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교차 덕에 당분 높은 산청 '곶감' 찬바람 불면 더 그립다

산청 사람들은 지역 특산물로 망설임 없이 '곶감'을 내세운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기록에는 산청지역 공물(貢物)로 감이 바쳐졌다고 되어있고, 고종(1852~1919) 황제 때는 곶감이 진상에 올랐다고 한다.

오늘날 단성면 남사리 남사예담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감나무 앞에는 국립산림과학원 측정 결과 '수령 700년'이라는 표지가 있다. 하지만 고려말 하연(河演·1376~1453)이 어머니 자애로움을 기리기 위해 7살 때 심었다는 점에서 따져보면 630년 정도 된다. 측정이 잘못됐거나 하연이 심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랬든 저랬든 긴 세월을 잇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이 고목에서는 지금도 감이 열린다.

산청 곶감이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산청은 그 이전 1950~60년대에는 임산물 채취하는 것 정도로 먹고살았다. 조금 더 지나서는 대나무 가공업이 중심에 놓이기도 했다.

전국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산청곶감의 출하를 앞두고 농가가 곶감 말리기 작업을 하는 모습. /산청군

그러다 1970년대 들어서는 밤이 큰 소득원으로 자리했다. 밤이 이곳에 들어온 과정이 특별나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전남 광양을 찾았다가 둘러보고서는 밤나무단지 조성 지시를 내렸다. 곧바로 광양에 밤나무밭이 들어섰다. 그즈음 산청으로 시집온 '광양댁'이 친정에 갔다가 밤나무 5그루를 들여와 심으면서 이 지역에도 밤이 흔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밤나무로 재미 볼 무렵 이 지역 사람 몇이 경상남도 농특산물전시장에 갔다고 한다. 그 당시는 곶감을 꼬챙이에 꿰어 내놓던 때였다. 그런데 함안 어느 농민이 곶감을 예쁘게 포장해 내놓은 걸 보고서는 '이거다' 싶었나 보다. 곧바로 삼장면 쪽에서 도입하면서 산청지역 곶감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리산 쪽 중산리·내대리 쪽으로 퍼져갔는데, 처음에는 고지대라 곶감 말리기에 맞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단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오히려 일교차 크고 깨끗한 공기 덕에 품질은 더 올라갔다. 그러면서 산청 효자종목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곶감 하는 이들이라면 "칼 두 자루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밑천이 많지 않았던 이곳 사람들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돈이 된다 싶으면 소 밀어내고 외양간에서 시작해 조금씩 넓혀 가는 형태였다고 전해진다.

곶감은 원료 자체가 아무리 좋아도 말리는 조건이 맞지 않으면 품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일교차 심한 곳에서 얼고 녹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높은 당이 형성되는 것이다. 지리산 가까운 곳은 겨울철 밤낮 온도 차가 많게는 25도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지리산 인근 고지대는 일교차가 커 곶감 맛을 높인다. /남석형 기자

오늘날 전국 생산량은 대량화에 초점 맞춘 경북 상주가 55%가량으로 제일 많다. 충북 영동에 이어 산청은 15~20%가량으로 세 번째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산청 곶감을 받은 후 찬사 글을 보내왔다는 얘기는 이곳 사람들이 입에 달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인근 함양에서 부러이 여겨 산청 사람 몇을 데려가 곶감 생산에 노력했는데, 이제는 엇비슷한 품질이 나오고 있다"는 말로 으쓱함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럼에도 한 끼 식사거리로 내세울 만 한 것을 물으면 이 지역 사람들은 하나같이 머뭇거리기 일쑤다. "그러고 보니 특별한 게 없네"라고 연신 내뱉는다. 그 이유에 대해 이래저래 한마디씩 한다. 요컨대 산청은 부자 고을과는 거리가 멀어 화전민(火田民·산간 지대 나무를 불사르고 그 자리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감자·떡 같은 것을 내놓는 정도에 그친다.

지리적으로 보면 산에 둘러싸여 폐쇄적이다. 대개 이런 지형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일구기도 한다. 하지만 인근 진주가 같은 생활권 역할을 한 탓에, 그쪽 음식에 의지하며 이곳만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몇몇 이름 올리고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한데 길어도 50년을 넘지 못할뿐더러, 인근 함양과 겹치는 것도 꽤 된다. 어탕국수·흑돼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어탕국수는 충청도 지역에서 '생선국수'라는 이름으로 먹기도 한다지만, 서부경남 지역에서 즐겨 먹는 향토음식이다. 어탕국수는 식으면 비린내가 올라오며, 면발이 붇기 전 먹는 편이 낫다. 뜨거움에 '호호'거리면서도 면을 입에 넣는 성질 급한 경상도 사람과 궁합이 맞는 편이다.

경호강은 다양한 민물고기 음식을 내놓는 밑천이 된다. 경호강(鏡湖江)은 '거울같이 물이 맑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강폭이 넓고 큰 바위가 없어 유속이 빠르다. 물살 센 환경은 곧 밥상에 오른 민물고기 살점을 졸깃하게 한다.

삼복더위를 지나면 경호강에 은어가 몰려든다. 낚시 좋아하는 이들은 인근에 숙소까지 잡고 몇 날 며칠 은어잡이를 즐긴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사람들까지 몰려들기도 한단다. 바지 걷고 얕은 물에 들어가 낚싯줄 걷어 올리는 모습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떠올리게 한다.

경호강  은어잡이 모습. /박민국 기자

생초면 어서리 쪽에는 민물고기 전문식당이 긴 행렬을 이룬다. 30여 년 전 도로가 나면서 하나둘 들어섰다. 쏘가리·메기·붕어·피라미·은어·빙어 같은 민물고기 이름이 나열돼 있다. 이 가운데 피라미 음식은 경상도 방언 '피리'라는 이름으로 내걸려 있다. 특히 조림으로 내놓을 때는 뼈째 먹을 수 있도록 한번 살짝 튀겨 억셈을 없앤다.

고둥탕 전문점도 여럿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채소·들깻가루·부추를 넣어 국물을 걸쭉하게 하기도 하는데, 산청은 맑게 내놓는다. 중국산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알갱이를 빼지 않고 껍데기째 내놓는 곳도 있다.

산청은 지리산에서 나는 1000여 가지 약초를 활용한 음식에 눈 돌리고 있다. 사찰음식개발과 약선요리타운 조성 추진이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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