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을 찾아가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게 바로 '거창 사건'이었습니다. '경남의 재발견'에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다룰 것이며, 어떻게 다룰 것이며, 어떻게 서술할 것이며 등 모든 게 부담이었습니다.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는 게 편집국장 주문이기도 했습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사건이 주는 의미, 비극성 때문에 감정이 넘쳐서도 안 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는 안 된다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매우 어려워지더군요. 취재 내내 이 부분이 늘 버거운 과제였습니다.

신원면 청연묘역입니다. /박민국 기자

스스로 몇 가지 제한을 정했습니다. 먼저 암울한 단어를 될 수 있으면 쓰지 말자. 이를테면 '잔인한', '천인공노할', '비극', '하늘도 땅도 울고', '무참히' 같은 말입니다. 그런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 감정이 쏠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갔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했지만 잘 정리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창사건추모공원입니다. /박민국 기자

그리고 신원면에 있는 청연묘역에 도착했습니다. 비도 오고 마음은 더 착찹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역시 묘비였습니다. 같은 모양으로 길게 줄을 선 검은색 묘비. 이름과 태어난 날짜와 죽은 날짜, 그리고 후손들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묘비를 보다 보니 날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태어난 날짜는 제각각인데 죽은 날짜는 모두 같았습니다. 갑자기 멍해지더군요. 앞서 고민했던 우울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그날 비극을 이렇게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창 사건 이야기는 이 묘비에 적힌 이름과 태어날 날, 죽은 날을 옮기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경남의 재발견' 거창편에서 보신 그대로입니다.

거창사건추모공원에 있는 사죄하는 군인 동상입니다. 이들이, 그 세력들이 진정 반성하길 바랍니다. /박민국 기자

거창 사건 비극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은 박산골 묘역입니다. 묘비 글귀가 정으로 쪼여진 채 쓰러져 있는 비석. 그날 비극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조용히 호소하는 듯했습니다. 청연묘역, 거창사건추모공원을 거쳐 박산골 묘역에 도착한 취재진은 쓰러진 비석 앞에서 가장 먹먹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네요. 원래 목적은 거창 사건을 언급하면서 산청, 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도 같이 엮으려고 했습니다. 산청, 함양,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은 저지른 주체가 같은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가 모자란 탓에 그 사건 개요를 정확하게 옮기지 못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절묘하게 잘못을 피해갔지만, 그 속을 조금만 더 따지면 잘못 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산청을 다룰 때 다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거창 사건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박산골 묘역 비석입니다. /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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