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마치고 소주 한잔하는 그 맛에 연극계 발 들였죠”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에 추천 요청 글을 올렸더니 한 사람이 주목받았다. 정작 당사자는 ‘저를 추천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만, 좀 더 다양한 사람을 위하여 저를 빼주세요’라는 답글을 달았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하니,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한국연극협회 경상남도지회장․창원 극단미소 상임연출가․연극사랑 창원아트홀 대표…. 여러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는다. 그래도 ‘연극인 천영훈(52)’이라는 담백한 표현이 가장 어울릴 법하다. 창원시 명서동에 있는 극단미소 사무실을 찾았다. 침대․주방시설이 있고, 여기저기 옷이 널려 있는 게 생활공간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막 샤워를 마친 그가 나왔다.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은 친목 그 이상 

천영훈 /사진 김구연기자

그는 올해 들어 계획하지 않은 일 하나를 진행하고 있다. ‘겸사겸사 콘서트’다. 페이비(페이스북 창원시그룹)를 통해 시작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연극 공연 도중 음향기기 고장이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이 이 얘길 듣고 음향기기 구매비를 지원해 줬다. 또 다른 페이비는 음향기기를 직접 납품해 주었다. 그즈음 가수 이경민 씨가 역시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에 ‘고 김광석 추모공연’ 계획을 올렸다. 그래서 음향기기 교체 기념 및 추모공연을 겸해서, 말 그대로 겸사겸사 자리를 마련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콘서트 역시 또 다른 페이비와 연결돼 국악․클래식기타 공연을 했다.

자연스럽게 정례화하면서 매달 ‘겸사겸사 콘서트’를 열고 있다. 연극사랑 창원아트홀을 운영하는 그는 평소 ‘무대는 놀려 두지 말고 무료로 개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찾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그러한 지론을 페이비 도움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이 그에게는 친목 이상 의미로 다가올 만하다.

소극장 이름을 곧 바꿀 예정으로 그 시점을 9월로 한 것도 이유가 있다. 소극장 이름을 바꾸면 자연히 간판도 교체해야 하는데, 9월에 간판업을 재개하는 페이비 손길에 맡기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온라인 소통에 대한 가치를 크게 느끼지만, 애초 ‘컴퓨터’ ‘SNS’ 이런 것과는 거리 먼 사람이었다.

“한 친구가 극단하려면 홈페이지 같은 것도 필요하다 해서 처음 컴퓨터를 접하게 됐죠. 파일 하나 내려받으려면 몇 시간 걸리던 시절에는 ‘이러다 폭발하는 것 아닐까’라고 걱정하며 잠도 안 자고 컴퓨터 옆에 붙어 있었어요. 나모 3.0 나왔을 때 혼자 주물럭거리면서 간신히 홈페이지 하나 만들게 됐죠. 하다 보니 인터넷에서 배울 게 너무 많데요. 이제는 컴퓨터로 음향프로그램․그림 프로그램 이런 것 제가 다 하죠. 페이스북 창원시그룹이 만들어졌을 때는 누가 권유해서 가입하게 됐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만날 용기도 없고 했는데, ‘호호국수’서 점심 먹는 자리에 처음으로 가면서 정 붙이게 됐죠. 인터넷 공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지만, 다들 마음 씀씀이가 좋은 것 같아요. 개인블로그 이런 건 게을러서 못하겠더라고요. 페이스북도 자주 들어가긴 하는데, 눈이 나빠서 스마트폰으로 보려니 그것도 쉽지가 않아요.”

“천영훈이 연극을 하는 건 불가사의다”

천영훈 /사진 김구연기자

창원이 고향인 그는 요즘 동창들로부터 ‘천영훈 불가사의’라는 얘길 종종 듣는다. ‘조폭이 되지 않은 게 신기하다’는 것에서는 그가 학창시절 어떠했는지 듣지 않아도 짐작된다. 또 하나는 바로 ‘천영훈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도 많이 괴롭히고, 공부 안 하며 말썽 좀 부렸습니다. 마산공고 기계과인데, 기계 켤 줄도 몰랐어요.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 재수를 했는데, 꼴통들 몇 명이 모여 문학반을 조직했어요. 학원에 걸려있는 ‘7전 8기’라는 글귀가 문제였어요. ‘우리보고 대학 7번 떨어지라는 거냐’면서 학원장한테 항의하고 데모하다가 전부 다 쫓겨났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죠. 그래서 다른 학원으로 옮겼는데, 한날은 국어 선생이 어디로 오라면서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가보니 극단이었어요. 연극 쪽으로 끼가 있어 보였으니까 불렀겠죠. 그런데 며칠 해 보니까 연습 끝나고 나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는 게 그리 좋데요. 그래서 연극계에 발붙이게 된 거죠.”

‘연극과의 만남’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연’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당시 가포에 있던 마산대학을 다니면서 연극도 계속했지만, 공부를 안 해 학사경고로 잘렸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는 이제 좀 착한 아들이 되어야겠다 싶었죠. 보니까 선원 모집 전단이 있어 바로 전화했죠. 그리고는 배 타려고 당시 마산시청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3․15의거탑 앞에서 아는 형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이 형님이 ‘소극장 만들러 간다’고 해요. 그 얘길 듣고 ‘에라, 선원은 무슨’이라며 곧장 따라가면서 완전히 연극 길에 접어들었죠.”

이후 1989년 ‘극단미소’에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도 함께하고 있다. 2011년에는 3년 임기인 한국연극협회 경상남도지회장을 맡았다. 지회장 맡은 이후 경남이 2년 연속 전국연극제 대상을 받아 큰 힘을 얻고 있다.

귀찮아서 30년 가까이 기른 수염

천영훈 /사진 김구연기자

영화․TV에도 잠깐씩 출연했다. 1990년대 인기 TV프로그램이었던 MBC <경찰청 사람들>에 얼굴을 내밀었다. 김민종․김정은이 주연한 2003년 영화 <나비>에서는 장교 역할로 두 컷을 찍었다. 정작 본인이 출연한 영화인데도,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 없다고 한다. 길게 한 호흡으로 가는 연극과 다른 영화에서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천영훈’이라는 사람 앞에는 ‘털보’라는 말이 달라붙는다. 사실 수염은 거창한 뜻이 있어 기르는 것은 아니다.

“수염 깎으면 피부가 벌게지고, 또 귀찮기도 해서, 군대 갔다 오고서부터 길렀어요. 결혼하기 전 와이프 집에 ‘딸 달라’고 쳐들어갔어요. 그때 딸보다 9살이나 많은 놈이 생활 한복 입고, 수염까지 기르고 있으니, 장모가 도사 같은 놈 왔다며 놀라고 그랬죠. 지난 총선 때 강기갑 (통합진보당 현) 대표가 수염 자른 걸 보고 저도 한번 깎아봤죠. 그런데 ‘털 빠진 닭 같다’면서 다들 별로라 그러데요.”

부인도 한때는 연극 일을 했다. 지금은 직장생활 하며 집안 경제를 이끌고 있다.

“한번은 밥 먹는 자리에서 창원상공회의소 최충경 회장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요’라고 묻길래 ‘각시 등쳐먹고 산다’고 했죠. 결혼 전 와이프한데 ‘당신은 아이들 먹여 살려라. 나는 내일 하겠다’고 미리 말했죠. 실제 집에 돈 한 푼 가져다준 적 없으니까요. 자동차 10년 타면 바꿔준다고 하더니만, 이젠 ‘딸아이 둘 학원비 많이 들어가서 못 바꿔준다’고 그러네요.”

학창시절 말썽만 부리던 그가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경성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석사 논문만 남겨놓고 있다.
올해는 ‘겸사겸사 콘서트’까지 더해져 자신을 위한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수채화 그리는 것도, 아침마다 뒷동산 올라 산책하는 것도 요즘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연극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 ‘연습 마친 후 소주 한잔’은 여전히 빼먹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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