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네처럼 보여도 마을마다 말씨 달라"

전북 남원시와 인접해 있는 백전면 매치마을. 양정식(73·사진) 할아버지는 서른에 이곳을 떠났다가 예순이 돼서 다시 고향 땅을 밟았다.

할아버지가 쭈그려 앉아 밭일 도구를 챙기고 있는 농로가 곧 함양-남원 경계선이다.

"이 길이 저 위쪽까지 쭉 나 있는데, 길 왼쪽이 남원이고, 오른쪽이 함양이지. 나는 함양에 집도 있고 땅도 있는데, 전라도에도 땅이 두 마지기 정도 있어. 그런데 세금은 다 경상도 쪽으로 낸다. 집 주소가 그래서 그런가?"

같은 마을처럼 보이는 이곳에서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객지'라는 표현을 쓴다.

"마을마다 말씨가 많이 다르지. 저쪽은 완전히 전라도 말씨고, 우리는 우리대로 경상도 말을 쓰지. 그런데 함양읍 쪽 하고 우리하고는 또 말씨가 많이 달라. 예전에 내 젊을 때는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쪽으로 나무하러 많이 넘어왔구만. 저쪽은 땔감 구하려면 한참 가야 하는데, 이쪽에는 바로 산이 있어서 땔감이 많으니까. 그때는 땔감·거름이 귀해서 우리 쓸 것도 없는데 남의 동네에 줄 수 없다 해서 '가져가지 마라'고 많이 그랬다. 저쪽에서 우리보고 놀러 오라 해도 우린 객지라고 안 갔어. 저쪽에서 와도 오지 말라 하고…. 괜히 미워서 그런 거지."

함양-남원 경계선에 지금도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았지만, 할아버지는 "십몇 년 전에 벌써 없어지고 지금은 밭이 됐다"며 안내했다. 농로를 따라 차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작은 밭이 하나 나왔다. "여기 경계지점에 집이 있었다. 요 아래 부엌은 경상도 쪽이고, 큰방부터는 전라도 쪽이지. 그때는 농사짓고 나면 사람들이 이 집에서 담근 밀주도 먹고 노름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전라도서 잡으러 오면 경상도 부엌 쪽으로 내려가고, 우습지도 않지. 큰방이 전라도 쪽이라 세금은 전라도 쪽에 냈다지, 아마."

할아버지가 "아이고, 나도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고 말하는 무렵, 두 할머니가 전라도 남원 밭에서 일 마치고, 경상도 함양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