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야기가 있는 맛집-사천시 곤명면 전통음식전문점 '보리밭'

반찬 가짓수가 수두룩하고 깔끔하기가 그만인 밥집 소문을 들었다.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길을 재촉하는 건 도무지 없는 일이지만 입춘도 지난 어느 날 슬쩍 가봤다. 얼핏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원전 삼거리. 주유소 옆으로 돌아앉아 있어 입간판이 없었더라면 찾기가 그다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2번 놀랐다. 밥상이 차려질 때 놀랐고, 먹을 때 놀랐다. 음, 맛났다.

그리고 며칠 뒤, 3월호 맛집 탐험 떼거리를 모아 우르르 몰려갔다.

<3월호 맛집 탐험단>

박범주(건축가), 조경국(프리랜서), 권영란(피플파워 기자)

경남도민일보 기자 3인방(김주완 국장, 이승환 기자, 고동우 기자)

유숙자 씨./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잠시 떠올려보자. 피플파워에서 지난 호 찾아갔던 남해식당은 밥상 위로 올라오는 게 모조리 바다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모조리 땅에 것들로 밥상을 차리는 집을 찾아보았다. 하여 닿은 곳이 사천시에 있는 전통음식전문점 '보리밭'. 인근 진주 사람들이 많이 찾고, 근처 솔숲이 아름다운 천년사찰 다솔사가 있어 드나드는 객들이 많은 곳이라 했다. 오늘의 등장 메뉴는 보리밥정식과 닭국이다.

전통음식전문점 보리밭. 주인 유숙자(58) 아주머니. 깔끔하니 고운 얼굴이다. 식당은 밖에서 보기보다 안에 들어가면 더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 자잘한 화분들이며, 반듯한 그릇에 담아내놓는 반찬들이며 모두 숙자 아줌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허투루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는 꼼꼼하니 까탈진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숙자 아줌마는 혼자서 주방일, 손님 접대, 밥값 계산 몽땅 다 한다 했다. 원래 삼천포가 고향인데, 오래 전에 진주로 나와 살았었다고. 3년 전 쯤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이곳에 식당을 내기 전 20년 가까이 진주 상평공단 내에 있는 한 공장에서 구내식당을 했다고 한다.

내 음식 맛? 절박함이 만들었지요

숙자 말도 마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혼자서 아들 딸 키우면서 살아내려고 하니 할 수 밖에 없었지.

영란 우짜다가 했는데예?

숙자 거기 앞에서 구멍가게를 2년 정도 했는데, 공장에서 새참을 시켜먹고 했어요. 라면도 끓여주고. 그러다가 거기 사장님이 공장을 새로 짓는데, 공장 식구들 밥 좀 해달라고 하데요.

승환 우와, 함바집 하려면 뒷돈을 줘야 하는데.

숙자 하루에 300명 밥을 하려면 새벽부터 밤11시까지 꼬박 일해야 해요. 일도 일이지만 매일 식단을 바꾸어야 하는 게 더 힘들었지요.

범주 매일 어떻게 바꿉니꺼?

숙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묵는 거라도 즐거워야지요. 그래가꼬 맨날 다른 음식을 내놓으려니 힘들더라고요. 금요일 쯤 되면 더 할 게 없어요. 그럼 토요일에 푹 고은 닭에 무 쑹쑹 넣어 파, 고춧가루 넣어 얼큰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식당 외부 전경./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범주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하는 기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건데예.

숙자 어디 그게 내 힘이겠어요. 뭐든지 절박하면 다 되는 거지요. 다들 맛있다고 했어요. 내 음식 맛은 절박함이 만들었지.

주완 아저씨는 뭐하십니꺼?

숙자 (살짝 머뭇거린다) 그게 좀 사연이 있어요.

영란 우찌? (더 물으면 안 될 것 같아 말문을 돌린다) 자녀분은예?

숙자 애들 둘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그건 더 이상 묻지 말고...우리 아이들이 참 잘 자라줬어요.(숙자 아줌마 얼굴이 한층 밝아진다. 얼굴에 가득 웃음이다) 딸은 진주 시내에서 사위랑 스튜디오하고 아들은 관세사 시험 공부 하고 있어요.

조미료 전혀 안 쓰고 혼자서 다 만들어

/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일행이 자리에 앉자, 밥상 위로 밑반찬들이 줄줄이 차려진다. 가짓수가 많은 반찬들은 직사각형의 도자기 접시 위에 2가지씩 담겨져 나왔다. 승환 동우 경국 범주의 감탄이 이어지고, 주완 국장은 짐짓 감별사의 표정이다.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어먹으니 금세 미리 주문해놓았던 보리밥정식이 먼저 나온다.

동우 와, 너무 많이 나온다. 6000원인데. (영란에게)혼자서도 와 봤어요?

영란 아니. 둘 또는 셋이서 왔었는데.

동우 혼자 와도 반찬이 이렇게 나올까?

영란 글쎄. 모르겠는데. 혼자 와도 이리 나오것지.

동우 부각도 나오네.

승환 (젓가락으로 한 입 먹다가) 으, 맵다. 고추네.

동우 (5가지 정도 담긴 나물그릇을 먼저 공략한다.) 음, 나물은 물기가 있으면 맛에 빈틈이 많아지는데, 이건 좋다! 간도 거의 소금 중심이고 딱 적당해. 내공이 팍 느껴지는데.

주완 이것도 맛있다!(부침개 접시를 가운데로 옮겨놓고 가운데 놓인 찌개 맛을 본다.) 생선국인가?

범주 아니, 찌개는 순전히 멸치로만 우렸어. 조미료는 안 쓰고 말이야. 반찬 수가 한 20가지 되것네. 나물그릇에만 5가지, 미역무침, 무채, 살짝 데친 배추 속과 젓갈.....

영란, 범주가 세다만 반찬 종류를 머릿속으로 이어간다. 견과류무침, 호박무침, 감자조림, 파래, 김무침..... 영란, 이쯤에서 세기를 적당히 포기한다. 숙자 아줌마, 혼자서 주방으로 손님 식탁으로 바쁘게 움직이다가 조금 틈이 생기니 그때서야 우리 식탁으로 수줍게 다가와 앉는다.

/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영란 이 많은 걸 우찌 혼자 다 만듭니꺼?

숙자 혼자 만들어도 그날 기분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남한테 맡기면 어찌되겠어요. 그날 음식은 그날 만들어요. 대충 양이 다 맞지만 모자랄 때도 있고, 남을 때도 있지요.

동우 남은 건 어떻게?

숙자 동네 아주머니들 불러서 나누어 먹는 거지요.

영란 시장은 매일 봐야 겠네예.

/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숙자 차가 와요. 양념 차가 일주일에 2번, 채소 차가 일주일에 2번. 그래도 배추며 고추며 몇 가지는 여기 옆에서 농사짓는 동생한테 받아오지요. 시간될 때 같이 짓기도 하고.(입구 쪽을 가리키며) 저기 배추는 아직도 뽑지 않고 밭에 있는 걸 어제 뽑아온 거지요.

범주 조미료는 전혀 안 넣는지요?

숙자 아이고, 난 그런 건 안 써요. 기본 양념 갖고만 하지요. 내가 어디 가서 음식을 배운 건 아니지만 감각이 있어요.

범주 (금세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친다) 눈썰미도 있으시고요.

숙자 어디 가서 먹으면 어떤 재료로 어떤 양념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한 번만 먹으면 알아요.

승환 오, 절대미각인데요!

동우 그럼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그시나요?

숙자 옆에 사는 동생네서 가져오고 같이 만들기도 하고.

동우 (짐짓 놀란 표정으로 재차 확인 들어간다) 와 대단하네요. 장류도 직접 다 만든다고요?

숙자 그럼요.

경운기 타고 먹으러 가던 옛날 그 맛, 칼칼한 닭국

/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주방에 들어갔던 숙자 아줌마가 휴대용 가스렌지를 가져오고 펄펄 끓는 냄비를 가져왔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국이었는데, 위에 쑥갓이며 파 등이 얹어져 있어 멀건 국보다는 비리지 않을 것 같았다.

동우 다르네. 닭국이래서 맑은 국인 줄 알았는데, 서울 쪽하고는 다르네.

주완 닭볶음탕보다는 묽고, 닭을 재료로 한 육개장 같네. 닭을 삶아 고기를 찢어서 넣은 건 아니지만.

동우 아, 중부 쪽에는 닭개장을 많이 먹는데 남쪽에서는 닭개장을 안 먹더라고.

영란 (펄펄 끓고 있는 냄비에서 한 숟갈을 조심스레 떠먹는다.) 음, 맛있다. 닭국이래서 비린내가 날까 입도 못 댈 줄 알았는데, 국이 아니라 무슨 탕 같은데.

주완 음, 맛있네. 옛날에 꿩국도 이랬어. 꿩이 귀하니까 닭을 쓰는 거지. 이렇게 국을 끓이면 일단 양이 많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어.

영란 우찌 만드는 거고?

범주 우리 어렸을 때 먹던 거야. 어머니가 이리 끓여주셨어. 닭을 토막 내어 먼저 삶고 좀 익으면 무를 쑹쑹 넣고 칼칼하게 끓이는 거지. 닭을 삶을 때 한 번 끓여내 그 물을 버리면 기름기는 덜 한데 구수한 맛은 떨어지는 것 같아. 여긴 그대로 끓였네.

경국 (지금까지 열심히 사진만 찍고 있다가) 예전에 여기 원전 삼거리에 닭집이 여럿 있었어. 고향이 여기서 좀 더 가면 나오는 하동 북천이거든.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농한기 되면 추렴해서 닭 먹으러 왔었어. 경운기 타고 여기까지 말이야.

승환 (특유의 우하하하-) 경운기 타고....

영란 샐러드가 맛있다. 음, 새콤달콤하니 깔끔하다. 적상추로 맨글었네.

범주 보리비빔밥에는 안 주고 닭국 주문할 때만 주나보다. 닭국은 8000원이네.

주방에서 나오던 숙자 아줌마,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다른 일행들을 보더니 소리 한다. 스님, 거기 있는 배추 좀 가져 가세요. 갓 뽑아 온 거라 먹을 만해요. 털모자를 고쳐 쓰던 나이든 비구니가 반색을 한다. 아이구, 고맙구려. 귀한 걸 가져가도 되나.

승환 아, 이 집 음식은 스님들도 좋아 하시것다.

숙자 주변에 이름난 절도 있고 암자가 많아 스님들이 곧잘 오지요.

영란 여기 온지는 얼마나 됐어예?

숙자 진주서 곤명으로 온 지는 3년 됐나. 원래는 저기 다솔사 밑에서 했어요. 근데 장사가 좀 잘 되니까 주인이 나가라고 하데요. 여기저기 찾는데 마침 여기 자리가 났어요.

승환 원래 그런 집이 꼭 있다니까. 부산에도 있어. 근데 쫓아내고 시작한 집은 꼭 망한다니까.

숙자 예. 그 집 지금은 안 해요. 망했어요.

동우 근데 메뉴는 어떻게 정했어요.

숙자 그냥,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로 했지요.

식당 내 자기들./사진제공 조경국(프리랜서)

동우 그릇이 전부 도자기네요. 플라스틱이 하나도 없어요.

숙자 내가 이걸 좋아해요. 저기 진례에 있는 도예방에 가서 사오지요. 처음에는 식당 이름이 보리밭이라서 그릇에 보리이삭 그림이 있는 도자기를 썼지요.

경국 (그릇 옆면을 살피다가)아, 여기 보리이삭 그림이 있네요.

숙자 몇 년 되니까 그릇이 다 달라졌어요. 이건 지난해 샀고, 여기 이건 시장에서 샀고...

영란 그릇이 무거워서 힘들것네예.

숙자 아니요. 훨씬 수월해요. 일은 힘이 하는 게 아니라 요령이지요. 요령껏 해야지.

범주 도자기는 씻는 것도 힘들고 깨지기도 쉬울 텐데요.

숙자 도자기는 세제도 훨씬 적게 들어요. 물에 두어 시간만 두면 설렁설렁 헹구기만 해도 아주 깨끗해져요. 기름기도 덜 타고요.

밥상을 가득 채운 반찬 그릇 사이로 젓가락질이 아주 바빴다. 그런데도 자리에서 일어날 땐 더러 반찬이 남아 있었다. 숙자 아줌마는 이 반찬들을 싹싹 쓸어 음식쓰레기통에 넣어버릴 것이다. 그 깔끔한 성품으로 보아 능히 짐작되는 일. 아고, 반찬을 남긴 것이 많이 죄스러웠다. 동우, 숙자 아줌마가 매일 아침마다 만든다는 나물들, 그 신선도와 맛에서 내공이 느껴진다며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이런 집이 마산에도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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