1군 진입 앞두고 첫 공식훈련을 마산야구장에서 했다 / 사진 김구연 부장

지금도 많은 팬과 언론은 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나성범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충분한 화젯거리가 되고, 소속팀인 NC도 신생팀이어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대중의 수많은 관심에도 나성범은 인터뷰 내내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또, 야구를 대하는 그의 태도만큼은 어떤 선수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이제 갓 스물네 살이 된 나성범. 수많은 좌절과 환호가 그의 인생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NC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올 시즌만큼은 거침없이 달렸으면 한다. 새해 첫해 주인공으로 피플파워가 그를 주목했으니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