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in] STX 조선해양 사내하청 해고자 최요환 씨

"이거 얼굴 사진이랑, 이름도 다 나갑니까? 아버지 아시면 큰일 나는데…."

의외였다. 지난해 12월 동료직원 6명과 함께 (주)STX조선해양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내고 출·퇴근 선전전을 하는 최요환(32·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씨의 첫마디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최 씨는 지난 2004년 1월 (주)STX조선해양 사내하청업체인 (주)화창개발에 입사해 '물류자재 보급·관리' 일을 했는데, 업체가 2011년 1월 말 원청에 도급업무를 반납하는 바람에 일터가 없어졌다. 돈도 돈이지만, 7년 동안 출·퇴근하다가 직장이 없어지니까 뭔가 '휑' 하다고 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조선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열심히 일했는데 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조 결성 정규직화 요구하자 원청에 도급 반납 일자리 잃어

최 씨는 동료직원들과 지난해 5월 노동조합을 만들어 줄기차게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자재관리를 원청사 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면서 업무지시도 직접 받았지만, 연봉은 평균 2배 이상 차이가 났다고 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업체에 시정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질적인 업무지휘를 받으면서 2년 넘게 일해온 만큼 정규직화 요구는 너무나도 정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차별시정과 관련, 같은 해 7월과 10월 지노위와 중노위로부터 각하 결정을 받았다.

"충분히 우리가 STX조선해양 정규직임을 입증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도급이라 했지만, 원청 관리자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고,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창고에서, 같은 일을 했었습니다. 원청의 과장과 차장이 이메일로 업무지시를 내렸거든요. 차별시정을 요청하기 전에는 도급업체에서 우리를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출퇴근 선전전·STX 상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지리한 싸움

결혼 2년 차 최 씨. 아내는 만삭이다. 이달 중으로 출산이 예정돼 있단다. 현재 최 씨의 수입은 고용보험 90여만 원이 전부다. 일터가 없어지기 전에는 그래도 잔업·특근 열심히 하면 다달이 200만 원 가까이 벌 수 있었다고 했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나머지 6명도 생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집사람은 별말 없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도 안 하죠. 요즘 어머니께서 부쩍 '애 나오면 돈 들어가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며 빨리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걱정을 많이 하세요. 솔직히 모아 놓은 돈도 없고, 고용보험도 7~8월이면 끊기는데, 앞으로 생계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다는 최 씨. 이전에는 '그냥 월급만 많이 주면' 좋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정규직 노동자인 줄 알았단다. 하지만, 어느새, 최 씨의 눈에 비정규직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노동조합 없으니까 당하더라'며 노조의 중요성도 알게 됐단다.

"솔직히 비정규직, 비정규직 하지만, 좀 막연했거든요.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 듣고 나서부터 의식이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특히 현재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1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강연 들었을 땐 예전에는 활동이 훨씬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나도 모르게 힘이 생기더라고요."

만삭 아내와 실업수당 90만 원으로 생활

최 씨는 현재 동료들과 매주 월·화·목·금요일마다 STX조선해양 정문에서 '출·퇴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또 수시로 시민들에게 정규직화의 정당성을 담은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길게는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장기전에 대한 대비는 동료와 충분히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강한 것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문구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지 않을까.

"STX조선해양에는 별다른 감정은 없어요. 빨리 복직됐으면 좋겠습니다. 양보할 수 있는 건 양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어머니, 진짜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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