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6

지난여름, 경남 등 한반도 남해안 전역에는 강력한 태풍 두 개가 스쳐갔다. 그때 기자는 비로소, 수십 년 만에, “비가 올 때는 회를 먹지 말라”고 한 뜻을 깨달았다.

그간 어떤 위생 문제이겠거니 막연히 짐작만 해왔는데, 참으로 간단명료했다. 배가 못 뜨니 물고기를 낚지 못할 것 아닌가. 요즘은 양식을 많이 해서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하루 이틀만 수조에 묵혀도 그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해산물이다.

물론 손님 입장에서 이게 언제 잡은 건지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명확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치면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갓 잡은 생선이 최고로 맛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선회의 맛은 곧 신선도가 결정한다고 말이다. 위와 같은 옛 어른들의 충고가 꼭 아니더라도,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펄떡펄떡 살아 있는 갓 잡은 생선을 곧바로 ‘회 친’ 것을 즐겨 먹는, 즉 ‘활어’를 최고로 치는 우리식 생선회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숙성회라는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일식집 등에서 먹을 수 있는 숙성회의 맛을 떠올려보자. 저마다 호불호가 있겠으나, 확실히 감칠맛이 남다르지 않은가? 이런 숙성회가 활어회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숙성은 싱싱한 생선의 살을 포를 떠 소금물 등으로 손질해 수건에 싼 뒤, 0℃ 안팎의 온도에서 일정 시간 저장해 이루어진다.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3~4일 동안 이어진다. 소고기 등 육류 역시 ‘숙성’이 생명이듯, 이렇게 만든 생선회가 더 맛이 좋다는 건 사실 ‘정설’에 가깝다.

숙성회는 감칠맛이 남다르다. 두툼하게 썰어야 더 맛있다.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된 바 있다. ‘생선회 박사’로 잘 알려진 조영제 부경대 교수(식품생명공학부)가 넙치(광어)로 실험한 바에 따르면, 활어에는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이 극히 적었지만 숙성한 지 하루가 지나자 최대가 되었고 이는 3~4일간 유지됐다.

다만 숙성회는 활어 특유의 오도독, 쫄깃한 씹는맛이 저하되고 물컹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생선회를 두툼하게 썲으로써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보통 활어는 얇고 잘게 썰고, 숙성회는 크고 두껍게 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활어를 숙성회처럼 두툼하게 썰면 너무 단단하고 질겨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봄 도다리’의 진짜 이름은 문치가자미

생선회의 맛을 결정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제철’이다. 이는 결국 생선의 지방 함량이 최대가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전어를 예로 들면 가을이 봄보다 네 배나 높다고 한다.

생선의 제철은 대개 ‘산란기 직전’을 의미한다. 산란기 전까지는 많은 영양분을 섭취․축적해 맛이 좋으나 산란 후에는 이 모든 게 빠져나가니 당연히 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제철 생선 하면 우리는 보통 무엇을 떠올릴까. ‘여름 민어’, ‘겨울 방어’ 등도 있지만 역시 ‘가을 전어’ ‘봄 도다리’가 가장 익숙하지 않을까?

그런데 소위 ‘봄 도다리’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충격적인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우리가 횟집 등에서 주로 먹는 ‘봄 도다리’는 실제 도다리가 아닌 ‘문치가자미’인 것이다.(둘 모두 같은 ‘가자미과’에 속한 생선이기는 하다)

깊은 바다 속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진 도다리라는 생선은 따로 있는데, 요즘엔 거의 잡히지 않고 양식 역시 불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이 ‘진짜’ 도다리의 제철이 봄부터 초가을 사이이다.

하지만 ‘봄 도다리’로 명성이 자자한 문치가자미의 제철은 안타깝게도(?) 봄이 아니다. 문치가자미의 산란기는 1~3월로 오히려 봄은 가장 맛이 없을 때이다. 봄철은 그저 많이 잡히는 시기일 뿐, 원래 제철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어민들과 횟집 업주들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고 왠지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잘못된 사실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실제 도다리가 아닌 한, 봄 도다리가 최고로 맛있다고, 봄 하면 ‘도다리쑥국’이라 홍보하는 것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에 다름 아니다.

생선회와 자극적인 양념․야채의 ‘최악’ 조합

마산의 한 횟집에서 먹은 가을 전어. 전어는 가을에 지방 함량이 가장 높다.

생선회는 ‘먹는 방법’도 ‘신선도’, ‘제철’ 못지않게 중요하다. 보통 횟집에 가면 간장․고추냉이(와사비)부터 쌈장, 초고추장, 참기름까지 다양한 소스가 따라 붙는다. 심지어 쌈을 싸 먹으라고 상추․깻잎․마늘․고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와 묵은 김치 등이 함께 올라오기도 한다.

이 역시 각자 호불호가 있을 것이나,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정답과 오답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생선회의 맛은 그 자체로 별로 강하지 않다. 특히 활어는 감칠맛이 강한 일본식 숙성회에 비해 다소 밍밍하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 약간의 감칠맛, 살짝 느껴지는 바다 내음 이게 전부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맛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여기에 한식재료 중 가장 자극적인 양념인 (초)고추장이나 쌈장 등을 ‘퍼붓는다’고 생각해보라. 당연히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지 않겠는가? 한 방송에서 누군가 한 말처럼 “생선회요? 초고추장 맛으로 먹지요”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쌈을 싸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늘, 고추 등의 맵고 알싸한 맛은 생선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초고추장과 양파, 미나리 등을 함께 범벅해 먹는 이른바 ‘막회’ 스타일 역시 적극 권하기 어렵다.

물론 강한 양념과 야채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생선회의 신선도가 떨어져 비린내가 좀 날 땐 ‘차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곧, 마음씨 나쁜 횟집 업주가 종종 ‘장난’을 칠 수 있는 빌미도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차피 양념과 야채 맛으로 먹는 생선회, 굳이 싱싱한 것을 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주로 참치를 먹는 방법인 김과 참기름의 조합 또한 전혀 추천할 게 못 된다. 참치는 방어, 고등어와 함께 지방질이 가장 많은 생선으로 그 자체로 극강의 고소함을 선사한다. 그런데 또 여기에 고소한 참기름과 맛․향이 만만치 않게 진한 김을 더해 먹고 있는 것이다. 유달리 김과 참기름을 좋아한다면 모를까, 이 또한 주객전도에 다름 아니다. 참치값 10만 원 내고 1000원짜리 김과 참기름을 ‘좋다고’ 즐기고 있는 꼴이다.

신선한 생선회의 맛을 ‘별 방해 요소 없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간장과 고추냉이만 살짝 곁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때도 고추냉이를 간장에 풀지 말고, 고추냉이를 조금 덜어 생선회에 얹은 뒤 간장에 찍어 먹는 방법이 좋다. 톡 쏘는 고추냉이는 맛의 포인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항균작용까지 있어 보다 안전하게 생선회를 먹을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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