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따뜻하구나, 사람 냄새 애틋한 그곳

입동을 앞두고 찬 공기에 몸은 절로 움츠려들었다. 장날이 아닌 시장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하고 썰렁했다. 아케이드 아래 점포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엔 상인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 중이었다. 합천시장은 3일과 8일이 장날이다. 평소엔 어떨까, 장날은 어떨까, 다 둘러보고 싶었다.

첫 만남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

장날이 아닌 합천시장은 적적했다. 11월 6일,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으로 시장 초입부터 사진기를 갖다 대며 쭉 이어진 점포들을 기웃거렸다. 금방 눈에 띄었나 보다.

한 점포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이 나와 슬며시 옆에 와서 선다.

“언젠가 중국에 갔을 때 내가 풍경이 하도 좋아 사진을 찍는데, 사람들이 와서 자기 얼굴 찍는다고 그라데예. 요새는 사진기도 함부로 못 들이대는 거지예.”

아차 싶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쳐다보는데 얼굴 가득 싱글벙글 웃음이다. 화를 내고 탓하는 게 아니라 넌지시 귀띔해 주는 표정이다.

얼른 자초지종을 말하려는데, “아이구, 그게 그렇다는 겁니다”로 마무리한다.

합천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합천시장의 첫인상이었다. 이 어른은 형제 건강원 이춘득(70) 아재였다. 그는 구수한 말솜씨에다 침술 등 여전히 배우고 하고픈 게 많은 어른이었다. 요즘 도라지와 배를 넣어 겨울 보약인 즙을 주문하는 곳이 많아, 이 날도 부인과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는 기계 앞에 서 있었다. 아재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아지매 혼자서 파우치봉지를 나르며 동동걸음을 했다. 그래도 싫은 기색이 없다.

덕분에 마음이 환해지고 기운이 났다.

시장 한 바퀴를 도는데 작은 가게 불빛아래서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흘러나와 발목을 잡는다. 세 할머니가 도란도란 정겨워 보인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손을 내두르며 수줍어한다.

“이 늘근 할마시들을 머할라꼬. 쪼글쪼글 주름살 다 나온다, 아이고.”

시장신발 오소순 할머니(81). 화들짝 놀란 듯이 수줍어하는 게 영락없이 18세 꽃 처녀다.

“내가 이 시장에서 장사헌 기 50년 넘었다아이가.”

할머니는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소일삼아, 재미삼아 매일 문을 연다고 한다.

“그러니께 오늘처럼 동무들도 놀러오고 그라제.”

“건강하이소. 울 어머니는 7년 동안 병석에 있다가 지난 해 작고하였는데, 73이었어예.”

금세 아이구나, 우짜노, 탄식이 터져나오며 “고상햇것다”며 팔을 당기며 앉기를 청한다.

옆에는 미장원을 다녀왔는지 퍼머 보자기를 둘러쓴 할머니와 곱게 단장한 할머니가 앉아 있다. 잠시 수더분한 며느리인 양 같이 둘러앉아 국수도 시켜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자리였다.

시장 골목 안 점포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띄엄띄엄 문을 열어둔 곳은 식당이었다.

돌아나오다가 볕 바른 곳에 오종종허니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정겨웠다.

합천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할매, 요서 머합니꺼?”

“택시 기다린다아이가. 기사가 금방 온다캐놓고 아즉도 안 온다.”

네 명의 할머니들은 행여 택시가 오나 다 같이 한쪽 방향으로 목을 빼고 있었다.

“장날도 아인데 말라꼬 나왔는데예.”

“목욕하러 왔다아이가.”

“한 동네 동무들인갑다예.”

“하모. 시집와서 지금꺼정 같이 사는 거제. 오늘처럼 목욕도 같이 나오고. 한 사람이 목욕비 내면 다른 사람은 밥 사고, 또 다른 사람이 택시비 내고…. 머 그렇제.”

이야기가 끝나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사람, 사람들… 장날은 장날이었다

합천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다시 11월 8일 합천시장. 사는 사람, 파는 사람 구분없이 한데 어울려 입구부터 왁자지껄했다. 며칠 전 닫혀있던 점포들 대부분이 문을 연 것 같았다. 역시 장날은 장날이었다.

“점포가 110개 정도는 되는데, 장날에는 그래도 90개 정도는 문을 엽니다.”

박문룡 번영회 사무장. 다른 지역 시장 사무장보다 훨씬 젊다. 함양시장은 70이 훨씬 넘은 어른이 사무장이었으니. 아주 잠시 젊은 사무장이 있어 그래도 시장을 좀 더 고민하고 일을 챙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박 사무장을 따라 시장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신소양 할매선지국밥집은 평소에는 문을 안 열고 장날만 문을 연다고 했다.

“할매요. 그럼 평소엔 머하는 데예?”

“텃밭에 심은 것 가꾸고 헐 일이 좀 많나. 이거 다 내가 농사지어가꼬 쓴다아이가.”

“신소양이 할매 이름이라예?”

“오데. 내 이름은 김분임이고 신소양은 우리 동네 이름이다.”

시장골목식당 유혜순 아지매. 밖에 솥을 걸어두고 그 앞에서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사진찍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사연이 많다”면서 “그래도 절대 안 운다” 해놓고 이런저런 얘기 끝에 눈물이 얼른거린다. 어깨를 다독여주다가 아지매 사연에 같이 울먹거리고 말았다. 돌아나올 때마주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걸음은 무거웠다. 괜히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아지매만 울렸구나.

은성식당 이은자 아지매(42)는 5년째 장사하고 있댔다. “얼마 전 국밥데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참 재미봤다”며 “그런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흐뭇해했다. 은자 아지매는 “일거리 없다하지 말고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합천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부일식육식당은 합천시장 안에서 제법 ‘잘 나가는 고깃집’이다. 주인 이진영 씨는 “10년 째 하고 있는데 시장 경기와는 상관없이 우리 집은 잘 된다”며 “합천토박이에 집안이 많다보니 단골이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씨는 “학교 급식에도 대주고 식당 단골 예닐곱 군데는 꽉 잡고 있으니 걱정없구만”이라고 말했다.

채소전 주민선, 부식가게 박정희 씨… 전대를 맨 아지매들은 더러는 수줍어했고, 더러는 흐벅지게 웃으며 맞이했다. 이것저것 묻다보면 더러 “말라꼬 물어삿노?”라며 팽하니 돌아서는 이도 있다. 모두 ‘자식들한테 흉 된다’는 이유였다. 자식들은 그리 생각지 않는데, 또 그리 염려하는 게 우리 어머니들 마음이었다.

인근 마을에서 직접 지은 농산물을 들고 와 시장 큰 길에 좌판을 벌여놓은 할머니들.

“저그 해놓으께내 겨울에는 비바람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허고, 세사 조타아이가. 옛날에는 맨날 겨울에는 추워 떨고 여름에는 햇볕도 몬 피허고 그래도 먹고 살려니 전디는 것바끼 더 있나.”

시장 천장 아케이드(비가림시설)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시 사람들이야 가끔씩 여행삼아 들리거나 추억거리로 찾아와 “시장 모습이 시골장 같지 않아 어색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생활하는 상인들은 비가림시설 등 현대화 시설이 그저 반갑고 고마운 혜택이었다.

합천시장 골목에는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절집, 철학관도 보였다. ‘월선사’라는 간판을 내건 절집 정해연 보살은 “대양면에 절이 있는데 아무래도 멀리 있으니까”라며 “사람 많은 곳에 절을 하나 더 두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인들에게 따뜻한 차를 나르는 합천사랑교회 이인규 목사도 만났다. “장날마다 나와서 차 한 잔씩 대접한다”며 “이웃과 함께 하고자하는 작은 마음”이라고 했다.

2대째 또는 집안 형제가 모두 시장 상인

유달리, 합천시장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가면 2대째, 아주 가끔은 3대째 장사를 해오는 집이 있긴 하지만 합천시장에서는 2대째 대를 잇는 집도 있지만 무엇보다 형제들, 집안이 모두 장사를 하는 집이 제법 많았다.

건어물전 김영애 아지매. 박 사무장의 어머니였다.

합천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나는 요기서 30년을 장사했지예. 야 아부지는 저게서 장사허고. 요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리 했어. 대부분이 새 시장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한 사람들이지예.”

“옛날부터 여기가 시장이었습니꺼?”

“오데예. 갯끌새미에서도 있었고, 교동리 학교 있는 데도 있었고…
여게가 세 번째라예.”

박 사무장은 아버지가 하던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이 집은 중소기업입니더.”

박 사무장이 가리킨 곳은 진어물전 경일상회였다. 주인 이경수 씨는 처음 20살에 부모님과 같이 시작한 생선 장사가 이제 35년이 됐다. “3형제가 모두 여기서 장사합니더”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합천시장 안 이곳 점포는 장날에만 문을 연다고 했다.

“글타고 장사를 안 허는 게 아닙니더. 장사야 매일 합니더. 합천 장이 3일과 8일이고, 그 외는 인근 가회, 야로, 대병, 삼가 등 인근 장터의 장날을 차례로 돌며 장사를 하지예. 여기 점포 상인들이 많이 그리 합니다. 그래서 문이 닫혀있는 거지예.”

삼천포진어물은 이순자 아지매와 아들 김태곤 씨가 같이 하고 있다. 진어물? 이곳에선 말린 생선은 건어물이라 하고 생물은 진어물이라 했다. 김 씨는 계속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생선을 손질해 주기에 바빴고, 어머니 김 씨는 아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짬짬이 거들어주고 있었다.

이춘태 번영회장도 3형제가 모두 시장 사람들이었다. 형은 형제건강원, 동생은 형제보일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합천시장은 마치 한 집안처럼, 한 형제처럼 이뤄져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