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명문 바르샤와 손잡고 한국 축구 미래 키운다

조광래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달 진주에서 스페인 프로축구의 명문 FC바르셀로나와 손잡고 유소년 대상의‘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구교실’을 열었다. 이제 그의 직함도 감독이 아닌 조광래축구재단의 이사장으로 바뀌었다.

11월의 한파가 몰아친 어느 겨울 밤 진주 문산에 있는 스포츠파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FC바르셀로나 로고가 선명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운동장에 서 있었다.

바로셀로나 축구교실로 고향에 오다

조광래 감독에 대한 기억은 지난 2010년 7월 21일로 거슬러간다.

당시 한국 축구 A대표팀을 이끌게 된 조광래 감독을 창원의 한 호텔에서 아침 일찍 만났다. 그의 전화기는 오전 내내 통화중이었고, 숙소 로비에서 만난 구단 매니저를 통해 어렵사리 인터뷰 자리가 주선됐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조광래 감독의 선임을 공식화한 게 21일 오전이었으니 그땐 대표팀 감독의 첫 인터뷰였던 셈이다.

조광래 이사장./박일호 기자

당시 조 감독은 “축구를 시작하면서 대표 선수가 되기 전까지는 술, 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연세대 1학년(1975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며 “11년에 걸친 국가대표 생활 후 1987년 은퇴해 그때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지도자 수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조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의 꿈을 40년 동안 준비해 결국 이뤘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다는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을 두 팔 벌려 맞이한 그는 인터뷰 말미에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고향인 경남에서 반드시 봉사하겠다. 꼭 감독이 아니더라도 어린 선수를 키워내는 역할이나 축구행정 등 다른 분야라도 경남 축구 발전을 돕고 싶다”는 게 그의 경남을 떠나면서 했던 마지막 소회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감독의 마지막 발언을 기사화하면 그를 기다리는 팬에겐 ‘희망고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떠났다 돌아오는 사례는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조광래 이사장./박일호 기자

그렇게 경남을 떠났던 그가 돌아왔다.

석연찮은 이유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니 귀환(歸還)이라는 유창한 수식어를 부치기도 부담스럽지만, 암튼 그는 약속대로 고향인 진주행을 택했다.

그런 그가 반가웠다.

떠날 때는 빈손이었던 그는 유소년 대상의 ‘FC바르셀로나 유소년클럽'까지 이끌고 왔으니 그는 약속을 꼭 지킨 셈이다.

축구 기술과 더불어 인성교육과 학업 병행

먼저, 그가 축구교실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르셀로나 축구를 보면서 생각하는 플레이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표팀에 있을 때도 선수들에게 창의적인 축구를 주문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 훈련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훈련의 축소판이더라. 아차 싶었다. 비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조광래 이사장./박일호 기자

조광래 축구교실의 테마는 ‘생각하는 축구, 즐기는 축구, 빠른 템포의 축구’다.

프로팀과 대표팀 시절 ‘스페인식 패싱축구’를 강조했던 그이기에, 학생들에게도 체력 위주의 지루한 훈련 방식을 탈피해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조광래 축구재단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훈련 프로그램대로 축구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인성교육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73명이 초등학생이 3개 반으로 나뉘어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그것도 방과 후에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반은 12~14명 소수정원으로 이뤄진다.

프로그램은 창의적인 바르셀로나식 축구훈련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

평일 2회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자체경기 등 개인평가를 거쳐 개인별 맞춤 훈련을 할 계획이다. 조 감독은 “서울에서 주말에 내려오는 학생도 있고, 테크닉반(선수반)을 편성해달라는 요구도 있을 정도로 주위의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는 진주 뿐 아니라 도내 전역을 대상으로 선수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멀리서 버스가 등장하고, 자신의 키보다 큰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차례로 내린다.

훈련장이 문산에 있다 보니 전용버스를 통해 진주 지역을 차례로 돌며 학생들을 데리고 온다고 코치가 설명해줬다.

코칭스태프와 일일이 학수하는 축구교실 학생들./박일호 기자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줄을 서서 운동장에 들어서고, 코치진과 악수를 한다. 학원축구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광경이다. 조 감독은 “축구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성교육도 하라는 게 바르셀로나의 방침”이라며 “훈련이 끝나면 코치진과 학생들이 마주 앉아 그 날 배운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바르셀로나 축구교실 만의 특징”이라고 했다.

현재 조광래 축구교실은 국내 코치 4명이 선수를 가르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스페인 현지에서 유소년 코치가 직접 파견될 예정이다.

조 감독은 어린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길러주는 데 훈련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는 “기술보다는 창의성이 중요하다. 실수는 반복된 훈련으로 반드시 고쳐진다. 하지만, 창의적인 플레이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코치진도 패스의 정확성보다는 사고의 정확성을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조광래 이사장과 학생들./박일호 기자

조광래 감독은 올해 초 진주에서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캠프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이들은 바르셀로나에서 열릴 바르셀로나 국제축구대회에도 출전하게 된다. 깊은 인상을 남기면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할 수 있다.

조 감독은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축구교실에서도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는 선수가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 까 한다”며 “나보다 더 유명한 선수가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FC바르셀로나 유소년축구교실은 오는 2015년까지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 4만 7000여㎡(1만4000여 평)에 3개 축구장을 갖춘 훈련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 훈련장은 진주시가 부지 매입을 해 시설을 갖춘 뒤 조광래 축구재단이 운영을 맡기로 했다.

70분간의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나고 조 감독을 다시 만나 최근의 축구계 현안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3년 후에 지휘봉 내려놓고 싶어

대표적인 축구계의 야권 인사인 그는 ‘축구 대통령’을 뽑는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4년 전에는 8표 차로 조중연 현 회장이 당선됐지만, 중앙대의원이 폐지되면서 ‘여권 프리미엄’이 사라져 어느 때보다 박빙의 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 변화를 바라는 축구인이 많기 때문에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감독은 ‘야권’으로 분류되는 허승표(66) 피플웍스 회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승표 회장은 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구교실 개강식에 직접 내려와 버스를 기증할 정도로 조 감독과의 절친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훈련 중인 조광래 이사장./박일호 기자

프로팀 복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과 고향인 경남FC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던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벗은 이후 축구교실 개강 전까지 야인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지도력은 이미 프로무대에서는 정평이 나 있어 조만간 프로팀으로 복귀하지 않을 까 하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경남FC 재임시절에는 자신의 축구철학에 맞춰 팀을 변화시켜 감독이 노력이 팀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대표팀 감독 사퇴 이후 중국리그에서 숱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감독은 “앞으로 2∼3년 가량 프로팀을 맡고 지휘봉을 내려놓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일부 팀에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A대표팀의 석연치 않은 감독 교체 등으로 숱한 마음고생을 한 조광래 감독.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이기에 조만간 벤치에서 옆머리를 휘날리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멀지 않아 보인다.

조광래 이사장./박일호 기자

조광래 감독, 그는 누구인가

진주 출신의 조광래 감독은 현역시절 ‘컴퓨터 링커’로 불리며 1970-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학창시절 시험을 통해 명문 진주고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로 곧잘 했던 조광래 감독은 축구 선수로서의 성공을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고 결국 1975년 연세대 1학년(21살)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이후 1978년과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조광래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무대를 밟는 등 A매치 통산 80경기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은퇴를 선언한 조광래 감독은 1년 뒤 지도자에 입문했다. 친정팀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조 감독은 2000년 안양LG(현 FC서울)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1999년 리그 꼴찌였던 안양LG를 부임 1년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단번에 A급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2004년 팀을 떠났던 조 감독은 스페인과 잉글랜드 등에서 꾸준하게 선진 축구를 섭렵했고, 결국 2008년 박항서 감독에 이어 2대 경남FC 사령탑 자리에 오르며 부임 첫 해 FA컵 준우승 트로피를 올려놓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2009년에는 경남FC에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이용래, 송호영, 김동찬, 이용기 등을 주전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조 감독은 유망주 발굴에도 탁월해 이영표, 이청용(볼튼)은 물론 정조국, 박용호, 고명진, 고요한 등이 키워냈다.

지난 2010년 허정무 감독의 뒤를 이어 조광래 감독은 한국축구 A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지만, 1년 5개월 여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되는 아픔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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