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 졸업생 중심으로 사회운동 세력 형성"

굴곡 많은 우리네 현대사에서 거창은 뒷걸음질치는 곳이 아니었다. 1979년 농우회가 조직됐고, 이후 아림농민회·거창농민회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에는 마을단위 한들농민회가 있기도 했다. 농민운동 동력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1984년 우리문화연구회를 만들어 농민운동에 힘을 보태기도 한 한대수(56·사진) 씨를 찾았다. 그는 현재 거창귀농학교·아시안1인극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

한 씨는 이 지역 농민·사회운동이 강성이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은 데서 찾았다.

"거창고를 설립한 전영창 선생이 유신에 반대하면서 그 졸업생들이 사회운동에 이바지하는 등 하나의 세력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거기에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받은 분들, 김대중 추종하는 몇몇 분이 합해지면서 반정부 투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거창YMCA가 1984년 만들어지면서 그쪽을 통해 지식인들이 외부에서 많이 모였죠. 또한, 거창엔 법원·세무서·교육청이 있어 공무원·교사가 많았는데, 이들이 지역운동을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힘을 주는 역할은 한 듯합니다."

   

이 말을 듣고 보면 거창이 그리 배타적이지는 않나 보다. "지역 토호들 처지에서 반감은 있었겠지만, 자기들 이권에 크게 침해하지는 않는 걸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1970년대 중반 거창에 온 정찬용 전 참여정부 인사수석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전영창 선생이 '거창고를 설립했지만, 외지 학생이 많아 오히려 이곳 아이들을 바깥으로 쫓아내는 것 같다. 거창으로 봐서는 잘한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지역 인재를 길러봐라'고 해 오게 됐다 합니다."

이렇게 거창에 발들인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1984년 거창YMCA 총무를 맡으며 제2 고향을 활발히 이끌었다.

이래저래 종합해 봤을 때, 이곳 사람들은 바깥사람들을 포용해가며 자신들만의 저항정신을 펼쳐 나간 듯하다.

한 씨는 덧붙였다. "1862년 진주민란에 이어 여기서는 이승모·이승진 같은 분들이 주도해 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기린 사당이 있는데 지금 방치돼 있습니다. 이러한 분을 받드는 추모제에서 시작해 거창 저항정신 당위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지역에서 이런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키워드
#한대수 #거창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