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홍순학·전지혜 부부

26살 전지혜(33) 씨는 부산에서 석사 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이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집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당시에는 미니 홈페이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처럼 미니 홈페이지를 그냥 둘러봤으면 그만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검색을 시작했다. '홍·순·학. 얘 요즘 뭐하고 지내나…'. 흔한 이름은 아니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은 지 어느덧 6년이나 됐다.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의 친구로 처음 만났어요. 당시 잘 지내던 남자친구와 조금만 더 가면 사귈 수도 있었는데, 그때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된 거죠. 처음 봤는데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순학 씨는 노래도 제법 잘 불렀다. 그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처음 느낀 호감이 더욱 깊고 짙어졌다. 애초에 잘 되려던 남자친구 존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원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붕 떴지요. 그래도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 때문에 괜히 남자 사이 관계가 이상해졌지요."

어쨌든 마음이 맞은 남녀 고등학생은 어지간히 붙어다녔다. 집도 서로 멀지 않았던 탓에 순학 씨는 거의 매일같이 지혜 씨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연애라고 해봤자 기껏 커피숍을 간다거나 놀이터에서 얘기하는 정도였지만 고등학교 내내 여친·남친으로 지냈다. 하지만, 이들은 만남만큼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된다.

"제가 재수를 하고 남편은 부산에 있는 학교로 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만 열심히 해라, 기다리겠다 했는데… 무슨."

엄밀하게 따지면 먼저 배신한 쪽은 남자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다시 만나기까지 다른 사람을 만난 횟수는 지혜 씨가 많다. 현재 이 부부는 '배신의 역사'에 대해서는 서로 따지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지난해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가 26살일 때는 '솔로'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재결합(?)은 지혜 씨가 취기로 시작한 미니 홈페이지 검색 덕이었다.

"제가 남편 홈페이지에 연락처를 남겼어요. 그런데 한 3분 정도 지나니까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면서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바로 글을 지웠지요."

하지만, 3분은 순학 씨에게 충분한 시간이었다. 순학 씨는 3분 동안 남아 있던 연락처를 제대로 확인하고 다음 날 지혜 씨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자마자 아주 좋은 거예요. 옛날 함께 지내던 추억 때문인지 어색한 것도 하나도 없고요. 그냥 편안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혜 씨는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고 순학 씨는 학생, 그것도 음악에 푹 빠진 학생이었다. 대학생활 시작만 1년 빨랐다 뿐이지 순학 씨는 음악에 빠져 학교 졸업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졸업은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남편이 30살 때 졸업을 했지요. 제가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도서관도 데리고 다니고…."

순학 씨와 지혜 씨는 지난해 결혼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에 골인했다. 다만, 지혜 씨가 순학 씨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있었다.

"3년 전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남편이 곁에서 많은 힘이 됐어요. 그런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즐거웠던 추억, 그리고 힘들었을 때도 함께 했던 것, 이런 게 모여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지나쳐 순학 씨는 '프러포즈'를 그냥 넘기고 만다. 이 대목에서 부당함을 주장하는 지혜 씨 목소리는 한결 높아졌다. 그나마 아내를 위한 자작곡을 바친 덕에 순학 씨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는 있을 듯하다.

"결혼식 때 남편이 자작곡을 통기타로 연주하며 불러줬어요. 활동하고 있는 밴드를 동원하는 것은 제가 사양했지요."

부부는 인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불탑을 전공하는 지혜 씨 뜻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인도에서는 당시 치안 상황이 유난히 불안해서 별로 밖을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신혼부부에게 안팎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것으로 해두자.

현재 지혜 씨는 부산에 강의를 나가고, 순학 씨는 조선업 기자재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 신혼집은 김해에 있다.

"남자들이 결혼하면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 더 많이 사랑해줘서 고맙고요. 앞으로 남편을 더 존경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남편 음악 생활은 인정하는데 막상 결혼하니까 거슬리는 것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지요."

지혜 씨가 유쾌하게 웃었다. 순학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산에서 인디밴드 '판다즈' 팀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3593-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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