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배송 늦어도 소비자 신뢰는 굳건…직접 기계 개발하기도

FTA·유가 상승 등으로 농촌이 힘겹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농업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 보급이 미흡하고 관행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다. 자금력이 부족하거나 한평생 지어온 작물을 선뜻 변경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도전 정신과 끈질긴 노력, 아이디어로 변화와 혁신을 꾀하는 농민들이 있다. 경쟁력 있는 강한 농촌, 강한 농업을 만드는 초석이 되는 강한 농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상남도 농업기술원과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추천으로 도내 강소농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강소농은 다슬기 사육 농가가 어떨까요? 아주 열심히 연구하고 일하는 젊은 농민이 하동에 있습니다.”

추호진 정옥다슬기 대표

경상남도 농업기술원 석정태 지도관의 제의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다슬기? 다슬기가 농업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슬기는 농산물도 아니고 축산물도 아닌데 어떻게 농민이고 강소농일까. 그런데 이 ‘농민’은 도 농기원의 강소농 우수사례 책자에도 실려 있었다.

신문사 동료 기자들은 머리를 굴리다가 “혹시 다슬기를 논에서 잡으니까 농업인가?”하는 의견도 냈다.

이에 하동군 농업기술센터 백성수 천부농만부촌 담당은 “다슬기 하나를 보면 수산물이라 하겠지만, 정옥다슬기 추호진 대표가 생산하는 것은 녹차를 이용해 가공한 벤처농산물이므로 농업기술센터에서 관장한다”며 “또한, 다슬기 외에도 녹차·대봉감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산물을 이용해 부농을 꿈꾸는 하동 정옥다슬기 추호진 대표를 만났다.

어머니 손맛 깃든 다슬기장 특허등록

항상 긍정의 에너지로 하동군 양보면에서 농촌을 지키고 있는 정옥다슬기 추호진(34)·양은영(32) 부부. 정옥다슬기는 생다슬기·다슬기국·다슬기장·다슬기진액·다슬기환 등을 가공·판매한다. 추 대표 어머니의 손맛으로 개발한 다슬기장은 특허등록까지 했다. 지난해 농업소득은 1억 3000만 원. 올해는 2억 5000만~3억 원을 목표로 한다.

추 대표는 다슬기 사육을 하지만, 이는 ‘가공용’이 아니다. 추 대표 농장에서 키우는 다슬기로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사육 다슬기는 연구용과 방류용이다. 가공용 다슬기는 전량 수매한다.

정옥다슬기의 사업 부문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주 수입원인 다슬기 가공·판매이고, 다른 하나는 다슬기를 키워 자치단체 등에 방류용으로 판매한다.

“다슬기는 난태생이라 새끼를 낳습니다. 봄에 다슬기를 잡아와서 출산을 유도, 어미 다슬기는 강으로 돌려보내고 새끼를 이곳에서 키웁니다. 방류용 다슬기 판매 수익은 전체의 10%도 안 되지만, 자연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다슬기는 천연기념물인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강에 다슬기가 많아지면 자연히 반딧불이도 많아지겠죠.”

정옥다슬기 추호진 부부./김구연 기자

추 대표는 농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도 다슬기 방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슬기를 방류하면 마을 어르신들의 수익원이 됩니다. 어르신들이 잡아온 다슬기를 사들여서 가공식품을 만드니까요. 또, 일부 어르신은 저희 작업장에서 다슬기 까는 일을 하니 또 다른 수익원이 되죠. 다슬기와 농업소재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더 나은 부가가치를 제공합니다.”

효심이 낳은 ‘정옥다슬기’

정옥다슬기 추호진 부부./김구연 기자

추 대표는 서울 토박이인 양은영 씨를 만나 서울에서 결혼해 한동안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다 귀향을 결심했다. 추 대표는 하동 악양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녀 “하동은 고향과 같은 곳”이라고 했다.

양은영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추 대표는 아내 자랑을 풀어놓았다. 척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순한 인상의 양은영 씨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발견한 이들 부부의 공통점은 ‘항상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귀촌을 적극적으로 찬성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2번이나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내에게 ‘그동안 아들 낳아 산 것만큼 자랑스러운 게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니 딸이 참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내가 자신이 딸이 돼서 살겠다고 결심했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와서 어머니 모시고 사는 것을 저보다 더 바란 것이었죠.”

‘정옥다슬기’는 추 대표 어머니의 이름(박정옥)에서 따왔다. 추 대표 부부의 효심이 이들을 하동으로 오게 했고, ‘정옥다슬기’를 탄생시켰다. 어머니의 건강도 되찾았다.

“어머니가 다슬기를 참 잘 깝니다. 일을 하는 게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도리어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됐습니다.”

정옥다슬기 추호진 부부./김구연 기자

방류용 다슬기 키우며 가공·판매도 하고

사실, 다슬기를 채취하거나 수매하는 것은 추 대표보다는 형인 추명식(39) 씨가 베테랑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생 추섭(32) 씨 부부도 주말이면 와서 다슬기 채취와 가공을 돕고 있다.

삼 형제가 함께 어머니를 중심으로 다슬기를 통해 부농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품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매실 가공업체에서 2년간 일하면서 배웠다. 하지만, 곧 매실을 키우고 가공하려면 땅 임차 등에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일을 벌이기에는 부부는 가진 돈이 없었다.

“어느 날, 어릴 때 냇가에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냇가는 누구든지 주인이 된다는 생각에 거기에서 아이템을 찾자 싶었습니다.”

다슬기를 키운 지 3년째. 1년 차 때는 엄청나게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해는 설비를 개발, 다슬기 생존율이 높아지고 사업이 확대됐으며, 3년 차인 올해는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다슬기장은 특허 등록까지 했다.

“어머니 손맛으로 탄생한 다슬기장은 간장게장과 비슷한 것으로, 완전 밥도둑입니다. 없어서 못 팔정도로 소비자 반응이 참 좋습니다.”

다슬기장은 짭조름하지만, 간장게장처럼 심하게 짜진 않다. 밥에 비벼 먹거나, 김 위에 밥을 한 숟가락 얻고 그 위에 다슬기 2~3알을 국물과 함께 올려 싸 먹으면 아이들 밥반찬으로도 그만이다.

정옥다슬기의 다슬기국은 마치 녹색 물감을 푼 듯 선명하고 짙은 색깔이 특징이다. 시중에 ‘고디탕’ 등의 이름으로 다슬기국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있지만, 이곳 다슬기국만큼 국물 색이 짙은 곳은 보기 어렵다. 그만큼 맛도 진하다. 이런 투명하면서도 짙은 색깔은 좋은 다슬기를 아낌없이 넣어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다슬기로는 국을 끓이거나, 손질해서 전이나 무침을 만들 수도 있다.

일반 가공·판매용 다슬기는 사육한 것이 아니라 섬진강 1급수에서 채취한 것이다 보니, 장마나 태풍 등이 오면 채취할 수 없어 생다슬기 배송이 지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옥다슬기의 정직함과 품질을 믿고 있는 소비자들은 불평 없이 ‘당연한 듯’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추 대표 부부의 정직한 상품과 넉넉한 인심에 한번 고객은 꾸준한 단골이 되고 있다.

다슬기 사육은 모패 확보 제일 힘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다슬기 습성을 연구하고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 처음부터 과제였다. 추 대표의 열정은 각종 설비 개발로 이어졌다.

정옥다슬기에서 생산한 다슬기./김구연 기자

“물에 산소 농도가 어느 정도 돼야 하고, 또 흐르는 물에서 다슬기를 키워야 합니다. 그걸 한 번에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제가 개발한 기계입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의 기계로 물을 흡입해 공기와 함께 나갈 수 있도록 고안, 이곳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장비입니다.”

지난해까지는 가족들이 일했지만, 올해 정옥다슬기는 새 식구를 4명이나 들였다. 정옥다슬기의 다슬기 사육 하우스는 모두 2동. 한 곳에서는 방류 다슬기를 키우고, 다른 한곳은 연구용으로 쓴다.

“모패 확보가 제일 힘듭니다. 어미가 될 다슬기를 채취하려면 3월 초순 강물에 들어가서 다슬기를 하나하나 주워야 합니다. 그때는 물이 너무 차갑습니다. 또 다슬기의 습성상 이때는 물이 깊은 곳에 있습니다. 잠시만 물에 들어가 있어도 얼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보다 쉽게 다슬기를 채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추 대표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채취 허가를 받으면 도구를 이용할 수 있어 다슬기를 더 많이 채취해 더 많이 방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에 건의했으나 특혜 시비 등의 우려로 허가받지 못했습니다. 다슬기를 채취해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게 아니고, 새끼를 키워 다시 강에 방류하겠다는 건데 참 아쉽습니다. 자연을 살리고 인근 농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일인데….”

올해 추 대표는 향토 사업을 기반으로 지리적 표시 등을 통해 공동브랜드화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델몬트’나 ‘제스프리’같은 세계적인 농산물 브랜드처럼 공통적인 품목을 생산하는 농어업인을 하나로 규합해 지역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공동브랜드 실현을 꿈꾼다.

또한, 언젠가는 복합적 농촌 테마공원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반딧불이가 많아져 4~5년 후 밤하늘을 환히 수놓게 되면 도시민들에게 로맨스를 제공하는 테마공원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2015년까지는 꼭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귀농하면서 아내에게 막연히 평생 고생하라고 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35살까지만 함께 완전히 연소하듯 목숨 걸고 일해보자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하루하루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정옥다슬기의 여러 제품은 www.agyang.co.kr(전화 055-882-7465)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추천이유

   
     
-백성수 하동군농업기술센터 천부농만부촌 담당

정옥다슬기 대표 추호진 씨는 2008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하동으로 귀향하면서 평소 관심을 갖고 생각해오던 벤처농업의 생산·가공·유통산업에 과감히 뛰어 든 성공한 농업 CEO입니다. 활력이 넘치는 지역 농업·농촌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추 대표는 강소농 핵심 모델로 젊은 농업인들의 귀감이 되고 우리의 농업·농촌을 이끌어갈 든든한 재목이라 생각합니다.

<강소농이란?>
-최복경 경상남도 농업기술원장

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은 경쟁국에 비해 작은 영농 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 농업의 한계를 도전정신과 끈질긴 노력,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강점으로 탈바꿈시키는 실천 프로젝트입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을 통해 경영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농가를 육성하고자 정부는 강소농 제도를 도입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복경 경상남도 농업기술원장.

우수한 농업기술력, IT나 BT 등 발달된 주변과학, 소비트렌드의 변화 등 새로운 기회를 접목시켜 나가고, 농촌진흥 공무원은 농업 경영체가 요구하는 기술과 경영 등 입체적인 컨설팅을 통해 매년 소득 10%를 향상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경영을 혁신할 여정과 의지가 있는 모든 농업인을 대상으로 강소농 신청을 받아, 타 농가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경영체 등을 지역 여건이나 특화작목 여건 등을 고려해 강소농으로 선정,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은 매년 2000명의 강소농을 육성해 2015년까지 1만 호 강소농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이들의 효과가 주변에 파급돼 3만, 4만 정도의 농업경영체가 강소농으로 추가 발전할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를 작지만 강한 농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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