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한센인의 마지막 꿈 '보통의 삶' 가꾸는 공간

산청 성심원은 현재 성심원과 성심인애원 두 개의 시설로 이뤄져 있다. 1959년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인 작은형제회가 설립할 당시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한센인의 마을이었다. 성심원에는 한센병력이 있는 환자들이, 성심인애원은 1,2급 등록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수 십명의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있고 지역 의료기관도 언제든지 이들을 돕고 있다. 이곳을 돌아보면 요양생활 시설 외에도 대성당, 수도원과 수녀원, 납골묘 등이 눈길을 끈다. 성심원 주민들만의 특별한 마을. 주민들은 자립정착생활을 일구며 오랫동안 세상 속으로 나오지 않았고 세상도 이들을 지독한 편견과 소외로 대했다.

산청 성심원. 지리산 자락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성심원은 산과 강으로 에워싸인 채 ‘섬’이었다. 가까운 이웃은 물론 세상과의 단절로 서러운 ‘섬’이었고, 경호강을 앞에 두고 때로는 다리가 없어서 때로는 다리가 무너져서 오도 가도 못하는 ‘섬’이기도 했다. 홍수가 와도 끄덕없을 튼튼한 ‘성심교’가 놓여 성심원과 세상을 이어주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곳 사람들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세상은 한센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문둥병’ ‘나병’이라는 이름으로 지독한 편견으로 가두고 유배시켰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천형’이라 여기며 살았고,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육지속의 섬’이라 했다.

세상과의 첫 소통 ‘성심仁愛(인애) 대축제’

풍현마을. 하지만 세상에서는 이곳을 ‘성심원’이라 부른다. 지난 8월 1일부터 5일까지 성심원은 세상을 향해 ‘평화와 은혜와 상생’의 문을 활짝 열었다.

“모두들 오세요. 이제는 이웃과 함께 삶을 노래하고 싶어요.”

53년 만에, 세상 사람들에게 띄우는 첫 초대장이었다. ‘한센병’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고립된 채 이곳에서 들어앉아야 했던 1959년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성심원 '성심 인애 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권영란 기자

‘성심仁愛(인애) 대축제’. 산청 성심원(센터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주민들은 세상과의 첫 소통을 축제로 시작했다. 팡파레를 울리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축제는 무더위 속에 찾아든 한줄기 바람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이번 대축제는 8월 1일 대전통영고속도로 경남 산청 나들목에서 경호강을 따라 한센인 시설인 성심원으로 이어지는 10㎞ 구간을 고행하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 ‘포운치르쿨라 축제’로 시작했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도 수백 명의 사람들은 서로의 배낭에 든 물을 나눠마시며 처진 사람들을 뒤에서 밀어주며 성심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구에서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 가톨릭인, 성심원 관계자, 한센인 가족들이었다. 축제 참석자들은 이날 밤 친교의 시간을 갖고 대축제를 축하했다.

산청 성심원./권영란 기자

2일 오후 7시에는 도법 스님((사)숲길 이사장)의 ‘생명 평화경’ 특강과 명인 명창 박추자 문하생, 백지원 명창 국악 한마당이 펼쳐졌고, 3일 오후 6시부터는 가수 안치환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공연으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4일 오후 6시부터는 이해인(시인) 수녀의 문학강연과 북 사인회, 광양 포에버 오케스트라의 ‘한여름 밤의 향연’, 박로즈마리 수녀 등의 ‘피조물의 노래’ 등이 진행됐다. 대축제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센인과 참석자들에게 ‘화해와 우정, 평화, 생명’의 화두를 던져주었다.

늘 조용하던 대운동장은 축제 기간 내내 사람들의 발걸음과 웃음으로 북적거렸다. 상설행사로 성화 특별전시, 성심원 역사사진 전시, 유명작가들의 그림전시와 판매, 체험행사(천연염색, 부채그림), 바자회(먹거리, 지역 특산물 판매) 등이 마련됐다.

특히 ‘성심원 역사 사진전시’는 흑백의 사진 기록들을 통해 그동안 세상 사람들이 잘 몰랐던 성심원의 생활과 지난했던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새삼 느끼게 했다. 바자회에서는 진주상공회의소 회원 기업인 ㈜장생도라지, 실키안 등 지역 기업에서 협찬한 특산품 등을 판매했고, 또 진주 미술관과 진주 교육대학교 윤쌍웅 교수를 비롯한 유명화백들이 운영한 ‘찾아가는 미술관’과 그림 그리기 체험 부스는 참석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곳 주민들은 평소 단조롭기만 하던 이곳에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런 어울림이 그저 기쁠 뿐이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성심원은 세상을 향해 녹슨 빗장을 서서히 열었다.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와의 인터뷰>
-한센인의 마지막 꿈 ‘보통의 삶’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권영란 기자

대축제 기간인 8월 4일에 이어 8월 6일 오상선 바오로 신부(성심원 원장)을 다시 찾았다. ‘성심인애대축제’가 끝난 후 조금 숨을 돌리고 천천히 이곳의 일상으로 돌아가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은 섣부른 생각이었다. 바오로 신부는 연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기에 바빴고, 성심원 관계자들은 축제 뒷일정리에 더 바쁜 듯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오로 신부와 마주한 자리에서 최근 이곳 성심원의 새로운 변화를 들어보았다.

-성심원은 어떤 곳인가.

이곳 성심원은 한센시설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중증 장애인 시설이기도 하다. 2개의 시설로 되어있다. 이곳 주민 수는 예전에는 500명 정도였지만, 이제는 150여명이다. 140명이 한센인, 10여명은 일반인이다. 그들은 장애등급 1급, 2급의 중증장애인이다. 신체, 정신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위한 재가복지 사업도 하고 있다.

-규모와 생활 수준은 어떤지?

그동안 한센인들이 자립정착생활을 목표로 이 터전을 일구어왔다. 이곳은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없다. 이곳 주민들은 우리 어머니보다 더 복된 삶을 살고 있다. 여기 주민들은 이제 장애가 남아있을 뿐이지 한센병이 남아있는 게 아니다. 또 수 십명의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이 있다.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요양생활 시설 외에도 대성당, 수도원과 수녀원, 납골묘도 있다.

-‘성심인애대축제’를 마련한 계기가 있다면.

이곳은 앞으로 20년이면 완전히 ‘끝’이다. 이 ‘끝’이라는 것은 한센병이 이제는 더 이상 발병하지 않으며, 지금 생존한 한센 어르신들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한센병, 이 병이 잡혔다는 건 축복이다. 이 축복을 진짜 축복이 되게 하려면 이 분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오랜 편견이 점점 없어지고 인식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

이곳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먼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청, 진주 주민이다. 가장 먼 이웃이다. 그 이유가 산청과 진주에 사는 분들은 어릴 때부터 이곳은 ‘절대로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듣고 자랐다. 여전히 빈손으로 들어가면 되는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 두려운 곳이다.

성심원 '성심 인애 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권영란 기자

-한센병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와 편견이 여전히 깊은가. 어느 정도인지.

주위 편견으로부터 이곳이 아직도 얼마나 고립되어있는지 몇 가지 들려줄 수 있다. 얼마 전 군수님께도 얘기했다. 산청공무원들이 이곳으로 연수 올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 시설들은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잘 되어있다. 다른 것을 도와주는 것보다 이곳을 적극 활용하는 게 절실하다. 지금도 담당공무원만 겨우 들락거린다. 산청 본당 신자들도 오지 않는다. 50년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어르신들 점심 봉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런데 신청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 축제 기간에도 어떤 사람이 여기서 나는 약초를 샀다한다. 그걸 들고 길을 가는데 어떤 산청 주민이 어디서 샀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여기 축제에서 샀다 하니 대뜸 “아이가, 게서 사면 안 돼. 먹을 수 있것나…”라고 손사래를 치더란다.

-이번 대축제는 그런 편견을 깨는 일이었나.

성심원은 사회적 편견의 희생물이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이웃대접 받는 것, 여기 어른들의 한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세대인 그들의 한을 풀어줌으로써 한센인들의 원혼을 달래고 치유하는 것이다. 축제기간 내내 바자회를 했다. 사회복지기관으로 후원모금을 해야 한다. 서울이나 진주에서 바자회를 열면 수익적으로 더 좋으나 굳이 이곳에서 한 이유는 결국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성심원 '성심 인애 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권영란 기자

-그렇다면 이웃 주민들의 반응과 호응은 어땠는지.

편견을 깨는 작업은 먼저 지역사회와의 의사소통과 교류가 중요하다. 먼 곳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이해도가 높다. 오히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청 주민들에게 더 먼 곳이다. 지역 사회에서 더 열려있는 곳이 되고 싶었다. “산청이 고향인데도 처음 와 봤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걸 알 수 있었다”라고 말씀들 하셔서 가장 큰 의미가 되었다.

이런 소통은 산청 주민들에게도 더 이상 죄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치유와 상생의 과정이다. 한센 어르신들 다 가신 뒤 이곳은 다른 시설이 될 건데, 그때가 되어도 산청 주민들은 이곳에 못 올 거다. 그 동안의 편견으로 자신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성심원 '성심 인애 대축제'에 참가한 사람들./권영란 기자

-대축제를 준비하면서 성심원 관계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생활시설이고 어르신들 돌보는 게 주 업무이니까 준비하기가 힘들었다. 복지사인데, 그야말로 요양보호사처럼 일하고 있다. 아픔과 상처의 소산이지만 이곳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상생과 화합의 목소리 말이다. 물론 우리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분들이 기꺼이 함께 했다. 협력으로 해내었다. 힘은 들지만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은 힘들지만, 다음은 더욱 좋을 것이다.

-이웃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다가갈 거라 했는데 편견이 무너지고 제대로 소통 되는 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편견의 벽은 10년, 20년 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것이다. 10년 내로 목표하고 있다. 치유하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겠는가. 남은 사람들이 가르고 싸우고만 있다면 그 원혼은 달래지지 않는다.”

산청 성심원./권영란 기자

바오로 신부는 “이곳 주민들은 평생도록 ‘보통의 삶’을 꿈꾸었다. 지금 남아있는 이들이 지역주민들과 허물없는 이웃으로 살 때 이들 평생의 한이 풀리고 먼저 간 이들의 한 맺힌 역사도 치유가 될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데 한 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원훈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하십시오.”(1데살 5,16~18)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는 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내건 부당 인권 진정함이 놓여있다. 이곳 설립목적문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내용이 새겨있다.

햇볕 잠시 사위고 바람 선선한 날, 지리산둘레길 구간에서 이곳 마을과 대성당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산청 성심원은 나의 삶과 내 이웃과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주민들과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두엇 나누다보면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단련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성심원은 편안하고 살기 좋은 ‘보통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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