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과 맞닿은 남명 선생 정신

남명조식기념관에서 만난 안승필(54) 문화해설사는 남명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곳인 '산천재(山天齋)'로 안내했다. 그는 땡볕 아래에서도 선생에 관한 얘길 하나라도 더 전하려 애썼다.

남명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왜 하필 산청에 오게 됐을까?

"합천이 고향인 남명 선생은 61세 때 산청 덕산으로 오셔서 산천재를 지어 후진을 양성하셨죠. 선생이 모든 벼슬을 마다하고 말년에 이곳으로 온 것은 하늘과 땅 기운이 맞닿아 있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덕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산천재는 산청에서도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닦으셨던 거죠. 저기 나무 너머 천왕봉이 우뚝 서 있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 보이지는 않네요."

   

남명 선생이 썼다는 글귀에 이러한 것이 잘 담겨있다.

'봄 산 어디엔들 향그런 풀 없으랴. 다만 천왕봉이 하늘에 가까운 걸 사랑해서라네. 맨손으로 들어와서 무얼 먹고 살 건가. 은하수같이 맑은 물 십리니 먹고도 남겠네.'

선생의 사상은 경(敬)·의(義) 두 글자로 축약된다고 한다.

"지니고 있던 검에 경·의를 새겨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근본을 세운 다음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젊을 때는 가난을 경험하셨기에 백성 곤궁을 이해하고 위민정치를 실천하려 노력하셨죠. "

남명조식 유적은 산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 합천에는 산청 오기 전 제자를 가르친 뇌룡정(雷龍亭), 후학들이 지은 용암서원(龍巖書院)이 있다. 김해에는 30세 때 정착해 학문을 연구했다는 산해정( 山海亭)이 있다.

"그곳은 그곳대로, 또 산청은 산청대로 남명 선생에 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죠. 서로 우리 지역 인물이라고 경쟁할 것 없이 그 의미만 잘 담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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