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하동군] '1급수' 섬진강 재첩…가난했던 시절, 강변으로 장터로

재첩국 한 그릇에는 섬진강이 담겨 있다. 맑지만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다. 소박하다. 이곳 사람들 삶과 닿아있다.

살림이 넉넉지 않던 시절, 섬진강 변 아낙들은 재첩으로 배 곯는 아이들을 달랬다. 공부도 시켰다.

한여름 강물이라 할지라도 몸이 시리지 않을 리 없다. 몇 시간씩 몸 담그고 있어야 했다.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계속 구부린 채다. 그래도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강바닥을 긁고 또 긁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잡았다 싶으면 집으로 돌아왔다. 펄펄 끓는 물에 모두 쏟아붓고 국을 끓였다.

배 채우고 난 나머지는 내일 밥상 몫이 아니다. 양철통에 담고서 강가에서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입에서는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사이소~"를 외쳤다. 사러 나온 이들이 돈을 내밀면 좋으련만, 보리·콩 같은 것과 바꾸려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집 나설 때는 재첩국 담은 양철통을, 다 팔고 돌아갈 때는 돈 대신 받은 것을 한 짐 지고 '낑낑'거려야 했다.

하동 섬진강에서 한 아낙이 재첩을 채취하고 있다. /박민국 기자

벌이가 쏠쏠했던 집안에서는 목돈도 좀 만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깥양반이 노름판·술판에서 허투루 날려 아낙은 허리 펼 날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늘도 해질 무렵 섬진강에는 재첩과 씨름하는 아낙 모습이 보인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물옷'이라 불리는 고무옷을 입고 있다. 허리에는 큰 대야와 연결한 끈을 두르고 있다. 허리를 구부려 손에 든 소쿠리로 바닥을 쓴다. 그리고 물에 반쯤 담가 모래는 빼고 재첩만 담는다. 큰 대야가 다 차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됐다 싶은지 뭍으로 나온다.

재첩은 강에서 나는 조개라 하여 '갱조개'라고도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접하는 모래 많은 곳에 산다. 재첩은 특히 깔끔을 떤다. 맑은 물 아니면 살지 않는다. 바꿔 말해 재첩 많은 곳이 1급수다. 섬진강이 그런 곳이다. 아래쪽 하동포구공원에서 평사리공원 일대까지 재첩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과 비교하면 상류로 많이 밀려왔다. 하구 바닥이 낮아지면서 바다 짠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토목공사용으로 섬진강 모래를 퍼다 나른 탓이다.

채취는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6월이 제철이다. 이때 살이 가장 통통하며 향도 좋다. 이 시기가 되면 섬진강 변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강바닥을 훑는다.

재첩에는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있어 술 좋아하는 이들에게 해장용으로 좋다 한다. 국·회·수제비·전·비빔밥 같은 것으로 밥상에 오른다.

하동 재첩국./박민국 기자

섬진강은 재첩만 내놓는 것은 아니다. 참게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민물에서 나는 게인 참게는 집게발에 털이 수북하다. 껍데기는 너무 억세다. 하지만 키토산이 들어있어 항암효과가 좋다 하니 단단한 껍데기도 감수할 만하겠다. 등딱지 안 내장물은 독특한 향을 낸다. 그 맛에 찾는 이들은 계속 찾는다.

참게는 단풍 드는 가을철, 특히 10월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서리 내릴 무렵 참게는 소 한 마리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려진다.

딱딱한 껍데기에 거부감 느끼는 이들은 '참게가리장'을 찾는다. '가리'는 '가루'라는 의미다. 참게를 곡식·채소와 함께 완전히 빻아 걸쭉하게 끓인 것이다. 못살던 시절 냇가에서 멱감다 나무에 묶은 지렁이를 바위틈에 넣으면 참게 한두 마리 잡을 수 있었다 한다.

하지만 그걸로 누구 입에 붙일 수도 없었다. 쪄봐야 싸움만 날 일이었다. 그래서 잘게 썰고 곡식가루를 넣어 죽처럼 해 먹은 데서 시작되었다 한다. 지금 어느 식당에서는 '참게가리장국'을 특허해 놓았다.

임금님 밥상에 오른 음식이 한두 가지 아닐 테니 큰 의미는 아닐지라도, '밥도둑' 참게장 역시 진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 지역 가을 별미가 참게라면 여름에는 은어다. 회로는 뼈째로 썰어 먹는다. 억세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름도 생소한 '은어밥'이라는 것이 나왔다. 은어는 비늘이 없기에 내장만 도려내고 끓는 잡곡밥에 머리 부분을 꽂아 넣는다. 밥이 완전히 익으면 꼬리부터 살을 발라내서는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보기에는 비릴 것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은어가 수초를 뜯어 먹어 특유의 수박향을 뿜는 덕이다.

계절을 좀 더 거스르면 봄에는 황어·벚굴이다. 황어는 잉엇과 물고기로 민물·바닷물을 오가며 번식하는 어종이다. 예전에는 흔하디 흔했지만 개발·오염으로 그 수가 줄었다. 이젠 이름 자체도 생소하다. 다행히 4월 화개천에서는 떼 지어 나타나는 황어를 볼 수 있다 한다.

벚굴은 그 예전에 '벙굴'로 불렸다. '벚꽃 필 때 가장 맛이 좋다' 혹은 '큰 알맹이가 활짝 핀 벚꽃을 닮았다' 하여 이젠 '벚굴'로 익숙해 있다. 노량바닷물과 섬진강물이 6대4 비율로 섞여 있는 물 아래 5~20m 지점이 벚굴 자리다. 바다 굴과 비교해 그 크기가 5~10배 가까이 된다. 양식이 되지 않아 100% 자연산이다. '벚굴마을'인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은 봄 되면 발걸음이 쏟아진다.

대봉감./박민국 기자

하동 특산물은 대봉감이다. 이 고장이 대봉감 시배지다. 1922년 악양면 축지리에서 재배한 것이 시초다. '과실의 왕은 감이요, 감의 왕은 대봉감이다'는 옛 말도 있다. 크기가 일반 감 2~3배다. 그냥 먹으면 아주 떫다. 홍시나 깎은 후 말려 곶감으로 이용된다. 특히 홍시를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처럼 녹여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봉감 앞에는 '악양'이 따라붙는다. 악양면에서 나는 대봉감이 특별난 이유는 지명에 답이 있다. 악양(岳陽)은 '높은 산에 볕이 잘 든다'로 풀이할 수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