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 취재를 통해 각 지역마다 이야기 만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곳 출신 유명인이 있다거나, 고증된 유물이 많다면 사정이 좀 낫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애를 먹는 듯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지자체 관광 상품 개발이 '스토리 텔링' 쪽으로 쏠릴 때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이야기라는 게 꼭 풍부한 재료가 있어야만 가능한가 싶기는 합니다. 요즘 사극과 현대극을 퓨전한 드라마들을 보면 그런 시도가 많은데요. 역사적 사실, 또는 한 장면만 콕 찍어서 아주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야기 재료가 부족하다고 손 놓는 것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구형왕릉 입구입니다. /박민국 기자

산청에서 '전구형왕릉'을 보고 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구형왕릉'은 가락국 10대 왕인 구형왕을 묻은 무덤이라는 특이한 석조물입니다.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지요. 구형왕릉 앞에 붙은 '전'은 역사적으로 고증된 게 없어서 그렇게 전해진다는 뜻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구조물은 동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피라밋 모양으로 돌을 쌓았습니다. 7단으로 구성됐고 높이는 7m 정도 됩니다. 4번째 단에는 가로·세로 40cm 정도 입구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 용도는 알 수 없습니다. 구형왕릉 주변에는 담으로 둘러놓았습니다.

앞에서 본 구형왕릉입니다. 행인은 남석형 기자입니다. /박민국 기자

제가 <반지의 제왕>이나 <나디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영화를 제법 좋아합니다. 구형왕릉을 보자마자 또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어느 성이나 마을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비록 고증된 게 없어 '전'이라는 말을 붙이고, 특별한 의미 부여에 한계가 있겠지만, 그러면 좀 어떻습니까. 어차피 가야사 역시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단서는 매우 적습니다. 고증할 수 있는 단서가 적다는 것은 상상이 끼어들 틈이 많다는 게 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유능한 작가들이 가야사와 구형왕릉을 배경으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구형왕릉, 멋지지 않습니까?

담 너머로 본 구형왕릉입니다. /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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