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이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함안장 쇠고기 국밥

국도 79호선 함안~창원 진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함안면 북촌리에서 ‘한우국밥촌’을 만날 수 있다. ‘촌’이라는 말 느낌과 달리 국밥집은 세 개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명세는 만만찮다.

이곳은 장날과 궁합 맞는 쇠고기국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1960~1970년대 함안 오일장이 열리면 이곳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진동에서 넘어온 이들로 떠들썩했다. 봇짐 지고 온 상인들이 운수 좋아 돈을 꽤 만진, 사러온 사람들이 헐값에 물건을 샀다 싶은 날은 허기를 좀 넉넉히 달랠 수 있었다.

이들이 즐겨 찾은 것이 쇠고기국밥이다. 배고픈 시절 장터에서 먹는 그 맛이 오죽 좋았을까. 함안오일장은 곧 고깃국 먹는 날로 손꼽아 기다린 것은 물론일 테다. 노상 가마솥에서 쇠고깃국 펄펄 끓이던 40여 년 전 풍경 그대로를 지금 기대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국밥집 세 개가 줄줄이 있는 허름한 건물은 여전히 옛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곳인 ‘대구식당’은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밥상을 펼쳐놓아 그 분위기를 더한다.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 대구에서 시집온 이가 차린 식당이다. 함안에는 큰 우시장이 있어 약 70년 전부터 가야읍에 국밥집이 들어섰다. 그 집들이 수십년 세월을 이어갔지만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대구식당’이 함안 내 장터국밥 명맥을 잇는 셈이다.

   

쇠고기국밥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으면 별도 메뉴인 불고기를 곁들이면 돼 허전할 걱정은 없겠다.

이 지역 북쪽에는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곳이 있다. 민물고기를 떠올려봄 직한데, 사연 담긴 음식점이 하나 있다. 남강·함안천이 만나는 곳에는 ‘악양루’가 자리하고 있다. 절벽에 자리한 이 정자로 향하려면 한 식당 앞을 지나야 한다. 그 이름 또한 ‘악양루가든’이다. 어탕국수·참게탕·메기매운탕, 여름에는 웅어회를 별미로 내놓고 있다.

지금이야 악양교가 있긴 하지만, 이전에는 배를 통해서만 함안천을 건널 수 있었다. 이곳 나루터에서 학교 오가는 아이들을 뱃삯 없이 태워준 이가 있었다 한다. 지금 악양루가든을 운영하는 이 부친이다. 또 엮인 이야기가 있다. 식당 인근에는 ‘처녀 뱃사공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황정자 씨가 노래한 ‘처녀 뱃사공’은 한때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에 스치면~’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에는 코끝 찡한 사연이 담겨있다. 노랫말은 가수 윤항기·윤복희 아버지이기도 한 윤부길 씨가 썼다. 유랑극단 단장이던 윤 씨는 1953년 9월,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가는 도중 대산면 악양에 머물렀다 한다. 전쟁 와중 소식 끊긴 오라버니 기다리는 뱃사공 여인 사연을 듣고는 노랫말을 만들었다 한다. 지금 악양루가든을 운영하는 이가 ‘처녀 뱃사공’ 실제 모델 조카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랫말 실제 주인공을 놓고 때때로 말들이 있기는 했다. 또한, 가사에서는 ‘낙동강’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남강·함안천이기도 하다. 이랬든 저랬든 2000년 10월 세워진 노래비는 지금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현장에서 ‘처녀 뱃사공’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한 시설이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함안에는 동굴 바람 쐬며 먹을거리 즐길 수 있는 곳이 몇 있다. 칠원면 장암리에는 순금을 캤던 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50여 년간 이어가다 물길이 터지면서 더는 채취하지 못했다 한다. 지금 이곳은 ‘금동굴’이라는 이름을 달고 백숙·오리고기 같은 것을 파는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굴은 한여름 등골 오싹한 바람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이를 ‘금풍’이라 부른다. 음식으로 땀 흘리고 나서 동굴에서 몸 식히려는 이들 발길이 여름에 더해진다. 군북면 사촌리에도 한때 구리 캐던 갱도가 있다. 폐광 이후 ‘군북얼음골’이라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여름에만 장사한다.

함안 특산물을 보자면 파수곶감·대산수박을 빼놓을 수 없다. 함안 곶감은 한해 18만 상자가량 생산된다. 함안면·가야읍·군북면·여항면이 주 생산지다. 이 가운데 최고로 치는 것이 함안면 파수리 손을 거친 것이다. ‘파수곶감’은 조선 중기 때부터 임금님 상에 올려졌다. 평민은 입에 댈 수도 없는 고급 음식이었다. 씨가 한두 개밖에 없으며, 아주 부드러워서 입에 넣은 후 목구멍으로 향할 때는 이미 녹아 있을 정도다. 이러한 특별함은 여항산이 이 지역 감나무를 품은 데서 나온다.

‘파수곶감’에는 ‘효자 전설’이 서려 있다. 임씨 성을 가진 이가 아버지 병을 씻기기 위해 약초를 구하러 나섰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다 한다. 정신 차려 눈 떠보니 백발노인이 ‘저기 보이는 붉은 열매를 깎아 말린 후 따뜻한 물에 녹여라’고 했다 한다. 들은대로 옮겼더니 병이 금세 사라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곶감 시초라 전해진다.

함안군이 250년 된 감나무에서 나온 곶감(스물한 개짜리)을 경매에 부친 적 있는데, 62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파수곶감’은 수정과로도 더 없이 좋다. 겨울을 대표하는 것이 곶감이라면 여름을 대표하는 것은 수박이다. 대산면 수박은 200년 넘는 재배역사를 안고 있다. 남강 주변 땅과 궁합이 맞아 그 맛이 특별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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