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함양 명가 자존심 담긴 전통 가양주 솔송주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하동 정 씨 집성촌이다.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유학자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이 살았던 집이 이곳에 있다. 아직도 그 후손들은 정여창 선생 기일이 들어 있는 5월 무렵이면 고택에서 제를 올린다. 후손들은 그날을 '일두 할아버지 모시는 날'이라고 한다. 이 뿌리 깊은 가문에는 500여 년 전부터 빚은 술이 있다. 덕망 높은 유학자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대접했을 그 술은 예부터 뛰어난 향과 맛으로 이름 높았다. 쌀로 빚어 솔잎으로 맛을 돋우는 그 술 이름은 '솔송주'라고 한다. 지금은 그 맛을 정여창 선생 16대손 정천상 씨 부인인 박흥선(60) 명인이 잇고 있다.

정여창 고택에 들어서자 할머니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이 보였다.

명가원 내부./박민국 기자

“오늘이 일두 할아버지 기일입니다. 마침 잘 오셨네요. 여기서 좋은 기운 얻어 가십시오. 상 차린다고 함양에 있는 집안 며느리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 집안 후손인 정현식(59) 씨가 반갑게 맞으며 설명한다. 대청마루에서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 보인다. 뛰어난 선비가 많았다는 고장 함양, 그 많은 선비들 중에서 정여창 선생 이름은 가장 드높다. 명문 중에 명문 후손들이 모여 큰 어른을 모시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적지 않은 복인 듯했다.

매운 시집살이, 그래도 훌륭한 유산 받아

개평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명가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동 정 씨 집안 가양주(家釀酒)인 솔송주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곳에서 박흥선 명인을 만났다. 명인은 수수한 차림으로 느닷없는 객을 맞았다.

“35년 전에 함양읍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네요. 이쪽 동네야 워낙 유명한 명문이고 시집살이 힘들 것도 뻔했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양반가로 딸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쪽으로 혼처를 정하셨지요. 처음에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꼿꼿한 선비 집안은 바깥에서만큼 집안에서도 엄했다. 못하는 일이 없어야 했고 몸가짐은 흐트러짐이 없어야 했다. 이 집안 며느리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고분고분 어르신들을 받들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명문가 며느리 단속을 엄하게 해야 하는 감독관이기도 했다.

박흥선 명인./박민국 기자
/박민국 기자

“그래도 지나고 보면 이 집안 며느리로 들어왔기에 좋은 술을 빚게 된 것이지요. 저는 조상님 덕을 크게 봤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안 술은 예부터 유명했다. 박흥선 명인은 시집왔을 때부터 이 집안 술맛을 보려고 기웃거렸던 무수한 객들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입에 쩍쩍 붙는 술을 한 잔이라도 더 얻으려고 애교 부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송주는 한정 없이 만들 수 있는 술은 아니었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맛이 변하는 술을 이 집안에서도 한 번에 많이 만들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 좀 많이 맛볼 수 있게 해달라고 꾸준히 졸랐다. 솔송주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이 집안이 아니라 바깥사람들 바람이었다.

“처음에 대량 생산을 시도한 게 18년 전쯤 되네요. 집에서 만들 때는 항아리로 만들면 됐지만, 대량 생산은 또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그 맛이 나오지 않아 속상한 일도 많았어요. 안 되나 싶어 울기도 많이 했지요.”

솔송주./박민국 기자

박흥선 명인은 사명감으로 술 제조에 매달렸다. 이 좋은 술을 집안에서만 만들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마시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제대로만 만들면 누구든 엄지를 치켜들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맛은 자신 있었다. 맛을 지키면서 많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됐다.

명가원이 내세우는 술은 크게 두 가지다. 13% 발효주와 40% 증류주이다. 발효주는 입안에서 청주와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향과 부드러운 넘김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증류주는 향이 더 강하며 발효주보다 뒷맛이 달짝지근하다.

“맛을 본 사람들은 웬만한 고급술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해요. 넘김이 부드럽고 뒤끝도 개운하다고 하지요. 여기 함양이 안동과 비교가 많이 되는데, 안동소주가 유명하다지만 솔송주 맛이 더 낫다고 확신해요. 드신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박흥선 명인이 드러내는 자신감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솔송주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40% 증류주 ‘담솔’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국 93개 업체 107개 제품이 경쟁한 가운데 거둔 성과다.

술 한 잔 못하는 술 명인

박흥선 명인은 지난 1999년 ‘대한민국 식품명인(27호)’으로 지정됐다. 술 빚는 재주가 소중한 지역 자산으로 평가받으며 올해 경남지방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명인은 술을 한 잔도 못 마신다.

박흥선 명인./박민국 기자

“남들이 들으면 웃을 텐데 저는 술을 못 마셔요. 술맛은 남편이 더 잘 알겠지요. 저는 혀끝만 살짝 대는 수준이에요. 젊었을 때부터 시어머니에게 술 빚는 것을 배웠는데 마시는 것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도 몸에서는 늘 술 냄새가 나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고요.”

그래도 지금은 술 냄새만 맡아도 잘 됐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해낸다. 정량이라는 것을 따로 정해놓지 않고 술을 빚었던 박흥선 명인은 그저 감각에만 의존했다. 대량 생산을 시도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도 규격화되지 않은 술 제조법이었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겨우 맛을 맞췄다 싶었다가도 결국 혀끝을 통과하지 못해 상품화를 접었던 적도 허다했다.

긴 시간이었지만 박흥선 명인은 결국 대량 생산을 성공해낸다. 지금은 오히려 대량 생산한 솔송주가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어 때로는 집에서 빚을 때보다 맛이 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술은 빚을 때마다 맛이 달라요. 똑같은 양에 똑같은 방법으로 해도 그 맛이 차이가 나지요. 아주 좋은 술이 나올 때도 있고 평균보다 못한 술이 나올 때도 있어요. 지금 이렇게 생산하는 술은 그래도 늘 평균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나라를 대표하는 술 만들고 싶어

명가원에서 나와 정여창 고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택 바로 옆에는 솔송주 전시관이 있다. 단아한 한옥은 박흥선 명인이 사는 집이기도 하다. 마당을 지나 집 한쪽에는 전통 방식으로 술을 내리는 도구가 전시돼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큰 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뚜껑 대신 유리판을 덮어 놓아 독 안을 볼 수 있도록 해뒀다. 그 안에는 발효되는 찹쌀과 적당하게 섞인 솔잎이 함께 영글고 있었다. 사방 벽에는 명가원이 생산하는 술이 다양한 병에 담겨진 채 전시돼 있다.

/박민국 기자

“술은 어떤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보통 13% 술은 1~3만 원 정도고 40%는 그보다 비싸지요. 작가가 만든 분청사기에 12년 숙성한 솔송주를 넣은 이벤트 제품이 있었는데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180만 원 정도에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박흥선 명인은 지금은 사라진 전통주 복원에도 관심을 보였다. 당장 제품화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사라진 소중한 유산을 되찾고 싶고 자신이 적임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인은 전시된 술을 한 병 한 병 들며 얽힌 토막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프랑스 하면 와인이죠. 중국 하면 마오타이가 떠오르고요. 일본은 사케 정도 될까요. 그런데 한국은 딱히 내세울 수 있는 고급술이 없는 것 같아요. 죽기 전에 그런 술을 제 손으로 빚었으면 좋겠어요.”

/박민국 기자
/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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