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창원 마산합포구 각원사 복지지원센터 대표 광도 스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각원사. 절 마당을 오르는 데 웬 강아지가 다리에 찰싹 달라붙는다. 잠시 꼬리를 치더니 저만치 극락보전을 향해 앞서 달려간다. 그리고 들리는 종소리. 아니, 이건 쇠를 두드리는 소리다. 극락보전을 등지고 돌아서니 바로 앞이 진북면 신촌농공단지다.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사채에 계시던 광도스님을 굳이 절 마당으로 모셔와 야단법석을 마련한다.

如是我聞(여시아문)

남들은 오면 하, 이 청정한 도량에 저 소리가 장애가 되지 않느냐 그러는데, 나는 또 달라 생각이. 나는 농공단지 들어올 때도 전혀 게의 치 않았거든. 우리가 사바세계에 살면서 이 시끄러운 세계를 탈피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하잖아요? 근데 사실은 고요한데 가서는 고요를 찾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깊은 산 속에 가서 고요를 찾겠다고 그러면 조그만 소리에도 소스라치거든. 근데 저런 시끄러운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으면 심청정(心淸淨)! 마음속에서 그대로 고요를 찾을 수 있어요.

광도 스님./박일호 기자

지난 18년간 불사를 한 12군데 했어요. 서울을 비롯한 평창, 태백 등등. 여기 각원사가 11번째고 12번째가 삼봉정사라고 지금도 짓고 있어요. 경남에 와서는 창원, 마산에다 불사를 했는데 3개 도시가 통합하다 보니까 진해 신도들을 위해서도 포교원을 짓고 복지지원 지원센터도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불사를 한다고 하면 가람을 키운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요대로가 좋아요. 더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부처님은 원래가 처처불(處處佛)이니라. 니가 한 발짝 옮기는 곳마다 부처가 아니 계신 곳이 없으니라. 부처는 저기 법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내 마음속에 불성을 담고 있으면 그대로가 부처야. 내 마음의 부처는 보지 못하고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다니니까 뒤뚱뒤뚱하는 거야. 나는 그런데 뜻을 두고 불사를 하는 거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출가는 부산 범어사에서 했어요. 서울에서 출가하면 그냥 그게 힘들면 파계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내가 돌아올 수 없는 자리로 가자. 나로부터 제일 먼 거리를 택한 게 부산이야. 그때는 교통수단도 원활치 않았잖아요? 한번 먼 거리를 여행하려면 굉장히 힘들었어요. 도둑 열차를 타고. 왜냐면 있는 것조차 다 버리는 훈련을 했으니까. 바랑 하나만 짊어지고 무일푼으로 하니까. 그때만 해도 어리석은 거죠. 도가 마치 어딘가에서 주워오는 건 줄 알고 맘이 급하니까 걸어가도 될 건데. 마음이 급하니까, 빨리 가겠다, 그래서 서울역에 가서 석탄 차를 타고 대구로, 대구에서 다시 부산을 가서 이렇게 출가를 했지요.

내가 출가한 동기는 참 재밌어요. 그 얘기를 하면 울컥하는데. 참 어려웠지요. 제가 3살 때 그때는 동란 때니까. 3살 때 다리 밑에 버려져서 새싹원, 고아원, 천사원을 전전했어요. 그때만 해도 고아원 생활이란 게 힘 있는 형들 심부름하는 거라, 늘 고통받고 살았어요. 잠자리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부족하고. 그나마도 먹어도 충분하게 요기가 안 됐어. 그게 고달픈 거예요. 거기서도 못 있고 뛰쳐나왔어. 뛰쳐나오면 또 갈 데가 없잖아요. 옛날에 종로에 화신백화점이 그 당시 가장 큰 백화점이었어요. 그 뒤에 보면 중국 사람들이 헌 가구 목재를 기대놓으면 그 공간이 내 집이라. 학교를 갔다 오면 거기다 책 보따리를 놓고 먹고 살 수단을 마련해야 하니까, 껌팔이를 하고 신문팔이를 하고 구두닦이를 하고 그런 거야. 그러다 인제 목재가 팔리면 집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때 거기서 일하던 어르신들이 저를 아니까 책 보따리를 또 다른 목재 뒤에 놔주고 그랬어. 이렇게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들어갔지.

三法印(삼법인)

대학을 다니면서 우선 배고프니까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거라. 먹을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데가 절밖에 없는 거라. 절에 가면 먹을 거도 생기고 때론 잠도 자게 되고. 옛날에는 지금 서울 조계사 옆에 대각사라고 있었어요. 그게 조계사보다 더 컸어요. 거기 가마솥이 6개가 걸려 있었어요. 밥 짓는 가마솥, 국 끓이는 가마솥 그렇게 있었는데, 거기 가서 불을 쬐고 추위를 달래고 그랬어. 밥을 다 퍼가고 나면 가마솥이 열기가 아주 오래갑니다. 졸리면 가마솥에 엎드려 자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화장실, 그때는 재래식이었지. 휴지도 없었어. 화장실을 가면서 어디에 소식지가 하나 있는데 그걸 들고 갔어. 용변을 보면서 그걸 떡 보는데 부처님 말씀이 기가 막힌 말씀이 있는 거예요. 그게 인제 삼법인이라고 해서 제행이 무상이요, 제법이 무아요, 열반이 적정이라.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얘긴지는 모르지만 거기다 토를 쭉 달아놨는데 머리에서 스파크가 팍 오더라고. 야, 이거구나.

광도 스님./박일호 기자

그때 큰 스님한테 가서, 스님 이 말씀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법을 내려 줄 수 없겠습니까, 하니 허, 이놈 봐라. 그때부터 부처님 말씀에 심취하게 됩니다. 행복을 얘기하자면 채우는 데서 행복을 얻을 것인가, 비우는 데서 얻을 것인가. 채움이 행복인가 비움이 행복인가. 욕망을 이야기하자면 삶의 원동력이냐 고통의 뿌리냐. 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나를 찾는 것이냐 나를 버리는 것이냐. 또 죽음을 이야기하자면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냐 죽어서 또 새로운 출발이냐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쭉 나옵니다. 한 말씀 한 말씀 들여다 볼 때마다, 그냥 뭐 속된 말로, 뿅 안 갈 수가 없지.

중들한테 나이가 없어요. 중들한테는 결례되는 게 세수를 묻는다든지 법랍을 묻는다든지 하는 거거든요. 법랍으로 예기하자면 올해가 48년 됐지요. 사실은 한 30년 동안은 밖에를 안 나왔어요. 세속으로 안 나오고 마치 도가 어디 따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살았죠. 어느 날 만약에 내가 도를 깨친다면 뭐할 것이냐는 질문을 한 거죠.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위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한 바가 있다면 그 구한 바를 가지고 중생을 제도해야 하느니라. 그런데 혼자만 도를 깨쳤다고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으냐는 거죠. 그래서 한 18년 전부터는 세속으로 나와서 중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 거죠.

下化衆生(하화중생)

광도 스님./박일호 기자

처음에 나온 곳이 거제도에요. 왜 거제도를 택했느냐면 거제도가 유배지 아닙니까, 옛날에. 거기서 한번 시작하자. 그때만 해도 근로자들이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그 속에서 일원이 돼보자 그랬지요. 그리고는 창원으로 오게 됐고, 창원에서 마산으로 오게 됐고, 마산에서 진해까지 지금 인제 뻗치잖아요? 여기 각원사에 온 것은 진짜 내가 12군데 불사를 했지만, 그 12군데 할 때마다 부(富)는 확보된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을 그대로 버리는 거예요.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는 훈련을 한 거라. 옮길 때는 항상 바랑 하나 짊어지고 오는 거라.

여기 각원사도 그냥 산자락이었어. 이걸 그냥 남의 힘을 안 빌리고 같이 온 상좌들과 손수 일군 거라. 여기 올 때는 여기가 인제 마지막이다, 마지막 죽을 자격증을 따러 왔다, 그런 심정으로 왔어요. 흔히들 그래요. 아니, 사는 데 자격증이 필요하지 죽는 데 무슨 자격증이 필요하냐고. 근데 살 때보다는 죽을 때가 더 중요한 거예요.

내가 지금 무료 급식을 하루 150명씩 하는데 그나마 무료 급식소에 와서 급식 혜택을 보는 사람은 다행이에요. 근데 진짜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거기까지 오지 못하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인제 도시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철이 되면 그분들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게 월동준비에요. 홀로 사는 노인이라든지 기초생활보장수급자라든지 장애인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일정 금액을 지원받습니다. 근데 실질적으로 고통을 받음에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차상위계층입니다. 호적상으로 가족들이 있다든지, 근데 그 가족을 보면 지적장애인이라. 그런데 행정적으로 도와줄 길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서 지원을 해주다가, 나 하나로는 한계가 있어 여기 진북면에서 만든 게 복지 패밀리에요. 통합되기 전에 마산시에서 그것참 좋은 제도인데 스님만 할 게 아니라 마산시 전체로 발전시키자, 그래서 32개 읍면동으로 발전시킨 게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제가 굳이 패밀리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우리가 복지 그러면 노인 복지에 국한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 복지가 노인만 있겠습니까? 태아, 유아, 아동, 청년, 장년, 노인까지 아우르는 게 진정한 복지죠. 우리가 그냥 세월만 보내서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고 그래요. 왜 그네들을 늙은이라고 버려버립니까? 그분들이 모든 인생 속에서 얻은 노하우가 있잖아요. 그걸 사장하지 말고 후대들에 활용할 방법을 마련하자는 거예요. 그러면 그 노인들 일자리 창출은 저절로 되지요. 우리 진북면만 보면 회관이나 경로당 없는 데가 없어요. 그런 거를 어린이집으로 활용할 수 있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활용할 수 있지요. 유아보호소도 만들고 해서 어른들하고 애들하고 같이 어우러지게 하는 거요. 동네에서는 어르신들이 어느 집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다 알잖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내 자식을 맡길 때 안심이 되는 거예요.

下心見佛(하심견불)

우리가 행복을 말하자면 일반인들이 하는 얘기가 첫째 물질, 둘째 명예, 셋째가 권력, 넷째가 사랑이라고 해요. 물질이 많으면, 재물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 재물을 보호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고, 아무래도 자기 집에 재물이 많이 쌓여 있으면 울타리를 높이 칠 거 아니에요. 울타리가 높고 자물쇠를 채운다 해도 어딜 가나 거기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거라. 또 사랑이라는 게 좋기만 하는 거냐. 사랑을 하는 순간부터 괴롭습니다. 물질과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사랑이 있어서 행복할 줄 알았지만 도리어 이것이 있어서 불행한 줄 알아라.

수행이란 게 별것 아니다. 도를 닦는다, 그러는 데 도라는 게 별거 아니에요. 바로 평상심에 도에 이르는 길이 있다. 그랬거든. 평상심에 있는 그 마음이 도가 아닌 게 없어요. 세상 전체가 다 도라. 인아산붕처(人我山崩處), 나를 죽여 버리는 훈련을 하는 거라. 무위도자고(無爲道自高), 그럼 함이 없는 가운데 도의 경지는 스스로 높아지느니라 그 말이거든.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 무릇 하심을 한 자는, 만복자귀래(萬福自歸依), 만복이 스스로 오는 거야.

광도 스님./박일호 기자

요즘에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자주 쓰이더라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건데. 그 단어가 난 아주 좋은 거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면 그게 전부 불사 아닌 게 없어요. 우리가 요즘에 경제가 어려우니까 빈부격차가 커지고 했는데 결국은 상생을 통해서 빈부의 균형을 이뤘을 때 그게 바로 불국정토가 되는 게 아니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요.

말씀 고맙습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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