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미래 100년 설계하는 정책, 충분한 논의 거쳐야""허성관 "국가와 지역 경쟁력 높일 수 있는 큰 틀 갖춰야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마산·창원·진해·함안 등 행정구역 통합 문제가 가장 큰 지역이슈로 떠올라 있지만,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장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기자의 기억으론 참여정부 때도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로드맵이 있었지만, 오히려 한나라당에 의해 무산된 측면이 크다. 2003년 7월, 당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마창진 통합'을 포함한 행정구역 개편을 언급한 데 대해 경남도는 '경남을 공중분해하려는 음모'라며 반대기자회견을 열고 경남도의회는 통합반대 결의안까지 채택하는 등 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당시 김두관 장관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공중분해'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도 참여정부의 행정구역 개편 계획을 숨기진 않았었다. 당시 그의 이야기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조선 세종 때 형성된 겁니다. 알다시피 그건 농경시대에 적합한 구역모델입니다. 산업화사회에 약간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화사회입니다. 지금의 행정구역이 정보화사회에 적합하다면 굳이 개편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2003년 8월 9일자 보도 참조)

그는 이에 따라 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는 행정계층 축소까지 포함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그런 시도는 이후 격동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묻히고 말았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은 거꾸로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언급한 후 한나라당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나섰고, 경남도와 도의회는 어정쩡한 태도만 보이고 있다. 반면 6년 전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지금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년 전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려던 참여정부 시절의 김두관·허성관 두 행자부 장관에게 입장을 물었다. 두 전직 장관은 한 목소리로 "통합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합의 방식과 절차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둘 다 비슷했다. 두 전직 장관의 인터뷰는 11일 오전 전화로 진행됐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2003. 2~2003. 9) = 김 전 장관은 "나도 예전에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려 했고, 지금도 통합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과정에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에 찬성하는 취지도 6년 전과 거의 일치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1896년 갑오경장 이후 개편된 1부 13도 체제로, 100년이 넘은 것입니다. 따라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조건을 반영한 행정구역인데요. 지금은 도로의 여건이나 교통 체계도 바뀌었고, 21세기 지식 정보화시대로 넘어왔으니 거기에 맞는 행정구역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울산시가 인근 울주군과 통합하고 광역시로 승격함으로써 지금의 도시경쟁력을 갖춘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만일 울산이 지금까지 경남의 한 기초자치단체로 있었다면 현재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따라서 마산·창원·진해도 원칙적으론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고, 섬진강과 광양만권 5개 시·군 통합도 상당히 바람직한 논의라고 봅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현재의 통합 논의 자체가 상당히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데다, 통합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할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보장하는 방안이 미흡한 채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시민의 충분한 토론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일이 있고, 오로지 기관장의 결단이 필요한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부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 제거하기로 한 것은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통합은 미래의 100년을 설계하는 정책입니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장·단점을 따져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통합 추진 과정은 너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중앙정부 차원의 전체적 큰 틀도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언급한 것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의제를 선점하고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짙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구와 시·도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도 이번 통합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구역 통합은 도시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주민자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보완책도 없이 밀어부치기 식으로 하는 것은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2003. 9~2005. 1) = 허 전 장관도 절차상의 문제와 부작용을 우려하긴 했지만, 김 전 장관보다 통합에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특히 "전국의 시·군을 60개 정도의 구역으로 재편하고, 광역시·도는 없애는 게 좋다"은 소신까지 밝혔다.

   
 
 
"정부에서 일을 해보니 현재의 광역-기초단체로 되어 있는 2단계 행정체제를 1단계로 줄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행정구역 통합이 옳다고 봅니다. 제주특별자치도도 계층을 1단계로 줄인 것 아닙니까?"

허 전 장관은 그동안 행정구역 통합이 잘 안 된 이유로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를 지목했다.

"현실에 맞게 행정구역 개편을 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 국회의원들 때문에 안 된 것이거든요. 국회에서 통과하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었죠. 사실 진해·창원·마산은 생활권이 같고, 마산에서 창원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아 통합하면 모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쪼개져 있으면 지역 내에서도 감정이 생기고 토호들이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컨벤션센터라든지 중복투자되는 시설이 많은데, 그런 시설도 적절히 분류, 배치함으로써 중복투자에 따른 예산낭비를 막고 대외 경쟁력을 높이려면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역시 현재의 통합 추진과정에 대해서는 '큰 틀이 없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참여정부 때는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국적인 체계와 틀도 만들지 않고 지방에 맡기는 것은 자칫 더 좋은 안을 제쳐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통합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국가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큰 틀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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