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읍내시장 명물 ‘팥국시’ 주인 유순희(80)·유숙자(72) 할머니

하동읍내시장 공용화장실 근처 ‘팥국시집’이 있다. 20년도 더 된 집이다. 하지만 간판도 없다. 하동군의 시장 현대화 방향에 맞추어 시장 안 점포들이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간판으로 바뀌었지만 이 집은 여전히 ‘간판도 없는 집’이다. 더러는 ‘별미죽집’이라 부른다.

“간판이 먼 필요야? 다 알고 찾아오는데…. 더 마이 찾아와도 큰 일 나고?”

주인 유순희(80) 할머니의 첫 마디다.

팥칼국수 유순희(80) 어른

하동읍내시장 팥칼국수집은 유명하다. 하동 사람들보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관광객, 인터넷에서 더 유명하다. 관광객이나 블로거들이 올린 하동 할매팥국시집은 마치 구전으로 내려온 전설같다.

순희 할머니는 60에 국시집을 시작했다. 동생네 점포인 이 가게에 세든 사람이 나가고 난 뒤 새 세입자가 나서질 않자, 할머니는 동생 유숙자(72) 할머니와 둘이서 국시집을 시작했단다. 처음부터 큰 벌이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밀려들고 장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어 사람들은 가게 밖에 쪼그리고 앉아 먹어야 했다. 쉬엄쉬엄하던 일이 20년이나 되었다며 순희 할머니 목소리가 커진다.

“팥국시가 제일로 하는 기고, 겨울엔 팥죽 하고 여름엔 우무, 콩국수를 하제.”

숙자 할머니는 팥은 수확하는 철이 되면 미리 그 다음 해 것을 얘기해놓는다고 했다. 콩은 보관이 어렵지 않아 수시로 살 수도 있지만, 팥은 냉동보관을 해야 한다고.

“한 달에 팥을 3가마니 쓰는데, 일 년이면 40가마는 되것제. 우리가 내년에 얼마 필요하다고 미곡상회에 얘기해두면 지들이 다 알아서 냉동보관 해주는 기라. 우리 집에 쓰는 건 다 국산이여.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얘기하는 거제.”

가게 밖에는 큰 덩어리 통째로, 또는 커다란 모두부모양 썰어놓은 우무가 큰 고무대야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새댁이 순희 할머니를 부른다. 집에서 먹게 우무를 갈아달라고 한다.

“우뭇가사리를 4시간 이상 고아서 만든 거제. 팥도 콩도 전부 삶아 끓여야 하는 거니, 이 더위에 보통 일이 아녀. 덥다고 그냥 허투루 할 일도 아이고….”

팥은 깨끗이 갈아서 팥물을 끓인 후 직접 만든 밀가루 반죽을 할머니 기분대로 납작납작 썰어서 큰 양푼이에 펄펄 끓여내는 것이다. 할머니 기분만큼 한 국자 덤으로 퍼서 그릇이 넘칠 정도로 담는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것을 맨손으로 들고 간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앗, 뜨거’ 소리가 절로 날 지경이다.

굵은 국수 가락에는 고운 팥물이 듬뿍 배여 쫄깃한 면발을 씹고 있으면 뒷맛이 고소한 것이 은근히 달착지근하기도 하다.

팥국시와콩국수

“아이고, 힘들어서 인자 못하것다.”

“읍내시장에서 제일로 잘 나가는 집을 안 하면 우짭니꺼?”

“우리가 잘 되니까 젊은 아지매가 저기 앞에서 국시집을 낸 적이 있었제. 근데 몇 해 못하고 관 두더라고.”

“할매보다 맛이 없었것제예. 근데 이걸 할매가 안 하면 누가 하고로예?”

“인자 내 동생이 해야제.”

팥칼국수집 자매 유순희(80), 유숙자(72) 할머니

몸도 재고 목소리도 큰 순희 할머니와는 달리 동생 숙자 할머니는 조용조용 자기 할 일만 했다. 그러다가 언니인 순희 할머니의 이야기에 더러 슬며시 웃었다. 그뿐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을 것 같았다.

순희 할머니는 처음엔 취재에 잘 응하지 않았다. 뭔 소용이 있냐며 다 싫다고 했다. 그래도 옆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물으며 할머니 얘기를 듣고 있으니 금방 마음을 내어주었다. ‘이 더위에 니가 고생이다’는 인정과 할머니 여린 마음 탓이었다. 급기야 일어서서 나올 때 순희 할머니는 내가 먹은 팥칼국시와 우무 한 그릇 값을 한사코 받지 않았다.

하동읍내시장에는 정 많은 할매자매가 하는 팥칼국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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