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중앙시장 터줏대감

“파장때 품귀현상으로 가격 치솟기도” 한일상회 이성호(시장 상인회 회장) 아재

함양중앙시장을 취재하면서 제일 먼저 만난 이가 이성호 회장이다.
시장입구에 있는 한일상회가 이 회장의 가게였다.

“함양에는 최상품 약초들이 마이 나지예. 시장 둘러보면 약초만 특화해서 파는 약초상회도 있고 시장 주위로 건재상회니, 탕제원이니가 제법 많습니더. 또 장날 되면 할매나 아지매들이 갖고 나오는 게 많고예. 직접 키운 것들이나 직접 캔 것들이지예. 우리 집도 이것저것 다 취급하지만 아무래도 약초품목이 제법 많심니더. 어떤 기 필요하다고 구해만 달라모는 다 구해 줄 수 있지예. 백하수오, 적하수오, 독활 머 이런 약초가 많습니더. 마천 옻이나 창출 등 어떤 약재든 믿고 다 구할 수 있는 데가 여깁니더. 청정지역이라 좋은 산나물이 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것지예.

함양 시장번영회장 (왼쪽)

함양중앙시장 경기가 요즘은 어떻냐고 묻자 이 회장은 이래저래 근심이 많은 듯했다.

“우리 시장이 예전보다 규모가 작고 실제 매출이 줄었습니더. 주변 마트는 대부분 공산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으니까 마트때문은 아니지예. 지금으론 인구가 늘어나야 시장이 잘 될 거라 봅니더. 행정에서도 매달 1번 씩 시장 가는 날을 실시하고, 상품권도 지속적으로 마이 사 갑니더.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상인들끼리 단결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습니더.”

시골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는데, 이곳 시장은 어떤가도 물어보았다.

“요맘때가 좋습니더. 봄도 좋고. 관광객들 시장 이용은 실제로 산채나물, 송이, 곶감 등이 날 때가 되면 눈에 띄게 다릅니더. 버스기사들이 관광가이드 노릇을 톡톡히 하는데, 군에서 버스마다 기사한테 5만원 씩 지원하고 있습니더. 함양 관광하고 난 뒤 다른 데 가서 물건 사는 것보다 시장에 와서 구경도 하고 살 게 있으면 살 수 있게 말입니더. 그라모는 당연히 매출이 증가합니더 지난해는 마늘을 엄청 팔았습니다. 함양은 토질이 좋아 마늘도 아주 야물고 좋거든요.”

이 회장은 도로가 나고 교통이 발달하기 전이 지금보다 시장이 더 잘 되었다고 했다.

“교통이 나쁘니까 다들 물건을 많이 못 가져왔습니더. 찾는 사람은 많은데 조금만 가져오니 파장 무렵에는 원래 '떨이'라 해서 값이 내려가는데 오히려 물건이 귀해 가격이 껑충껑충 올라갔습니더. 생각하면 그때가 더 좋았던 같기도….”

“대나무야 만지기만 허면 머시든 만들제”  대죽상회 이경생 아재·김군자 아지매

이경생 아재와 김군자 아지매

“50년 전에는 2~3명 직공들을 데리고 할 정도로 많이 만들고 장사가 잘 되었제. 60, 70년대 플라스틱 나오고부터는 잘 안 되더라. 요새 복고풍으로 돌아가면서 오리지널, 전통그릇 등을 선호하니 조금 많이 찾데.”

시장 한 가운데로 난 길 중간 쯤 대죽상회 이경생(75) 아재. 움직이기도 힘든 손으로 대나무만 있으면 바지개든, 죽부인이든 뭐든 만들어 내는 분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 때는 주문량도 많고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세월 좋았다’고 한다.

이경생 아재는 이곳 시장에서만 50년 동안 대나무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대나무 가지고 논 게 60년 정도 됐제. 16살 때부터였으니께. 손이 완전 불구지만 지금도 하루 8~10시간은 맹글고 있제. 함양읍 아파트 안에 작업실을 따로 맹글어놨어. 도리깨, 바지개 등 철 따라 다른디 가을에 팔 물건이라믄 봄에 맹글고 물량은 가늠 몬하제. 요새는 가을 물건 맹글고 있어. 대나무로 하는 건 다 흉은 내니께. 주문도 들어오고 소매하는 분들도찾아오제. 고맙고로 소문이 마이 나가지고 저번에 어떤 신문에서는 내보고 ‘마술의 손’이라카더라.”

이경생 아재는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작업을 시작한다. 주로 한다. 쉬는 날이 없지만 중앙시장 장날이면 주로 오전 시간은 쉰다. 별로 노는 날이 없다. 지금은 쉬이 눈에 띄지 않는 바지개, 죽부인, 대베개 등 아재 손에서 ‘얼라들 재작하듯이’ 만들어낸다. 바지개는 발채 사투리로써 짐을 싣기 위하여 지게에 얹는 소쿠리를 말한다.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넓적하게 조개 모양으로 결어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끈으로 두 개의 고리를 달아서 얹을 때 지겟가지에 끼운다.

“산청 생초가 고향인데, 아무래도 면소재지보다는 읍이 더 크니께 장사가 더 나을 곳 같아 여게로 왔제. 우리가 명이 길어 이거 맹그는 게 유지되고 있지만 인자 없을 질 거다. 아무라도 자기 직업 좋아하는 사람 없다아이가. 우리 자식들 다 저그 좋은 직장 다니고 있고, 자부심으로 천직으로 알고 살았지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제.”

아재가 약간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자, 옆에 곱게 앉은 부인 김군자(68) 아지매가 조분조분 다시 알려주며 중간 역할을 했다. 목소리 높이는 법 없이 두 분은 그렇게 장날이면 집과 시장을 나란히 오가는가 보았다.

함양중앙시장 대죽상회에서 이경생 아재가 만든 복조리 한 쌍을 사서 현관 문 앞에 걸어두면 ‘집 나갔던 복덩이’도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

“서울 것보다 예쁘고 싸게 하제” 금강상회 강분숙 아지매

금강상회 강분숙 아지매

“우리 집은 인자 ‘중앙시장 상담실’이제. 처음엔 여기서 삯바느질 좀 하다가 포목집을 내고 참 오래도 했제.”

가게 안은 동네 아지매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사방이 알록달록 한복과 비단 천이다. 그 가운데 강분숙(70) 아지매가 일어선다. 시장 안에서 42년을 장사했다. 나이로 보면 ‘할매’여야 하는데 큰언니 같다.

“결혼해서 아저씨는 월남가고 나는 서울 청량리서 4년 동안 한복 삯바느질을 했제.”

“다시 함양 와서는 비단장사 시작했는데 첫애 업고 다니면서 젖멕이며 물건하러 다녔제.”

금강상회는 중앙시장에서 말마따나 ‘잘 나가는 집’이었다. 쭈빗쭈빗 두 아지매가 들어선다. 서울에 치수를 재어 보내야하는데, 치수 좀 재어달라는 부탁을 건넨다.

“서울 자는 줄자제. 우리는 집에서 다듬은 대자로 재는데, 달라서 안되구만. 그라지말고 우리 집에서 혀. 요게 와서 색깔 맞차바라. 옛날에 같이 하던 사람이 바느질해주는데, 바느질이 참 예뻐. 소매를 팡팡한 게 싫으면 퐁당하게 해달라고 말하면 되제.”

분숙 아지매는 금세 아지매들을 들어앉힌다. 엉거주춤 앉은 아지매들은 처녀쪽인데, 꽃분홍 저고리였음 좋겠다며 값이 얼마인지 물어본다.

“한복맞춤은 삯까지 합해서 25만원, 30만원이제. 요기 분홍?”
흥정이 이뤄지고 있는 사이에도 아지매 서너 명이 금강상회 문턱을 넘어 분숙 아지매를 찾았다.

“차례 상 조기는 우리 집 오이소”  백전상회 박성도 아재

백전상회 박성도 아재

백전상회는 중앙시장에서 말린 큰 문어부터 명태, 김 등 수산물을 살 수 있는 큰 건어물전이다. 이곳에서 전을 벌인 지가 40년 정도 됐다. 함양장에서 차례 상에 올릴 조기는 백전상회서 사면 된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백전이 고향이라 백전상회여. 땅이 있으면 농사할 건데 땅도 없고. 시장에서 어물장사가 더 힘들제.”

박성도 아재가 시장에 자리를 잡을 때는 시장이 함석 지붕으로 돼 있었다.

“그때 시장을 드나드는데 사람이 많이 끓더라. 그래서 옳다 싶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아니더라. 밑천도 있어야 하고. 그때 돈으로 3만원으로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물건이 없어 살 게 없다더라. 주변 사람들도 팔아줄래야 팔아줄 수가 없다했제. 돈이 없으니께는 물건이 마이 없는 기라.”

박성도 아재는 그래도 싸게 사서 손님한테 잘 해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해 이만큼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아재는 ‘생선 말리는 건 함양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생선이라도 말리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어야 한다고 했다. 깨끗이 말려놓은 걸 싸게 사와서 주변 산골 사람들이 싸게 먹을 수 있도록 잘 파는 게 자기 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포구가 한두 군데가 아니제. 옛날엔 주로 삼천포 앞바다에서 마이 들어왔는데, 요새는 주로 부산포구에서 많이 들어오제. 그때는 국산이 많았고, 요새는 수입산이 많아. 생선이라는 게 생물이라 많이 날 때가 있고 적게 날 때도 있어. 마트에 밀린다카지만 대목 장은 엇비슷하제.”

시장 길목에서 만난 사람-노점 상인

“우리겉이 젊은 사람은 마이 팔아야제” 과일파는 김정숙(55) 아지매

과일장수 김정숙 아지매

“시장 안에 우리 점포가 있는데, 거기서는 장사가 안돼 이쪽에 나앉았어예. 여게가 그래도 장사는 더 잘 되제예.”

함양중앙시장 입구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김정숙(55) 아지매의 첫 마디다. 함양 인당이 고향인 김정숙 아지매는 이곳에서 장사한 세월이 32년이란다.

“원래부터 장사하는 집으로 시집왔어예. 시장 안에 70세 이상 어른들은 자식 다 키워놓고 놀이삼아 문을 열지만, 우리겉이 아즉 젊은 장사치들은 자식걱정도 하고 열심히 해야지예.”

시장 안에 버젓한 점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노점에 나와 있다고 했다.

“생물이다보니 매일 소비를 해야는데 그날 못 팔면 되려 적자라예.”
이야기 중에도 틈틈이 손님들이 이런저런 과일을 찾는다.

“요게서 하는 것도 군에서 단속이 나오면 빨리 치워야 되제예. 교통이 불편하다꼬 그러는데,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가모는 군에서도 할 수 없으니 나오는 거제예.”

배달주문이 들어오자 김정숙 아지매는 물량을 확인하기 위해 시장 안에 있는 점포에도 가봐야 한다며 급히 자리를 뜬다.

“넘 안 주고 가꼬와 파니 돈 되데예” 배추 모종 파는 배정숙(56) 아지매

배추모종 배정숙 아지매

“이름이 배정숙이라예.”

“어, 두 분이 똑 같네예.”

과일 파는 정숙 아지매와 노점에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는 이가 배추 모종을 가득 내놓은 배정숙 아지매다. 두 사람은 이름도 같았다. 셋이서 웃고 말았다. 옆 자리 과일 장수 김정숙 아지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러 온 손님들에게 값을 말하고 비닐봉지에 싸주는 일을 도맡아 했다. 평소 그렇게 하는 지 바구니 담긴 과일값을 훤히 알고 있었다.

“금이 안 좋아 맨날 빚내어가지고 농사짓다보니 더 이상 안되것다 싶어 나왔었지예. 처음에 수박농사 지은 걸 경운기에 실어 시장에 가져왔더니 경운기 항거슥 되는 걸 30000원 준다카더라예. 한 덩어리 100원인거라예. 그래가꼬 우리 집 양반이랑 둘이 팔았다 아임미꺼. 오전에만 팔았는데도 90000원이 되데예. 돌아갈 땐 두 덩어리가 남아서 옆에 할매들 줬지예. 그랬더니 다음에 나올 때는 알밤도 주고, 고매도 주고 서로 맛난 것 있으모는 나눠먹게 되데예.”

배정숙 아지매는 그렇게 시작한 노점장사가 15년째라 했다. 지금도 시장에서 하림으로 가는 한들에서 수박, 토마토, 오이 등 하우스농사를 하고 있다 했다.

“인자는 몽창시리 심는 기 아이고, 내가 팔 만큼만 농사짓고 고걸 가져나와 팔지예.”

배정숙 아지매 앞에 놓인 배추 모종이 시장 길목을 연두빛으로 꽉 채우고 있었다.

시장 길목에서 만난 사람-주부

“송이, 노루궁뎅이 귀헌 걸 살 수 있어” 함양읍 노영남(62) 아지매

주부 노영남 아지매

“함양시장 오면 물건 좋은 게 많아예. 주변에 직접 농사지은 걸 가지고 오니까 채소나 이런 게 참 싱싱하지예. 또 산이 좋아 산에서 나는 약초나 귀한 것들이 살 수 있는 데가 이곳이라예.”

함양 취재 첫날 우연히 만난 노영남 아지매의 함양중앙시장 자랑이다. 노영남 아지매를 만난 건 허기진 배를 면하기 위해 들른 ‘소문난 집’ 병곡식당이었다. 저녁시간이라 식당은 제법 사람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몇 안 남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앉기에는 미안한 상황이었다. 그때 혼자 온 아주머니가 자리를 찾고 있는데, 주인이 합석을 권하는 것이었다. 흔쾌히 합석했다. 그때 마주한 이가 노영남 아지매였다.

함양읍 도산리에 사는데 장도 보고 저녁도 먹을 겸 들렸다고 했다.

“양파, 마늘도 좋고 사과는 수동 도북에서 나는 사과가 참 맛있고예. 간단하게 사거나 공산품은 마트를 이용해도 과일이나 야채, 생선 등 생물은 아무래도 우리 시장이 싸고 좋지예.”

식사하는데 이것저것 귀찮게 묻는데도 노영남 아지매는 수줍은 듯이 살포시 웃으면서 조분조분 말씀을 아끼지 않았다.

“10월쯤이면 송이버섯이 시장에도 마이 나오지예. 버섯 중에 노루궁뎅이라는 것도 있는데, 여기서 살 수 있지예. 인근 지역에서 우리 함양시장만큼 온갖 걸 볼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을거라예.”

식사를 먼저 마친 노영남 아지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나 싶더니 잠시 후 병곡식당 주인장이 들어와서는 “아지매가 국밥값을 다 냈어예. 처음봤는데, 참말 마음이 이렇심미더”라는 말을 건넸다. 당황스러웠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다음 장날에 올 때는 내가 밥 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병곡식당 여주인이 “담번에는 내가 다 쏜다”며 웃었다. 2차 취재를 하러 간 지난 9월 7일 장날.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곡식당서 꼭 다시 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함양중앙시장에 ‘국밥 한 그릇의 빚’이 있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 큰 언니 같은 노영남 아지매와 작은 언니 같은 식당주인 아지매에게 말이다. 처음 온 사람도 정과 인심으로 품어주고 끌어당기는 곳이 함양중앙시장이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