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자가 나서서 두려움 해소”

두어 달 전 새생명나눔실천본부 발대식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창원시청 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300석 의자가 모자라 허둥지둥 간이 의자를 더 설치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장기기증 운동 행사니까 그저 몇 십 명 오겠거니 싶었는데 오판이었다. 도대체 이 단체를 이끄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릴까. 새생명나눔실천본부 허상윤 본부장을 만나서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허상윤 본부장(57)은 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에서 ‘산박골 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장기기증 운동 단체장이 산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뭔가 이색적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물어봤다.
“저는 낙농업을 할 팔자였습니다. 어릴 때 4H 활동을 하면서 농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도에서 추천해서 낙농기능사 교육을 받고 내려와 축산업을 했죠. 그런데 잘 안 되려나 81년에 돼지 파동이 왔을 때 망해 버렸어요. 또 젖소도 구입해서 키웠는데, 아무래도 처가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해서 도시에 나왔지요.”

   
  허상윤 새생명나눔실천본부장 / 임종금 기자    

4H활동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새마을 운동 이전에 있었던 농촌 진흥 운동·농촌 지도자 양성 운동이었다. 시골에 가면 아직도 ‘지덕노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는 곳이 있다. 어쨌든 허 본부장은 엘리트 농업인이 원래 갈 길이었다. 도시에 나온 그. 이번에는 성공했을까?

절망 끝에서 선택한 신장 기증

“건축 쪽에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 또 목장을 시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빚 갚는다고 참치선도 타게 됐죠. 그러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이는 30대 후반을 지나고 있었죠. 그래서 여기 산장을 세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에 왔지만, 그 후엔 더 기막힌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제 아이가 사고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방황을 했죠. 가정이 무너졌고. 장사를 하다가 또 접고. 남의 목장 생활도 하고.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나도 뭔가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돼야겠다. 그래서 1998년에 신장 기증을 하게 됐습니다.”

절망 끝에서 선택한 신장 기증.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장 기증은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그건 저는 모릅니다. 순수 기증자는 모르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하는 겁니다.”
그러면 신장기증자로 있다가 장기이식 운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뭘까?

“당시 신부전증 환자와 신장기증자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을 토대로 새생명나눔회라고 장기기증 운동단체가 생겼습니다. 저도 당시 새생명나눔회 활동을 보면서 저 혼자만 장기기증 하고 끝날 게 아니라, 장기기증 운동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동참을 했습니다.”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운명할 때까지 신부전증으로 고생했다. 대통령 사저 한쪽에는 투석실이 있었다. 최고권력자도 장기기증을 받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문득 신부전 환자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신부전증에 걸리면 핏속에 독소물질들을 거르지 못합니다. 투석기는 모든 피를 걸러서 넣어주는 기계입니다. 한 번 하는 데 5시간 걸리고, 이틀 만에 한 번씩 해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심하죠. 그런데도 투석기로는 독소물질을 제거 못 하기 때문에 몸에 독소가 쌓일까 봐 신경을 엄청나게 써야 합니다. 음식 가려 먹는 거는 기본이고,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못 먹습니다. 돈도 문제입니다. 신부전증 환자 생활비와 각종 약값만 해도 매년 4800만 원씩 소요됩니다. 물론 장애 2등급을 인정해주니 투석비는 건보재정에서 나갑니다. 그나마 지원이 늘어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신부전증 환자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돈보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죠”

   
  새생명나눔실천본부   

들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부전증 환자에게 지원을 늘려야 할 것 아닌가?

“아뇨. 장기기증을 활성화 시켜야죠. 많은 지자체가 장기기증 활성화 조례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시행하지는 못합니다. 부산시는 좀 낫습니다. 기증한 사람들은 공공주차장과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부가혜택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기증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그 분들을 칭찬해 주는 사회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기증자들이 늘어나면 국가예산과 건보재정 부담이 줄어들겠죠. 돈보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죠.”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새생명나눔회는 지역에서 나름대로 활동도 많이 한 것 같았다. 어지간한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본 단체이름이다. 그런데 허 본부장은 새생명나눔실천본부장이다. 둘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새생명나눔회는 회비도 안 받다 보니 활성화가 안 됐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2006년에 재창립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태선 목사가 경남지회 회장을 하고, 전덕수 씨가 총무, 제가 회계를 맡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새생명나눔회로 지역 사무실을 두는 곳은 여기 경남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죠. 경남에서 열심히 하니까 경남지회장인 강태선 목사가 전국회장을 하게 됐고, 총무도 경남지회 사람이 맡았습니다. 사실상 전국 새생명나눔회를 경남지회 사람들이 운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새생명나눔회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새생명나눔회는 장기기증 운동을 총괄하는 ‘사랑의 장기기증 본부’ 산하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생명나눔회는 사랑의 장기기증 본부를 돕는 역할로 묶어 놨습니다. 뭔가 독자적으로 할 수 없죠. 특히 새생명나눔회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경제적으로 너무 열악하니까. 사랑의 장기기증 본부만 쳐다보고 있는 거죠. 안 되겠다 싶어서 회칙개정을 하고 독자 법인(새생명나눔실천본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 용어로 풀면 ‘발전적 해소, 재 창립’을 한 셈이다. 새생명나눔실천본부의 기조를 물어봤다.

“운동을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장기기증을 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경험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겁니다. 또한, 시민단체니까 조직적으로도 신뢰성을 높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생계는 따로 있는 겁니다. 이 단체를 운영하면서 봉급을 받는다, 돈을 번다, 이런 건 없애야죠. 특히 본부장과 임원진 등은 무조건 영원히 무보수 명예직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은 기본이고, 종교적으로도 철저히 색깔을 버리는 겁니다. 장기기증을 많이 하고 새생명나눔회 시절부터 함께 했던 개신교계에서는 섭섭하겠지만 그게 제 원칙입니다.”

첫걸음은 장기 기증 희망서 작성

발대식

그는 나름의 원칙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얻은 지론인 듯싶었다. 적어도 그가 있는 한, 새생명나눔실천본부는 훨씬 투명하고 실천하는 조직이 될 것 같았다. 그럼 현재 조직은 어떻게 꾸려지고 있을까? 정수영 사무국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 단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현재 장기기증 희망등록 회원이 170명, 후원자가 340명입니다. 물론 중복이 있을 것입니다. 모은 회비를 장기기증 수술비 가운데 건당 800만 원을 지원하고, 투석하고 있는 신부전증 환자들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법인이 됐기 때문에 후원하기도 쉽습니다.”

인터뷰 내내 같이 자리를 한 정수영 사무국장도 사연이 있었다. 정 사무국장의 부인도 신부전증 환자였다. 가족·친지 중에도 맞는 사람이 없었다.

“막막했죠. 한데 기막힌 시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남에게 신장을 기증하면, 신장 가운데 처에게 맞는 신장을 최우선으로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2009년에 신장 기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처도 맞는 신장을 찾아서 수술을 했습니다. 제 처가 중환자실에서 물을 실컷 원 없이 마시는 것을 보고 감동해서 이 일을 돕게 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처도 옆에서 이렇게 돕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시작 전에 냉커피를 가져다주신 분이었다. 이렇게 새생명나눔실천본부는 직접 장기기증을 하고 받은 사람들의 경험과 감동적인 사연이 모여 이뤄진 곳이다. 허 본부장은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장기기증 희망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겁을 내지 마십시오.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장기기증을 해본 저희가 정확한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우리 본부가 있습니다. 이젠 장기이식 수술도 발달했고, 혈액형이 틀려도 기증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시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1899-1799로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허 본부장이 빠뜨린, 이 단체의 홈페이지 주소는 newls.or.kr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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