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내 인종차별’ 사건을 욕할만큼 당신은 자유로운가?

12일자 경남도민일보 20면에 보도된 ‘영국내 인종차별’사건을 보면 인간에 대한 편견만큼 역겨움을 자아내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망치사건의 가해자 제이슨(가명).
동양인을 ‘노란 원숭이’로 비하하는 백인 우월주의자와, 그들에 의해 오도된 보통 사람들이 내뿜는 증오는, 나라마다 강도가 다르긴 하지만 서구 선진국(?)에서 종종 맞닥뜨리는 현상입니다. 그 결과는 이번 영국 사례처럼 동양인이나 흑인이 비인간적 대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종주의라는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 독일은‘세계를 지도하는 아리안 족’의 순혈성을 지켜야 한다며, 그 걸림돌로 지목된 유태인을 수백만명이나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한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이 서구를 지배할 때 한갓 바바리안(야만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초반부 전투장면에 등장하는 적군(?)이 바로 그들입니다. 대오도 전투복도 없는, 그래서 더 원시적이고 폭력적으로 비쳐지는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 세계 지도민족이 됐는지 참 의아합니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 유명한 저서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인간을 우수인종과 열등인종으로 나누는 건 무지의 소캄라며 인종주의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그가 들이대는 과학적 증거를 접하면 인종주의라는 개념에 침을 뱉고픈 생각이 절로 듭니다.

웰스라는 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연이 인간을 총애하고, 이크티오사우루스나 프테로사우루스보다 인간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이 지닌 ‘진보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이 말을 좀더 확장하면 “자연이 백인을 총애하고 동양인이나 흑인보다 백인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가능해집니다. 비단 이런 연역논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성적 시각으로 무장된 사람을 찾기 또한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볼까요? 영어나 불어 혹은 독어를 쓰는 백인을 만나면, 대부분 상냥하고 공손하게 대합니다. 턱없는 적개심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한번쯤 말을 걸고 싶고 그들과 친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영어와 서구 백인언어에 대한 외경심(?)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죠!

반면 검거나 갈색 피부를 지닌 외국인들은 사시로 대합니다. 길을 가다 가끔씩 만나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이 말이 맞다면 우리도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망치로 한국인을 내리친 자국민에게 아무 처벌도 내리지 않는 영국을 마냥 비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종주의는 단순히 ‘배타적인 국민성’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생성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서구로부터 침탈당한 역사를 지닌 나라의 경우 대부분 ‘힘과 기술’을 지닌 서구사회를 동경하게 됩니다. 또한 그 반작용으로 제 3세계에 대해 터무니없는 멸시감을 키우게 됩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에티오피아를 들먹이면 대부분 기겁을 합니다. 아니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아와 질병, 그리고 끝없는 곤궁이 연상되기 때문이죠?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이같은 인식 탓에 에티오피아와 그 나라 사람들이 지닌 국가적 민족적 가치는 송두리째 부정됩니다.

에티오피아는 구약 성경에 그 민족이 등장하는 깊은 문화적 저력을 지닌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쾌적한 기후를 뽐내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의 내면을 한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검은 피부를 지닌 열등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V와 영상물, 그리고 단편적인 정보로 둘러싸인 성에서 벗어나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없고 폭넓은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무장하면 근거없는 편견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너나없이 국제화를 떠들고, 또 그것이 세계적 흐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추세가 마이너 국가나 마이너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정당화하는 건 아닙니다.

론 크로콤이란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의 문화를 단일하게 통합하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인간의 창의성과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고갈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해서 벵골어를 쓰는 사람을 소 닭보듯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일러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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