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민간 환경교육 위해 가진 것 아낌없이 내놓는

10일 저녁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진행된 임홍길(58)씨 인터뷰는 시종 유쾌했다. 천성이 그런 것 같았다. 무겁든 가볍든, 버겁든 쉽든 관계없이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 같았다.

노동자로 살면서 자기 한 몸과 가정의 안녕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활동에 적극 나서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이는 20년 넘게 꾸준하게 그런 삶을 이어왔다. 그이 나날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유별나지 않다. 다만 망설이거나 재거나 하지 않을 따름이다.

옳으면 함께했고 필요하면 자기 가진 바를 더했다. 성과가 자기 앞으로 쌓이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마음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또한 상대방 처지에서 보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여길 줄은 안다.

단위 노조 활동이 환경운동으로 이어져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한 아파트에 살면서 현대로템에서 중기생산기술팀 소속으로 일하는 임홍길씨는 환경운동을 오래 해 왔다. 지금도 환경단체를 꾸리면서 많은 책임을 맡고 있다. 맡고 있는 직책은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 부이사장이다. 이사장은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초대 의장 양운진 경남대학교 환경공학과 전 교수가 맡고 있는데 실제 일은 대부분 임홍길 부이사장이 알아서 꾸려나간다.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는 2001년 생겨났다. 물론 임홍길씨가 창립의 주동이었다. 임씨가 환경운동에 나선 실마리는 노동조합 활동에 있었다고 한다.

임홍길 부이사장./김훤주 기자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현대정공(지금 현대로템) 창원공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거기서 복지후생부장을 맡았어. 복지후생 활동이랑 산업안전 활동이 나뉘어져 있지 않아서 다 같이 했지. 작업 환경이라든지 식당 밥 문제 등등도 다뤘어. 그러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게 됐는데, 때마침 1991년 경북 구미공단에서 낙동강 페놀 사태가 터졌고….”

페놀 사태에 대한 지역사회 대응과정에서 생겨난 단체가 마산창원공해추방운동협의회였다. 나중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으로 발전해 나가는 이 조직에서 임씨는 처음부터 지역주민위원장을 맡았고 마창환경련으로 바뀐 뒤에도 같은 자리를 맡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사무국장도 하게 됐는데, 이처럼 상근 활동가가 아닌 직장인이 환경단체의 실무 총책을 맡는 경우는 예나 이제나 매우 드물다.

“당시 마창환경련이 실무자한테 활동비 또는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었어. 그러니까 따로 밥벌이할 데가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사무국장으로 앉힌 거지. 따로 다른 사정은 없는 줄 알아. 그렇게 활동을 하면서 환경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됐어.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 이것 고쳐라 저것 하라 하기 보다는 미리 환경 보전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민들로 하여금 자질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지. 96년인가 당시 쟁점으로 제기돼 있었던 창녕 우포늪을 다른 이들과 둘러봤는데, 미리 환경교육이 돼 있었다면 우포늪 보전이 좀 더 쉽지 않았을까 싶었어. 환경운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느끼던 그런 것이었는데, 마창환경련 틀 안에서 하려다가 잘 안됐어요.”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 창립

90년대 후반 마창환경련은 창원시 용호동 옛날 창원백화점 건물에 부설 환경교육센터를 내고 실무자를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꾸준하게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임홍길씨는 사무국장을 거쳐 감사를 역임한 뒤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사로 옮겨간다. 물론 마창환경련 회원 신분은 유지한 채다.

다른 뜻은 없었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아래에서 환경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001년 1월 경남정보사회연구소 부설 기관으로 경남풀뿌리 환경정보센터를 창립했다. 지금은 독립 단체인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의 전신(前身)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민간 기관이었으나 나름대로 재정 확보 방안이 있었다. 그런 연구소로부터 환경교육센터는 ‘월급 받는 실무자’를 파견 받을 수 있었다.

“마을 강사를 길러내고 생태환경강사 양성 과정을 만들었지. 창원천과 남천을 비롯해 창원 지역 수질 측정도 하고 수(水)생태계 조사도 했어. 환경 관련 강사 양성은 아마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가 가장 먼저 했을 거야. 민간에는 물론이고 창원시나 경남도 차원에서도 그런 시도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환경 관련 강사를 양성해내는 단체나 기관도 쉽사리 볼 수 있고 강사들이 모여 서로 도움과 보탬을 주고받는 조직도 적지 않다.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단체나 기관 또는 조직에는 ‘풀뿌리’ 출신도 적지 않다. 오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임홍길씨가 ‘풀뿌리’의 환경 강사 양성 과정을 거쳐 간 사람들이 따로 조직을 꾸리는 데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풀뿌리 사업을 통해 아이들한테 환경과 생태의 소중함을 알리고 주부 등 환경 강사도 양성해 배출이 되니까 보람이 있지요, 나가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부모가 자식들 키워서 내보내듯이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지금 ‘풀뿌리’는 경남정보사회연구소의 부설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연구소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다. 앞서서 임홍길씨의 풀뿌리는 재정 자립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생활협동조합’을 매개로 삼았는데,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갔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동상이몽’인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사람이 왔는데 생협운동을 창원에서 하면 어떻겠느냐 했어요. 전에부터 일본 가톨릭노동장년회와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그쪽 회원들이 생협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알았거든. 그래서 생협운동을 하자, 했지요. 지금은 창원아이쿱생협으로 돼 있는데 풀뿌리환경교육센터 창원생협으로 출발했어요. 준비위원장을 맡았는데,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조합원을 조직하고 홍보하고 교육하는 일이었어. 지금 창원아이쿱생협이 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셈이지. ‘생협’을 두고 사람들이 생각이 달랐어.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도 가져가려 했고…. 원래 생각했던 취지는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의 활동과 생협의 교육 활동이 다르지 않고 비슷하니까, 서로 맞물려 같이 움직이도록 하려 했는데, 생협에서 나오는 회비를 갖고 풀뿌리를 움직여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하려 했는데 생각대로 안 됐어요. 그래서 넘겨줬어.”

대원평생교육센터 6년 동안 위탁 운영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임홍길 씨는 2004년 당시 본인이 살고 있던 창원시 대원동 일대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이게 된다. 대원 마을 만들기, 어린이 생태탐사반 운영, 두대뒷산 마을 숲 가꾸기, 두대뒷산 생태자료집 제작, 창원시 하천 수질 지도 제작 등. 그리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년 동안 창원시로부터 대원평생교육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했다.

“대원동 은행나무 거리축제를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로 2년 동안 했어요.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라고 넘겨줬는데 3회째만 하고 안하네요. 도로 가에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잖아요. 은행나무마다 어린이 학생 주부 등 가족 단위로 이름표를 달아주고 이를테면 ‘홍길동이 관리하는 나무다’ 하는 겁니다. 그 나무를 해코지 못하게 하고 껍질 가지 손상을 안 입히게 보호하고 가꾸는 활동입니다. 축제 행사는 단풍이 질 때 했는데 주민 화합 차원에서 협동심 기르는 것도 목적이었어요. 어쨌든 지금 잘 안 되고 있으니 안타깝지.”

   

이런 활동을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온 토박이들은 별로 거들지 않았다고 했다. 대원동에는 사택(社宅)이 많다. 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부들이 들어와 살다가 몇 해 있다가 떠난다. 어린이와 젊은 주부 같이 마을도서관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활동에 주로 나섰다.

“대원동 안쪽 하천은 복개해 도로를 만들었어. 모기 서식처야. 그래서 모기 없는 마을 만들기를 했지요. 하천과 둘레 청소하고, 웅덩이 같은 모기 서식처를 없애는 한편 모기 애벌레 같은 것은 제거하는 활동이었지. 효과는 조금 있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애기해.

창원천 살리기는 창원시에서 나서기 전부터 했어. 초등학생 아이들 데리고 창원천에 사는 식물이나 물고기 종류를 상류에서 하류까지 조사했어요. 그렇게 자료를 만들고 수질 측정도 해서 ‘어디까지는 좋았는데 어디부터는 나빠지고’ 하는 자료를 만들고 ‘왜 나빠졌을까?’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 이렇게 아이들 학습 시키는 한편 지역 주민한테 쓰레기 버리지 말기 홍보도 하고 하천 둘레 청소도 하고.”

지금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는 대원평생교육센터도 운영하지 않고 생협과도 무관하게 돼 있으며 나름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돼 줬던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도 독립돼 있다. 물어보나 마나 몇 명 되지 않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이런저런 기부금, 그리고 자체 교육 사업 참가비가 수입이 전부다. 그런데도 실무자까지 한 명 있다. 상근 인력이 없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다지만 없는 살림에는 실무자 인건비만 해도 결코 가볍지 않다.

“양운진 이사장을 비롯해 몇몇 이사들이 있는데 이들이 여러 모로 도와준다. 내 호주머니를 터는 경우도 있고…. 하하.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요기까지만 하자(나중에 다시 물으니까 활동에 들어가는 개인 돈이 한 달에 70만원 안팎이라 했다).”

   

가톨릭노동회가 사회 활동의 원동력

풀뿌리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는 지보다 더 큰 궁금증이 있었다. 아무리 의식이 깨어 있다 해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환경운동 같은 사회 활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고, 또 노조 활동을 통해 사회 활동으로 나오게 됐다는데 이 또한 자기 직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데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아, 지오세(JOC:가톨릭노동청년회)가 있어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지만 국민학교 시절부터 서울에 있었어요. 1974년부터 했어요. 청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였는데 지오세를 통해 ‘나’라는 사람도 성장이 됐어. 박정희 시절이었는데 지오세를 통해 민청학련 등 민주화운동을 알 수 있었고 전태일 열사 추모 기도회를 김승훈 신부랑 동대문성당에서 처음 하기도 했고 전태일을 알리는 유인물을 가리방(がりばん:등사를 뜻하는 일본말, 철필로 긁은 종이에 잉크를 묻혀 찍어냄)으로 밀어갖고는 허리춤에 넣고 다니면서 뿌리고 했다.

   

1977년 형이 있는 울산으로 가서 현대종합목재 다니다가 1980년 결혼하고 창원으로 왔는데, 서울서 만난 초기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연결해 줘 창원에 오면서 가톨릭노동장년회 활동을 하게 됐어요. 이런 활동은 인간과 노동, 노동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줬어. 환경운동을 가톨릭에서는 창조질서 회복, 그러니까 조물주가 창조해낸 자연 상태로 돌리자는 운동으로 봐요. 또 페놀 사태 닥치면서는 당연히 ‘먹는 물 문제니까’ 환경운동의 필요성을 더 잘 알게 됐다.”

그이는 지금 가톨릭노동장년회 마산교구연합회 회장과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가톨릭노동장년회 아래에 까르딘사회연구소까지 만들고 소장을 맡아 본격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까르딘(J. Cardin)’은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노동장년회를 있게 만든 가톨릭 성직자다. 이 연구소를 통해 임홍길 회장은 이주노동자 문제, 다문화가정 문제, 환경 문제, 청소년 문제 등등을 해결하는 데 한 몫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어려움이 더욱 커진다.

   

“직장생활 하면서 가장 노릇도 해야 되고 사회·환경운동도 하다 보니 회사 눈치도 많이 보인다. 연장근로 등 일을 해야 돈이 되고 생활이 되잖아? 그런데 저녁 모임은 말할 수 없이 많고 낮에도 모임을 하다 보면 외출·조퇴 자주 하고 잔업은 꿈도 꾸기 어려워. 가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아내한테는 미안할 따름이다. 믿고 함께해줘서, 어쨌든 그래도 싫은 내색 안해서 고맙다. 활동할 수 있도록 나름 배려해 주는 회사랑 직장 동료들도 고맙고.”

술·음악·여자를 좋아하는 풍류객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술과 음악, 여자. 한 마디로 풍류(風流)라 했다. 인터넷 카페나 이런 데서도 ‘풍류객’이라는 별명을 쓴다고 했다. 바람처럼 떠돌아다니고픈 그이에게는 그러나 근원이 있다. 스스로를 일러 풍류객 몽천(蒙泉)이다. ‘새롭게 솟아나 늘 어린 샘물’이다. 몽천은 자호(自號)다. 전에는 다른 사람이 붙여 준 사강(思江)이라는 호가 있었다. ‘생각하면서 흘러가는 강물이 돼라, 고여 있지 말아라’는 뜻인데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그이가 요즘은 사진에 빠져 있다.

임홍길 부이사장 캐리커쳐.

“환경감시활동을 하면서 오염된 사진만 찍어 왔다. 그런 것 보다는 환경이 살아 있는 것도 찍고 싶어 전문으로 사진 기술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디지털사진가협회 공모전에서 입선한 적도 있다. 사진은 교육 자료로도 많이 필요하더라. 남들한테만 의존해서는 되지도 않고 조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확충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1400만~1500만원 투자해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토·일요일은 사진을 주로 찍으러 다닌다.”

마지막으로 그이는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다음 카페 http://cafe.daum.net/gngrassroots)에 가입해 달라고 했다. 한 달에 5000원 이상 회비를 내면 의결권이 보장되는 온전한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락 전화번호는 055-273-0428. 속절없이 한 달에 1만원 내는 회원으로 가입하고 말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임홍길 부이사장이 찍은 '아침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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