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라이브공간]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비처럼 음악처럼'

지난 3월께였나보다. 지인들과 창원에서 술을 마시던 중 괜찮은 라이브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창원시 상남동 분수대 옆에 있는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카페를 찾았다. 상호 앞에 '감대진 Live'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공연이 끝나가는 무대도 꽤 좋았던 기억이 있다.

뒤에 알았는데 카페 주인 감대진(49) 씨는 프로 가수로 정규앨범을 4집까지 냈다고 한다. 라이브 주점 취재를 위해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다가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한 뒤 카페를 찾았을 때, 홀에는 써빙을 하는 알바생 몇이 지키고 있을 뿐 휑뎅그렁한 가운데 고막을 울리는 음악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상업적인 공간인데도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수지를 맞출 수 있겠는가 싶었는데, 그런 느낌은 첫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다.

상남빌딩 10층을 독차지한 비와 음악처럼은 120여 평 중 실제 무대와 홀로 이용되는 공간은 80여 평. 그 중 12평이 무대다. 감 씨를 기다리는 동안 무대를 대충 둘러봤더니 드럼과 키보드, 기타 등 각종 악기와 전문 공연장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조명 일습을 갖추고 있는 게 지난번 술을 마시고 왔을 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알맹이가 느껴진다.

   
 

감 씨에게 우선 생애사부터 물었다.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及) 수 없다'는 생각에 그가 음악에 미치게 된 연유부터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음악성과 끼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검찰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와 달리 그의 어머니는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잘 했으며 노래도 빼어났다고. 그렇게 음악에 익숙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은 법대로 진학했다. 그런 그의 인생 항로를 처음으로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1982년 지역 라디오 방송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이었다. 또 그 해에는 대학가요제 본선에도 진출했다.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밀양 출신의 정풍송 선생을 만난 것이 그의 인생에 두번째 전환점이 됐다. 고향사람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는데, 대학 가요제에서 떨어지고 유학을 준비하던 그에게 정 선생의 곡을 받아 1985년 '빗방울'로 데뷔했다. 이후 라디오 순위에서 7위까지 올라갔지만 트로트 음악을 하는 게 창피해 일체의 활동을 접었다고.

그러다 작곡가 이범희 씨를 찾아가 곡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곡이 인기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 주제가였다. 이후 2집을 준비하던 중 매니저가 전속금을 갖고 도주하면서 좌절도 겪었다. 그렁저렁 4집까지 앨범을 냈지만 끝내 주목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가수 꿈을 접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놓을 수 없어 서울에서 라이브 카페를 열었고 나름대로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그의 부친이 암 선고를 받았다.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창원으로 왔고, 부친 별세 후 서울로 가려고 했지만 법무사로 일하고 있던 부친 사업을 정리하고 하면서 결국 창원에 눌러앉았다. 그러면서 뭔가 일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예전에 상호가 인상 깊었던 '비처럼 음악처럼' 카페가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곤 망설임 없이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카페 운영으로는 호구책이 될 수 없어 이것저것 다른 사업을 벌여 그곳에서 번 돈으로 카페 운영을 해왔다. 지금까지 인테리어나 건설 쪽으로 일도 했고, 요즘은 투자 수익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그를 비롯해 멤버 5명이 매일 밤 8시 40분 첫 공연을 시작해 40분 공연 10분 휴식을 되풀이하면서 새벽 1시까지 공연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몇 가지 고민이 있다. 세태가 직접 노래 부르는 걸 즐기지 남의 공연감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라이브 주점을 운영하는 지인들도 많은 사람이 직접 공연하기보다는 손님들이 노래 부르게 반주해주는 업소로 전환하고 있어 감 씨도 그럴까 고민을 많이 했단다. 그러나 음악을 했다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공연을 고집하고 있단다. 유행은 돌고 도는 만큼 또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체력을 유지하려고 매일 등산하고 주말에는 축구도 합니다. 공연을 하려면 체력이 뒷받침 돼야하는데,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힘이(체력+재력) 언제까지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힘이 되는 한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7080 카페 거개가 나이트 클럽화한 가운데 라이브 공연만을 고집하는 그만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곳. 거창하게 지역 문화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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