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인권의식 부재...학부모 인식도 문제

교도소 재소자들까지 풀린 두발규제를 학교는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학생들이 그렇게 원하는 두발규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10대 독립 아이두'는 두발을 규제하는 이유에 대해 '군인과 재소자로 하여금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시키기 위해...'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두발규제는 군인과 수형자로 하여금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사람'임을 각인시키고, 이를 통해 군대와 교도소에서 규율에 순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발규제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군인들이 백병전에서 머리채가 잡히지 않기 위해 강행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두발규제의 역사는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895년 12월, 위생에 좋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단발령을 내렸다. 고종과 세자는 물론 내각의 신하들은 모범을 보인다며 먼저 상투를 잘랐다. 이때 최익현의 "내 목은 자를 수 있으나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는 탄식을 시작으로 전국의 유생과 지방민들이 의병을 조직했다. 단발령은 명성황후 시해와 더불어 의병봉기의 이유였다. 게다가 단발령을 주도한 총리대신 김홍집은 광화문 거리에서 돌에 맞아 숨졌다. 단발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직접 설득하러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얘기 하면 믿으려 하지 않은 얘기가 있다. 박정희군사정권 시대인 1973년 에는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기 위해 '경범죄 처벌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법이 발효되기 전부터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이 이루어져왔으며, 장발의 경우엔 수년전부터 단속 대상이었다.

처음엔 장발자들은 대학생보다는 일반인이 더 많았다. 예컨대, 경찰은 70년 10월 1일부터 11월 8일까지 장발단속을 벌여 6만4409명을 적발했는데, 이 중에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이 3만명, 10대 장발이 3만명, 대학생은 3584명이었다. 장발은 70년대 내내 거의 매년 한번씩 집중 단속령이 떨어지곤 했다. 치안국은 73년 9월 14일, 74년 3월, 75년 4월 14일 연례행사식으로 장발족 일제 단속령을 시달했고, 박정희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장발에 대해 한마디 툭 던지면 또 그것이 일제 단속령으로 둔갑하곤 했다.

머리카락을 둘러싼 논쟁은 2000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구호로 시작된 두발규제 반대운동 또는 '노컷(no-cut) 운동'이 전국적인 서명운동과 텔레비전 토론을 거치며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0년 10월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별로 새로운 규정을 만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그 후 각 학교에서 두발 규정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005년 초 터진 '일진회' 파문으로 학교의 보수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두발규제 철폐가 중고교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세계인권선언이나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규약이나 '인간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조문조차 두발규제단속에는 그림의 떡이다. 2005년 4월 13일 교육부는 전국 시도 교육청에 "강제 이발이나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 수렴 없이 강제로 생활지도 규정을 적용하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그렇지만 제도와 관습은 완강해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두발규제를 찬성하고 나섰다. 교사들의 인식도 문제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 12월 전국 초·중등학교 교사 8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교사의 인권의식 조사 연구'를 보면, 학생이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교사는 10.3%에 불과했다. 두발·복장의 자유에 대해 같은 의견을 밝힌 교사는 전체의 5.7%였다. 2005년 5월 학생들은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벌이고 전국적인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는 것은 정말 싫어요"라는 외침과 함께 머리칼이 뭉텅 잘려나간 학생들의 모습이 오르고 있다. 가위질과 더불어 매질을 한다는 고발 글도 하루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두발규제는 성역인가? 교도소 제소자조차 해제한 두발제한 제도(2000년 7월 폐지)를 학교는 바꿀 수 없는 절대 선인가? 두발규제가 풀리지 않는 첫째 이유는 교사들의 인권 의식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자신의 기준에 의해 학생은 인권이 침해당해도 좋다는 독선적 사고방식이 두발규제를 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는 학생이 머리에 신경을 써면 학습에 지장이 있다'는 학부모들의 의식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학생이 학생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서 길은 없는가? 끈질기게 저항한 일부 학교에서는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졌으나 대부분의 학교는 요지부동이다. 학생이 한 인격체로서 두발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학생회를 법제화해야 한다.

▲ 김용택 교사.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면서 주체적으로 서지 못하는 이유는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뒷받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학생들이 낸 공납금으로 학생 축제를 비롯한 학교 행사에 주체적인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민주적인 기구에 참가해 의사를 반영하고 결정하는 학습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두발규제가 풀리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회의 법제화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되는 민주적인 학교가 되면 학생들이 워하는 두발규제를 계속당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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