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우짜·시락국 등 '뱃사람' 위한 다양한 음식

통영만의 다양한 음식문화 역시 300년간 이어진 통제영에서 출발해도 무리는 없다 하겠다.

한양에서 이곳으로 온 종이품 관직 통제사들은 몸만이 아니라 위쪽 양반 고급음식도 함께 들인다. 이는 곧 통영의 풍부한 수산자원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그것만도 아니다. 208대에 걸친 통제사들은 종종 진상을 올리기도 했으니, 임금 입·눈을 사로잡기 위한 맛의 향연이 어느 정도였을지 미뤄 짐작된다.

통제영이 폐지된 1895년 이후부터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는 통영이 근대 수산업 대표 지역으로 떠오른다. 일본 사람들은 남해안, 특히 신선하면서 종류도 다양한 이곳 수산물을 제일로 쳤다 한다. 1900년대 초반 부산 포함한 경남 수산업 절반은 통영 몫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넉넉하다 하기에 손색없는 곳이 된 것이다. 뱃사람 덕이었다. 여기서 기인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통영 음식 가운데 이들을 중심에 둔 것이 적지 않다.

마산 통술·진주 실비류인 통영 다찌. 다찌가 정확히 어디서 나온 말인지 이곳 사람들도 확실치 않다. 어떤 이들은 '다 있다' 줄임말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은 '일본의 다찌바(立場·서서 먹는 곳)'에서 유래했다는 쪽을 내민다. 뱃사람들이 일 마치고 술 한잔 얼른 마시던 선술집인 셈인데, 안주는 주인장 주는 대로다. 이는 뱃사람들이 맨날 대하는 게 생선·해산물이다 보니, 안주보다는 차라리 술에 값을 매기는 것이 더 속 편했을 법도 하다.

박태도(57) 통영시 관광과장은 조금 더 구체화한 다찌집에 대한 기억을 전한다.

통영 '우짜'를 젓는 모습.

"왕거미집이라는 술집에서 양동이에 담은 맥주를 내줬어요. 그게 조금 더 발전해 안주도 체계화되고, 그러면서 장사가 잘되니 주위에 자연 발생적으로 한 집 두 집 생겨났죠. 지금 왕거미집은 없어졌죠. 한 30년 전쯤에…."

전통 다찌집은 술이 불어나는 데 따라 1·2·3차 안주가 차례로 나오는 식이지만, 이제는 기본 한 상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4인 기준은 10만 원으로 술이 10병 딸려 나온다. 추가 술은 맥주 1병 6000원, 소주 1병 1만 원 정도다. 처음과 달리 만만찮은 돈을 털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 '됐나? 됐다!'식 화통한 기질 덕에 셈을 서로에게 미루는 모습은 잘 찾아보기 어렵다 한다.

충무김밥 역시 뱃사람 가까이에서 나온 음식이다. 해방 직후 머리에 이고 팔던 김밥이 빨리 상하자 밥만 따로 말고, 주꾸미 꼬지를 별도 대야에 담아 판 것이 시초라는 것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데, 이를 내 팔던 주 무대가 뱃머리였다.

충무김밥./박민국 기자

오늘날 강구안·서호시장 일대 충무김밥집은 저마다 간판에 '원조'를 내걸고 있다.

59년을 통영에서 보낸 김재수 씨 말이다.

"서로 원조라고 하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처음에 뱃사람한테 김밥 팔던 사람이 14~15명은 되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을 차렸으니 다 원조인 셈이지."

새벽 뱃일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메뉴도 여럿 있다.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도 먹고 싶으니 우짜노'라는 우스꽝스러움이 담긴 통영우짜는 간단히 아침 한 끼 해치우는 수단으로 나쁘지 않다.

시락국집도 오전 장사다. 시락국은 무청 말린 시래기를 끓인 시래깃국 사투리다. 다른 지역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내는데, 이곳은 장어 뼈를 우려낸다. '점심 지나서도 장사하는 시락국집은 제대로 된 곳 아니다'라는 말은 곧 새벽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한다.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먹고산다는 통영이라지만, 넉넉하지 못한 이들이 없을 수 없다.

빼떼기죽은 여기서 기인한다. 주로 주산지인 욕지도 생고구마를 채로 썰어 말린 후 여기에 팥·강낭콩·조 같은 것을 넣어 끓인 것이 빼떼기죽이다. 지금이야 건강식으로도 찾는다 하지만, 양식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메뉴다.

우동은 먹고살기 어려울 때 주식으로 많이 먹어 '끌베이 우동'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짜장과 우동을 섞어 놓은 '통영우짜'./박민국 기자

통영의 또 다른 별미인 꿀빵은 1960년대로 접어들던 시절, 달짝지근한 간식이 귀해 만들어진 일종의 도넛이다.

통영꿀빵./박민국 기자

그래도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화려한 별미가 계절별로 이곳 미각을 깨운다.

도다리쑥국과 함께 봄이 찾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6~9월 여름에는 하모(갯장어)회, 가을에는 전어회, 겨울에는 물메기탕이다.

이곳에서는 먹는 사람 한 명 한 명 입맛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집에서 소고깃국을 끓여도 양념장은 따로 해 식구들 각자 기호대로 먹는다고도 한다.

다시 '원조' 이야기로 되돌리면, 대표 음식이 많다 보니 이 단어를 쉽게 접하게 된다. 이들 식당 앞에 줄 선 장면은 흔하다. 하지만 여기 사람은 "우리는 원조집 안 찾는다. 맛있던 집도 돈 벌고 건물 짓고 나니 옛 맛이 안 난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니나 다를까, 충무김밥집을 추천해 달라 하니 '원조' 글이 없는 한 집을 소개해 준다.

한 가지 덧붙이면 멍게비빔밥은 이곳 사람들보다는 외지인들이 좀 더 유난을 떠는 쪽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멍게./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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